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좌 원허스님 애틋한 마음 편지에 담아
"가르침 '법의 등불' 삼아 수행정진 발원"

조계종 총무원장과 전계대화상을 역임한 쌍계총림 쌍계사 방장 고산대종사. 계율을 청정하게 호지하며 이사(理事)를 겸비한 수행의 사표(師表)로 존경받는 고산스님의 가르침을 회고하는 글을 상좌 원허스님(부산 혜원정사 주지, 조계종부산연합회장)이 보내왔다.

2015년 여름 원허스님은 은사 고산대종사(오른쪽)를 모시고 울릉도를 방문했다.
2015년 여름 원허스님은 은사 고산대종사(오른쪽)를 모시고 울릉도를 방문했다.

그리운 은사 스님께 올립니다.

산과 들에는 꽃들이 화려하게 피어 화엄세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몇 해 전 스님을 모시고 울릉도에 다녀왔을 때도 지금처럼 아름다운 계절이었습니다. 등을 밀어드리며 오른 전망대에서 동해바다를 바라보던 순간이 엊그제 같습니다. 다시 그날의 ‘소박한 행복’을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하니 스님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만 느껴집니다.

스님. 어디에 계십니까. 적정(寂靜)의 세계에서 열반락(涅槃樂)을 누리고 계실 스님께서 지금이라도 ‘이보게 원허’하면서 부르실 것만 같습니다. 사바의 인연을 다하고 떠나신지 40여 일이 흘렀지만 그리움은 마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변화하니 어디에도 집착하지 말라는 무상(無常)의 진리를 모르지 않지만 하해(河海) 같은 은혜를 주신 스님을 다시 뵙고 싶은 마음 숨길 수 없습니다.

처음 주지 소임을 맡았을 때 <예기(禮記)>에 나오는 ‘물위걸용지인(勿爲乞容之人) 능위서타지인(能爲恕他之人)’이라는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남에게 용서를 비는 사람이 되지 말고, 남을 용서해 주는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용서를 빈다는 것은 무엇인가 계속 실수하고,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라면서 “스스로 잘 살고 그만한 위치에 있어야 용서해 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당부하셨습니다.
 

원허스님은 울릉도 여행에서 가파른 전망대 계단을 오르는 은사 고산대종사를 뒤에서 밀어드리며 정겨운 시간을 보냈다.
원허스님은 울릉도 여행에서 가파른 전망대 계단을 오르는 은사 고산대종사를 뒤에서 밀어드리며 정겨운 시간을 보냈다.

또한 제자들과 신도들에게 <삼국사기>에 실린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의 이야기도 자주 들려주셨습니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삶을 살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출가수행자로서 재가불자로서 위의(威儀)를 갖추어 정진하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스님께서 항상 곁에 계셨기에 든든했습니다. 힘들거나 어려운 일이 생겨 여쭤보면 해결책을 알려주셨습니다. 버팀목이셨던 스님께서 지금은 떠나고 계시지 않으니 마음이 무겁기만 합니다.

수행하는 틈틈이 농사 짓고 꽃과 나무를 살피시던 모습이 그립습니다. 당나라 백장회해(百丈懷海) 선사의 ‘일일부작(一日不作) 일일불식(一日不食)’의 이야기도 자주 들려주셨습니다. ‘하루 동안 일하지 않으면, 하루 동안 먹지 않는다’는 고사를 들어 촌음(寸陰)을 아껴 수행하고 울력(雲力)을 정진의 방편으로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훌륭한 가르침은 글이나 말보다는 삶 자체의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임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수백겁의 인연이 있어야 불연(佛緣)을 맺을 수 있고, 그 이상의 지중한 인연이 있어야 출가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이보다 더 오랜 숙연(宿緣)으로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며 제자로 정진했으니 홍복(弘福)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음에는 여전히 스님이 계신데, 지금은 친견할 수 없으니 안타깝고 허탈합니다. 벚꽃이 산천에 만개한 올 봄, 홀연히 떠나신 그날 지리산에는 비가 내렸습니다. 부족함 많은 제자에게 올바른 수행자로 살도록 전해주신 가르침을 잊지 않고 깊이 새기며 정진하겠습니다. 비록 스님의 육신은 사바를 떠나셨지만 행화(行化)와 가르침은 영원히 ‘스승’으로 남아 ‘법의 등불’을 밝힐 것입니다.

제자 원허 삼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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