물질세계

불교과학철학총서 편집위원회 엮음, 게셰 텐진 남카 옮김/ 불광출판사
불교과학철학총서 편집위원회 엮음, 게셰 텐진 남카 옮김/ 불광출판사

티베트 최고 학승들이
참여해 과학, 철학 등
체계적 정리한 인문서

“불교, 현대과학 사이
가교 되는 것이 목표“

과학에 관심을 쏟고 불교와 과학 간의 대화에 공을 들인 티베트의 종교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2011년 불교에서 말하는 과학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것을 지시한다. 이에 논의의 논의를 거친 끝에 남걜 사원 방장 톰톡 린뽀체를 위원장으로 티베트 최고의 학승인 70여 명으로 구성된 편집위원회가 만들어졌다. 편집위원들은 날란다 17논사들의 저작과 여타 아비달마 논사들의 저작을 모두 검토하고 이 가운데 과학, 철학과 관련된 내용을 모두 발췌했다. 이후 목차에 맞춰 분류하며 선별하고 그에 대한 해설이 필요한 곳은 해설을 달았고, 각주가 필요한 곳은 각주를 달았다. 그리고 편집위원들이 방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총서를 편집한 <물질세계>를 최근 펴냈다.

5세기부터 12세기까지 인도 북동쪽에 있었던 나란다 대학(사원)은 세계 최고(最古)의 대학이라는 수식어를 갖고 있다. 규모 역시 현대의 웬만한 종합대학 수준을 넘어섰다. 6개의 대강당과 300개가 넘는 강의실에서는 매일 100여 개의 다양한 수업이 진행됐다. 도서관 장서는 500만 권이 넘었다고 한다. 나란다 대학의 설립 목적은 ‘불교학 연구와 진흥’이었지만 불교학뿐 아니라 철학이나 문학은 물론이고 언뜻 불교와는 별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천문학이나 의학, 약학 등 자연과학에 대한 연구와 수업이 유달리 강조됐다. 뿐만 아니라 당시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500만 권의 장서 중에는 수준 높은 수학, 의학, 약학, 건축에 대한 도서가 많았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문헌들이 그 수준을 증명해주고 있으며 현대의 과학자들에게도 여전히 참고 자료로 사용된다.

티베트 학승들로 구성된 불교과학철학총서 편집위원회가 불교와 과학의 접점을 찾아 관련 논서들을 총정리한 ‘물질세계’가 최근 출간됐다. 사진은 인도 나란다 대학 유적지 승방(僧房) 구역.
티베트 학승들로 구성된 불교과학철학총서 편집위원회가 불교와 과학의 접점을 찾아 관련 논서들을 총정리한 ‘물질세계’가 최근 출간됐다. 사진은 인도 나란다 대학 유적지 승방(僧房) 구역.

그렇다면 불교학을 주로 연구하던 나란다 대학에서는 자연과학에 대한 연구를 유달리 강조했을까? 물론 동서양 공히 철학과 종교 그리고 과학은 애초에 한 바구니에 담겨 있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철학자가 과학이나 수학과 관련한 저술을 남기는 건 흔한 일이었다. 어차피 세상은 어떻게 생겨났는지, 물질은 무엇으로 구성돼 있는지 등은 셋 모두에게 공통의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4세기에서 5세기에 접어들면 과학을 바라보는 태도는 종교들 간에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세상이 ‘창조’됐다고 주장하는 쪽과 세상이 ‘형성’됐다고 주장하는 두 종교가 각각 동양과 서양에 뿌리를 내리고 확장하면서부터다.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가 392년 무렵 기독교를 제국의 유일하고 의무적인 종교로 선언하는 칙령을 내린 이래 기독교는 ‘이교도’의 과학을 철저히 탄압했다.

이와 달리 중앙아시아에서 주로 발달한 불교는 이와는 확연히 다른 태도를 갖고 있었다. 불교에서는 ‘창조하는 유일신’을 인정하지 않았다. 당연히 신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이라는 것 역시 없다. 사물의 본질을 캐낼 때 최대 난제인 선입견이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불교는 원치 않는 고통의 뿌리는 대상의 본질을 알지 못하는 무명(無明) 때문이라고 본다. 부처님은 “무명의 어리석음은 기도나 종교의식으로 없애지 못한다. 반드시 무명을 물리칠 수 있는 지혜를 일으켜서 제거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지혜는 대상의 본질을 전도되지 않게 아는 것으로부터 생긴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이 책에는 논장, 특히 아비달마에서 다루고 있는 ‘물질세계’에 대한 분류와 분석 그리고 해설이 담겨 있다. 여기서 다루고 있는 물질세계는 극미의 세계에서 천체까지, 그러니깐 마음을 제외한 외부 세계 모두를 가리킨다. 세상을 이루고 있는 물질, 시간과 공간, 뇌를 비롯한 인간의 신체가 주 대상이다. 즉 불교와 현대 과학 사이의 가교가 될 수 있도록 불교 논서에서 말한 과학과 철학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에 이 책의 발간 목표다.

이런 이유로 이 책은 역시 달라이 라마의 지시에 따라 티베트어본 발간 이래 영어, 중국어(번체) 번역이 완료됐으며 이번에 한국어 번역본이 나오게 됐다. 현재 러시아어, 중국어(간체), 스페인어 등으로 번역이 진행 중이다. 분명 일반인들에게는 소화하기 버거운 내용일 수 있지만, 불교 세계관에 대한 기초를 닦고 기반을 넓히려는 사람, 그리고 불교가 현대 과학과 어떤 접점에서 만날지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필독서가 활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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