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 '직지사 시래기국' 자시러 오실랍니까"

30여년 직지사서 스님들 봉양. 조미료 오신채 NO, 건강식 ‘고집’
교육도량 교구본사 자부심으로 행자교육 때 500명 공양도 척척
녹원스님 생전 ‘소면 칼국수’ 즐겨…직지사 시래기국은 시그니처 메뉴
노태우 정주영 한화갑 이낙연…제철 시골밥상에 귀빈들도 ‘감동’

직지사 공양실은 웃음꽃이 만발한다. 각종 야채를 씻고 썰면서 공양을 준비하는 시간은 활기차고 싱그럽다. 지혜심 보살은 함께 일하는 채공보살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사찰음식이 젤로 쉬운줄 알아야 한다. 마늘 두드릴 일도 없고 양파 까는 일도 없다 아이가.”
직지사 공양실은 웃음꽃이 만발한다. 각종 야채를 씻고 썰면서 공양을 준비하는 시간은 활기차고 싱그럽다. 지혜심 보살은 함께 일하는 채공보살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사찰음식이 젤로 쉬운줄 알아야 한다. 마늘 두드릴 일도 없고 양파 까는 일도 없다 아이가.”

결제 때 직지사 천불선원은 매주 목요일이 ‘특식날’이다. 갖은 버섯으로 얼큰담백한 맛을 낸 ‘송이짬뽕’에 스님들은 “여기 선방이 짬뽕 맛집”이라며 엄지척을 올린다. 대중공사 끝에 4년 전부터 도입된 라면도 시중 라면과 다르다. 면을 잘 데쳐서 몸에 해로운 기름을 쏙 빼고 끓인 ‘누룽지 라면’은 이름만으로도 구수하고 감칠맛 난다. 여기에 맛깔스러운 초밥까지 곁들인다. 이쯤 되면 공양실에 ‘투덜이’ 한명쯤 꼭 등장한다. “라면만 끓여드리지 뭐 이리 해요?” “생각을 해봐라. (스님들 하루종일 참선하시는데) 라면 하나로 되것나?” “….”

어느 해 동지 즈음, 후원서 열심히 새알을 비비는데 한 스님이 나타났다. “여기서 음식 하는 사람은 분명히 발원하는 바가 있지 싶어요.” 무슨 말인가 해서 “내 시집가는거요?”라고 농으로 답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제한된 재료에 오신채도 안쓰면서 이런 맛이 나올 수가 없다”는 스님 극찬에 ‘공양주 30년 세월’ 다 보상받았다며 수줍게 웃는다.

김천 직지사 공양주 지혜심(58, 본명 서근숙) 보살. 직지사에서 30년 살았다고 하면 일흔살 할머니쯤 연상하고는 그녀를 만나면 누구나 똑같은 눈치다. ‘왜이리 젊노?’ 다섯 살배기 딸을 동반한 스물아홉 ‘어린 엄마’가 직지사에 머문 건 1990년대 초반. 고향인 거창에서 가깝고 어릴 때부터 익히 알던 김천 직지사가 ‘어린 두 모녀(母女)’에겐 세상 가장 따뜻하고 안전한 둥지가 됐다.

그 시절 직지사에는 지금 종단의 큰 어른 법등스님(김천 도리사 회주)이 부주지로 살았고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으로 활약하는 장명스님(서울 연화사 주지)이 큰스님 시자, 묘장스님(서울 학도암 주지)이 강원 학인이었다. 처음엔 공양주 노보살님 거들며 경내에 있는 직지사 직영 찻집을 도맡았다. 산중다실의 대표메뉴는 대추탕.

배와 한약재를 섞어 끓이는 특유의 비법으로 ‘대추차’에서 격상한 ‘대추탕’은 스님들 입소문 타고 전국에서 찾아와 맛볼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대추탕으로 산중다원계를 주름잡은 지혜심 보살에게 기회가 왔다. 눈대중으로 어림잡아 음식을 만들던 공양실 노보살님들 덕분이다. 초파일만 지나면 절에 밥과 나물이 몇 가마니씩 남아돌자 사중 스님들 근심이 컸다. “제가 한번 해보까요? 한번 맡겨 줘볼랍니까?” 지혜심 보살의 용감한 지혜가 발현되는 순간이다.

“행자교육 최고 인원 380명일 때도 무난하게 공양을 만들었지예. 습의사 스님들과 불교대학 학생들 신도들까지 합치면 500명까지 감당했어예. 채공보살들과 손발 맞춰가며 척척척 해냈다 아입니까? 제가 늘상 강조하는 말이 있습니더. 여기는 조미료 없고 오신채 안씁니다! 고마 된장 소금 간장만 적절하게 쓰이소! 여기는 교육도량이고 조계종 교구본사 아입니까?”

투철한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무장한 지혜심 보살의 공양주 삶은 매순간 기도요 정진이다. “불제자로서 법당에 앉아 독경하고 참선하는 수행만큼, 정성 깃든 공양물로 스님들 모시는 일도 중하다”고 그녀는 장담한다. “삼시세끼 밥에 의존하는 스님들이 대부분인데 식단이 건강에 얼매나 중요한줄 압니까? 평생 공부하시는 스님들께 힘닿을 때까지 몸에 좋은 공양 정성껏 올릴랍니다.”

4년 전 원적에 든 직지사 조실 녹원스님은 생전에 ‘소면 칼국수’를 즐겨 드셨다. 칼국수는 면발을 소면보다 더 가늘게 썰어 한번 데친 뒤 끓였고 고슬고슬한 밥을 유독 좋아하셨다. “누룽지를 쌀뜨물에 끓이거나 콩을 갈아서 누룽지랑 같이 끓이면 참말로 맛나요. 그렇게 내드렸더니 된장 곁들여 너무나 맛나게 드셨던 큰스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동국대 이사장 하실 때, 시자 스님 통해 저 누룽지 끓이는 방법 배워서 서울 가면 해달라 하셨다고….”

지혜심 보살의 손맛은 직지사에 온 ‘귀한 손님’들에도 단연 인기다. 1993년께 노태우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직지사를 참배온다고 하자 사중에 비상이 걸렸다. 잘 대접하기 위해 열린 회의자리에서 지혜심 보살의 지혜가 또 한번 발동한다. “지체 높은 분들은 서울서 좋은거 다 드신다 아입니까. 제아무리 진수성찬을 차려봤자 승부가 안납니더. 소박하게 제철 시골백반으로 갑시데이. 저한테 한번 맡겨 주이소.”

그녀 예상대로 노 전 대통령은 별것 없는 시골밥상에 밥 한공기를 순식간에 비웠다. “정주영 회장, 그 분은 찢어지게 가난한 유년을 보냈잖아요. 우거지국 하나면 끝납니더. 한화갑 의원은 밥도둑이라면서 엄나무순 장아찌를 아예 한웅큼 싸달라고 했지예. 이낙연 지사는 감자 넣어서 능이칼국수 했더니 국물까지 싹 원샷하시고….”
 

지혜심 보살은 오랜 세월 차(茶)를 공부했고, 농촌지도소에서 된장도 배워 직접 담근다. 음식에 관한 책을 탐독하면서 쉼없이 음식을 연구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그녀다.
지혜심 보살은 오랜 세월 차(茶)를 공부했고, 농촌지도소에서 된장도 배워 직접 담근다. 음식에 관한 책을 탐독하면서 쉼없이 음식을 연구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그녀다.

누가 뭐래도 지혜심 보살의 시그니처 메뉴는 ‘시래기국’이다. “겨울철 우리 직지사 시래기국은 제가 자신합니더. 가을마다 무농사 짓는 친구한테 시래기를 두 트럭 받아서 겨울내내 시래기국을 끓여 묵어예. 시래기국 무시하지 마이소. 설 끓이면 안되예. 이틀을 푹 과야 맛이 좋아예. 서울 사람들 템플스테이 오면 밥은 안먹고 시래기국만 두 그릇씩 들이켜요. 보약이 따로 없지예.”

토속음식에만 머물지 않는다. 토마토 소스를 ‘한국식’으로 만들어 스파게티를 하면 스님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바깥에서 파스타 먹으면 속이 더부룩한데 우리 보살님 손을 거치면 스파게티도 왜이리 소화가 잘되노?” 보시 들어오는 과일이 많아서 샌드위치도 만들어 생과일주스와 함께 내면 스님들에겐 별미다. 사찰에 대량 보시하는 식자재 공양물들은 대부분 상품(上品)이 아니어서 빨리 먹어야 한다.

이따금씩 참외로 김치도 만들고 곶감 무쳐서 반찬을 만들어 내놓으면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은 ‘직지사는 억수로 부자인가 보다’고 속모르는 소리를 한다. 호박이나 시금치, 오이, 가지가 수십상자씩 들어올 때면 볶고 찌고 튀기고 무치고 ‘퓨전음식’처럼 창작도 한다. 젊은 스님들은 지혜심 보살 음식에 그다지 환호하지 않다가도 강원(승가대학) 갔다가 방학 때 절에 오면 그리운 엄마음식 찾듯 이것저것 먹고 싶은 것들을 읊어댄다. 그런날엔 하늘을 날아갈 듯 기분 좋다는 그녀다.
 

지혜심 보살님의 손만 봐도 '손맛'이 느껴진다.
지혜심 보살님의 손만 봐도 '손맛'이 느껴진다.

30여년 전 직지사에 들어올 때 다섯 살 꼬마숙녀는 잘 자라서 서른다섯살 든든한 딸이자 제일 가까운 도반이 됐다. “우리딸은 엄마가 공양주란 게 싫은가 봐예. 와 그러노 물었더니 그냥 웃대예. 엄마가 고생하는 것 같아 안쓰러분가 봐요. 내 고등학교 친구들도 제가 시인이나 소설가가 될 줄 알았다네요. 이래봬도 문학소녀였거든. 하하하.”

그녀가 지금 직지사에서 맡고 있는 정식 직함이 공양주는 아니다. 조계종 제8교구본사 직지사 종무실 차장이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한 스님이 다실에 들어섰다. 30여년 전 직지사에서 재무를 봤던 자성스님(구미 대둔사 주지)이다. “우리 지혜심 보살님은 직지사 모든 대중 스님들이 의지하는 보물입니다.” 짧은 한마디에 모든 것이 담겼다.

직지사=하정은 기자 tomato77@ibulgyo.com
사진=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불교신문3685호/2021년10월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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