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교현장 에서] 지도법사와 주지 사이
[포교현장 에서] 지도법사와 주지 사이
  • 운성스님 서울대 총불교학생회 지도법사
  • 승인 2021.03.02 16:59
  • 호수 3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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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법당’에 앉아
불교 공동체 식구 품어안고
부처로 살도록 받쳐주는 일꾼

겨우내 봄을 찾아 헤매었더니, 새벽기도 마치고 내려오는 뜨락 한쪽에 동백꽃 봉오리들 핑크빛 봄물 머금고서 탱글탱글 웃고 있습니다. 마침 진주 용화사의 주지에 임명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서울대 총불교학생회 2021년 새로운 회장법우가 보낸 인사 편지가, 봄소식인 듯 깃든 날이었습니다.

무슨 이름으로 불리든 늘 여여(如如)한 정진터 그 한곳이지만, 어떤 공동체의 대표가 되는 소임은 리더가 어떤 동기(行)를 갖고 사느냐에 따라 대중들의 내일의 삶(業)의 방향성이 달라질 수 있다는 책임감에, 여느 소임과 같은 무게일 수만은 없겠지요. 저를 ‘지도법사’로만 알고 계시던 어떤 분은 소식을 듣고 이렇게 물어 오셨어요.


“지도법사가 더 높은 것이 아니었나 보네요? 잘 몰라서…….” 어째서인지 대다수가 주지 된 것을 ‘축하’하는 분위로만 채워지던 요즘, 그 분의 질문이 참 신선했습니다. 문득, 무척 근원적인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지도법사는 청정하고, 주지는 타락한 자인가?’ 이번 생에는 그냥 ‘지도법사’로만 작용하며 살 요량으로 유목민(客)의 삶으로 ‘서 있기만 했던’ 지도법사가, 주인이 되어 ‘앉아야 하게 된’ 이 봄날, 그저 불교가 좋아 들어왔을 뿐인 불교학생회에 얼결에 소임이 맡겨진 전국 대불련 지회와 신도회의 신임 회장, 임원진을 맡은 법우들의 심정이 지금 저와 비슷하지 않을지……. 인생 화두(話頭) 하나 전경(前景)으로 떠오릅니다. ‘주지란 무엇인가?’


어릴 적 노스님께선 “앉아서 보면 객 같은 자 없고, 서서 보면 주인 같은 자 없다.” 하셨죠. 어떤 일에 임할 때 객은 곧 떠날 거니 대충하려 들고, 주인은 영원히 살 것처럼 집착하며 하니, 누구나 객도 주인도 될 수 있음을 잊지 말라는 어른의 속깊은 경책이셨습니다. 영원유청(靈源惟淸) 선사는 주지를 맡아 떠나는 제자에게 당부하기를, “주지는 마땅히 주장자, 보따리, 삿갓을 방장실 벽 위에 걸어놓았다가 언제든지 납자(衲子)처럼 가볍게 떠날 수 있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 하셨지요.

<화엄경>은 주지(住持)를 가리켜 “부처님 가르침께서 세상에 오래 머무시도록 법을 지켜내는 자(永住護持佛法)”로 보았고, 장로자각(長蘆慈覺) 선사는 귀경문에서 “대중들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열어 보여주어야 하는 까닭에 장로(주지)가 있고”라고 대중생활 중 여느 소임 중에 주지를 가장 먼저 강조해 말씀하셨습니다. 불국정토를 세운 법장 비구는 ‘극락세계라는 사찰의 주지’로서 스스로가 아미타불이 되어(成佛) 만 중생을 제도하는 서원을 세우셨어요. 그렇다면 저는 오늘, 어떠한 주지로서 이곳에 잠시 ‘앉아’ 볼까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위기 상황을 헤쳐 나가기에 적합한 리더의 역량을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았습니다. 꼭 필요한 리더의 역량은 시류에 대한 민감성과 직관력, 다양한 위기 극복 시나리오 제시 역량, 협력과 연대 정신과 설득력이며, 요즘 직장인들이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리더의 유형은, ‘나를 따르라’를 외치는 용장(勇將)이나 지략과 견문을 갖춘 전략가인 지장(智將)보다도, 따뜻한 덕으로써 솔선수범하여 직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따뜻한 카리스마로 통솔해내는 ‘덕장(德將)’이라는 결과였습니다.

노스님께선 살아 생전 제가 먼 길을 나서게 되면 암자의 끄트머리까지 걸어 나와 제가 작은 점이 되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잘 가고 있나 걸음걸음을 바라봐 주셨습니다. 덕장이란, 진주 용화사의 주지든, 총불교학생회의 지도법사든, 라디오 진행자든, 이 움직이는 법당에 앉아서 공동체 식구들을 그런 눈빛으로 품어 안고 지켜봐 주는 존재가 아닌가? 그런 눈빛을 받은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붓다꽃씨 환한 꽃으로 피어나게 되리니, 오늘 마음법당에 앉아 소박한 서원 하나 세우고 나아갑니다.


마당에 동백꽃 매화꽃 망울들 몽글몽글 맺어지기까지 지난가을 가지치기를 한껏 해 주었어요. 업으로 얽힌 잡초들도 제거해주고요, 기도하러 오르내리는 길마다 틈틈이 가슴에 담아 안고서 그 아이의 소박한 생을 축복도 해 주었습니다. 꽃 한 송이, 어디 그냥 피어나던가요? 주지는 각각등보체 모시고서 낱낱이 본래부처님 잘 드러나 부처로 사시도록 받쳐 드리는 일꾼, 수행의 꽃! 내려놓고 또 내려놓지 않고는 단 하루도 살아내기 어려운 소임이라, 이 가운데 최고의 선방이 세워졌지요.


매철 ‘이번 철 안거(安居)에는 과연 어떠한 배움을 만나게 될까?’ 설레며 꾸렸던 수좌 시절의 걸망 짐을 기억하며, 다가온 인연에 전 존재를 내맡겨 봅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 머무는 곳곳마다 주인이라, 우리는 누구나 자기 삶터의 참사람, 흔들리며 피어난 꽃, 주지(住持)입니다.
 

[불교신문3655호/2021년3월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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