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아하고 우아…고려후기 불상 양식 선두주자

국보 극락전·대웅전 비롯해
화엄강당·고금당…보물도 즐비
고건축 흐름 볼 수 있는 고찰

고요하면서 단정한 얼굴 표정
균형 잡힌 당당한 신체 비례
목조관음보살좌상이 더 빛내

긴장감 넘쳐흐르는 옷 주름에
정교하고 세련된 영락 장식…
전체적으로 기품 있게 다가와

단아하고 우아한 고려후기 불상 조성 양식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보물 제1620호 안동 봉정사 목조관음보살좌상(木造觀音菩薩坐像). 오른쪽 사진은 보관을 벗은 모습.

 

안동 봉정사를 향한 발걸음이 여러 번 있었다. 시작은 대학시절 답사 때였던 것 같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을 다녀오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것은 봉정사가 발걸음과 주목을 끄는 성보문화재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방문은 성보문화재인 ‘봉정사 목조관음보살상(木造觀音菩薩坐像)’이 발견된 이후 이 보살상을 뵈러 가는 길이었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이 보살상이 새로 발견된 것이 아니라, 이 상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봉정사 만세루에 있던 ‘대웅전관음개금현판(大雄殿觀音槪金懸板)’ 기록이 해석되면서 이 관음보살상이 고려후기인 1199년에 조성됐다는 기록이 확인된 것이다. 이를 통해 이 목조관음보살상은 1170년 고려 무신정변 이후 조성된 고려후기 대표적인 보살상으로서 그 존재가 새롭게 드러났다. 이 관음보살상은 사찰의 어떤 사정으로 대웅전에서 암자인 지조암에 봉안되어 현대까지 전승됐다. 또한 만세루에 있던 이 보살상에 대한 기록인 현판도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 이를 오랜 세월 동안 알아봐 주지 못했던 것이다. 관음보살상은 현재는 봉정사성보박물관에 봉안되어 있다.

 

最古 목조건축물 ‘극락전’


봉정사는 672년(문무왕 12) 의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대덕이 창건했다는 설도 있다. 분명한 것은 신라의 고승들과 그 유래가 많은 참선도량이었으며, 암자도 9개에 이르는 대규모의 사찰이었다. 현재 봉정사는 영산암과 지조암만 있는 아담하고 조용한 사찰이다.


봉정사의 유구한 역사는 고려 중기에 지어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인 국보 제15호인 극락전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1972년 극락전 보수공사 때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지붕을 크게 수리했다”는 기록이 담긴 상량문이 발견됐다. 내용 가운데 “… 천등산 산기슭에 있는 봉정사는 절이 앉은 지세가 마치 봉황이 머물고 있는 듯하여 이와 같이 부르게 됐다. 이 절은 옛날 능인대덕이 신라 때 창건하고…지붕이 허술해져서 수리했다”고 하여 사찰 이름이 지어진 연유를 밝혀주고 있다.


이외에도 국보 제311호인 대웅전을 비롯해 보물로 지정된 화엄강당, 고금당 등 중요한 목조건축물이 즐비하게 서 있어 봉정사는 우리나라 고건축의 흐름을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사찰이다. 1999년에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안동 봉정사를 방문하면서 세간에 더 유명해진 계기가 됐다. “가장 한국적인 건물을 보고 싶다”는 여왕의 요청으로 봉정사가 선택되었고, 이로 인해 봉정사는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었다.


봉정사는 규모가 장대하거나 웅장하지는 않지만, 그 창건의 역사만큼이나 소중한 문화유산이 가득한 곳이다. 그래서 2018년 6월에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그 가치에 대해 평가하기를 “봉정사는 7~9세기 창건 이후 현재까지의 지속성, 한국불교의 깊은 역사성이 세계유산 등재 조건인 탁월한 보편적 기준에 해당한다”고 하였을 만큼 한국사찰을 대표하고 있다.

 

머리엔 화려하고 높은 보관


봉정사 관음보살상은 앉은 자세의 상으로 높이가 104cm이다. 머리에는 화려하고 높은 보관을 쓰고 있다. 머리카락은 기둥처럼 상투를 틀어서 올리고, 나머지는 양쪽 귀를 지나 어깨 위에 걸쳐져 몇 가닥으로 나누어 흐르게 하였다. 얼굴은 타원형으로 살이 통통하다. 가슴 앞, 배 앞, 양 무릎을 중심으로 화려한 영락 장식이 연결되도록 표현했다. 보관은 새로 조성된 것이라고 한다. 화염문과 구름문, 꽃모양으로 꾸며져 있다. 보관 중앙에는 관음보살임을 상징하는 화불이 안치되어 있다. 두 손은 아미타구품인의 수인을 하고 있다.


보통 보살상은 하늘거리는 천의를 입는데, 이 보살상은 여래처럼 옷을 입고 있다. 고려시대부터 보살상도 이러한 방식으로 옷을 입은 상들이 등장한다. 얼굴은 고요하면서도 단정한 표정을 짓고 있다. 고귀한 기품이 느껴진다. 균형 잡힌 당당한 신체와 긴장감 넘치는 옷 주름, 그리고 정교하고 세련된 영락 장식들이 조각된 전체적으로 우아한 아름다움을 잘 표현된 보살상이다.


중국의 송대(宋代)에 유행했던 우아하고 장식적인 경향이 있는 불상들과 비슷한 작풍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불상들과 비교하자면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전반으로 추정되는 ‘안동 보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이나 ‘서산 개심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등과 가장 친연성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 상은 ‘대웅전관음중수현판기’의 기록처럼 1199년(고려 신종 2년) 무렵에는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단아하고 우아한 불상들이 고려후기에 크게 유행했는데, 이 관음보살상이 이 시기 양식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관음보살상은 통나무를 조각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나무로 팔과 몸통 등을 따로 만들고 접합해서 만든 것이다. 머리카락과 귀, 목걸이와 영락 등의 장신구들은 목재 부분과 색이 다른 것으로 보아 건칠로 추정되는 다른 재료로 만들어 붙이는 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미간의 백호와 눈동자는 수정을 감입하였으며, 두 손과 머리카락 등은 따로 만들어 끼운 점이 특징이다.

 

대웅전 아미타삼존 협시보살


봉정사 목조관음보살상의 이력에 대해서는 두 가지 기록이 발견됐다. 하나는 1753년 설봉(雪峰)스님이 쓴 ‘대웅전관음개금현판’으로 봉정사 만세루에 걸려있다. 이에 따르면 관음보살상은 대웅전에 안치되었던 아미타삼존불상의 협시이며, 아미타불과 세지보살보다 앞선 시기에 조성했음을 밝히고 있다. 관음보살상은 1199년 조성되었고, 1364년과 1751년 각각 두 차례 개금불사를 했다고 적혀있다. 그리고 개금 담당 작가는 진찰(震刹), 수오(守悟), 도균(道均)스님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화원들은 경상북도 문경지역의 김룡사와 대승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화파의 대표화원들이다. 또 다른 기록으로는 개금 당시 설봉스님이 쓴 ‘발원문’으로, 관음보살상의 복장에서 발견된 것이다. 그 내용은 거의 ‘대웅전관음개금현판’의 내용과 유사하나 봉정사 관음보살상의 조성 연대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다.


관음보살상은 원래 봉정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었다. 대웅전은 원래 석가모니여래를 모시는 전각인데 1753년 개금 당시에는 아미타삼존여래를 봉안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현재 남아 있는 불상들은 이 관음보살상과 연관을 찾을 수 없다.


1999년 대웅전 해체공사를 하면서 1435년에 쓴 ‘법당중창기(法堂重創記)’ 등 4종의 묵서(墨書)가 새롭게 발견되어 조선초기에 중창한 사실이 알려졌다. 또한 봉정사 대웅전의 불상 뒤 벽체에 그린 불화는 1428년에 조성된 것으로, 한국에서 제일 오래된 후불벽화로 밝혀졌다.

 

개금불사 ‘발원’ 생생한 신앙심


이 보살상의 개금 발원문에는 “머리 숙여 대자대비 관세음보살님께 귀의합니다. 수렁에서 구제해주고 물에 빠져 표류하고 있는 것을 건져주어 중생을 널리 제도함은 여러 부처님이 원하는 바이고, 부처님의 형성을 조성하여 만대에 이어져 받들어 불심(佛心)이 끊어지지 않게 함은 전왕(塡王)의 소원입니다. 덕행의 흔적을 따라 친속에서 벗어나 성스럽고 자비롭기를 앙모합니다. 옛 상(관음보살상)의 풍화를 말끔히 씻어내어 중수하고자 하는 생각이 끓어올라 내가 발원하여 인연을 널리 모집하고 발원을 여러 사람에게 심어 주었습니다. …”라 했다. 이 글을 통해 당시 관음보살상 개금불사에 동참했던 사람들의 신앙심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올봄에는 이들처럼 ‘봉정사 목조관음보살상’을 참배하고 싶다. 중생의 고난의 소리에 가장 귀를 잘 기울여주는 관음보살님께 우리 모두가 살아생전에는 복을 받고, 죽어서는 극락정토에 태어나기를 지극지심으로 기도해야겠다.
 

[불교신문3663호/2021년4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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