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선이 아니다

레너드 코렌 지음, 박정훈 옮김/ 북노마드
레너드 코렌 지음, 박정훈 옮김/ 북노마드

미국 출신 건축가 레너드 코렌이 최근 펴낸 <이것은 선(禪)이 아니다>는 일본 교토의 정원에 깃든 종교적 배경을 제거하고, 그동안 ‘배경’으로만 여겨졌던 자갈과 모래에 주목한다. 자갈과 모래의 다양한 배치와 정돈을 보여주는 사진이 담담히 펼쳐진 이 책에서 교토의 정원은 아무데서나 발견할 수 있는 흔한 풍경으로 무덤덤하게 그려진다. 자갈과 모래로 정원을 조성하는 것은 자연이 무심히 운행하도록 두지 않는 인위(人爲)를 상징한다. ‘마른 정원’, 즉 물을 사용하지 않은 정원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규칙적인 정화, 제초, 갈퀴질, 재구성 같은 꾸준한 유위(有爲)가 필요하다. 갈퀴질을 새로이 하고, 형태를 달리해서 조성하는 지속적인 노력이 없다면 자갈과 모래의 정원은 바람, 비, 지진, 중력, 이끼, 잡초, 낙엽, 인간의 도발적 행동으로 인해 해지고 사라지고 만다.

때문에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일본의 정원에 깃든 종교의 사상적 배경을 제거한 채 ‘자갈과 모래의 정원’이라는 상황에 집중하게 만든다. 이는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선적인’ 혹은 ‘영적인’ 의미를 배제하고 일본의 정원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라고 할만하다. 즉 정원이란 자연을 정교하게 축소시켜 눈 아래 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있는 그대로 마주보는 하나의 통로라는 뜻밖의 사실을 깨우쳐준다. 그리고 저자는 “자연과 인간의 변덕스러운 기질에 맞서 정원을 보존하려는 인간의 단단한 의지의 표상”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갈과 모래가 인간의 몸을 기준 삼아 정원의 본질을 이루는 기초재료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듯이, 우리 인생도 기초재료를 인식하고 매 순간 보존하는 노력을 기울일 때 비로소 의미가 피어날 것”이라고 의미를 전한다.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