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성보문화재 50選] ⑥여수 흥국사 수월관음도
[사찰성보문화재 50選] ⑥여수 흥국사 수월관음도
  • 이분희 문화재전문위원·불교중앙박물관 팀장
  • 승인 2021.02.22 14:39
  • 호수 3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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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타락가산 상징 바위에 앉아
선재동자 방문 받는 관음보살
좌우엔 대나무와 이국적 정병
그 위로는 ‘푸른 새’도 등장

붓놀림 신선 같던 의겸스님과
12제자들 한결같은 마음으로
고통에 빠진 그들을 이끌어 줄
자비로운 관음보살 나투게 해

 

보물 제1332호 여수 흥국사 수월관음도. 가로 165cm, 세로 224.5cm. 1723년(조선 경종3년). 관음보살 옆 버들가지 정병, 발아래 선재동자가 등장하는 모습은 한국의 수월관음보살도에서만 보이는 독창적 모습이다. 또한, 관음보살이 몸을 틀지 않고 정면을 보고 있다는 것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크게 달라진 점으로 꼽힌다.
보물 제1332호 여수 흥국사 수월관음도. 가로 165cm, 세로 224.5cm. 1723년(조선 경종3년). 관음보살 옆 버들가지 정병, 발아래 선재동자가 등장하는 모습은 한국의 수월관음보살도에서만 보이는 독창적 모습이다. 또한, 관음보살이 몸을 틀지 않고 정면을 보고 있다는 것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크게 달라진 점으로 꼽힌다.
화기’를 확대한 모습. 여수 흥국사 수월관음도의 이력서라 할 수 있다.
화기’를 확대한 모습. 여수 흥국사 수월관음도의 이력서라 할 수 있다.

 

현세 안락보다 극락왕생이 더 간절했던 것일까

 

우리가 기도하고자 할 때 어떤 보살을 모실까. 아마 대자대비의 화신인 관음보살을 가장 선호할 것이다.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는’ 보살의 이상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사람들은 지극한 정성으로 “관세음보살”을 외웠는지 모른다.


가장 인기 있는 관음보살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성보는 1723년 의겸스님이 그린 여수 흥국사 수월관음도(興國寺 水月觀音圖)이다. 수월관음이란 명칭은 관음보살이 물(水)에 비친 달(月)을 보며 중생을 이롭게 한다는 것에서 붙여진 것이다.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에는 관음보살이 남방 해상(海上) 보타락가산(普陀洛迦山) 아름다운 연못가 바위 위에 앉아 선재동자의 방문을 받는 내용을 설하고 있다. 이 장면을 그린 불화가 수월관음도이다.


‘나라가 흥하면 절도 흥할 것’이라는 ‘흥국(興國)’의 이름이 상징하듯, 임진왜란을 겪고 난 뒤 1723년 한여름에 그려진 이 불화는 여수산업단지를 품고 있는 지금의 여수와도 잘 어울린다. 관음은 ‘관(觀)해진 음(音)’이라는 의미인 산스크리트어 Avalokitesvara로, 한자로 번역하면 ‘관음(觀音)’ 또는 ‘관세음(觀世音)’이 된다. 중생의 ‘소리를 관찰한다’는 것은 고난에 빠진 중생들을 잘 살펴 구제한다는 것이다.


<법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은 현실에서 부딪히는 여러 고난을 열거한다. 중생의 처지는 워낙 다양해서, 그 부름에 맞게 응하기 위해 관음보살은 33가지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고려시대에 수월관음도가 많이 그려졌다. 관음보살 옆에 버들가지가 꽂혀 있는 정병, 그리고 발아래 선재동자가 등장하는 모습은 한국의 수월관음보살도에서만 보이는 독창적 모습이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크게 달라진 점은 관음보살이 몸을 틀지 않고 정면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현존 조선후기 最古 관음보살도
이 불화는 현존하는 조선후기 관음보살도 가운데 가장 일찍 그려진 그림이다. 화면의 중심에 정면을 향하고 있는 관음보살을 크게 그렸다. 보타락가산으로 상징되는 바위 위에 앉아 선재동자의 방문을 받고 있는 모습이다. 관음보살의 왼쪽으로는 대나무가, 오른쪽에는 이국적인 정병에 꽂혀 있는 버드나무가지가 있고, 그 위로 푸른 새가 등장한다.


바탕을 황토색으로 칠하고 붉은색과 청색, 녹색을 주로 사용하여 채색했다. 관음보살이 앉아 있는 바위를 수묵으로 처리하고, 바닷가의 물결은 먹선으로 윤곽을 그은 뒤에 먹물을 사용하여 연하게 칠하는 담채기법으로 표현했다. 안정된 구도에 색채가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관음보살의 붉은색 천의자락이 양 옆으로 휘날리는 모습과 발아래 일렁이는 파도는 정적인 화면에 생동감을 불어넣어 준다. 단정하고 맑은 얼굴과 화폭에 적당한 신체 비례, 바위의 색다른 표현이 돋보인다.


어디에 걸렸던 불화일까
이 수월관음도는 전남 여수시 영축산에 자리한 흥국사 관음전에 후불도로 걸렸던 그림이다. 이 불화가 그려졌던 18세기에는 관음전이었으나, 현재는 흥국사 원통전으로 사찰의 가장 외곽에 있다. 보존을 위해 지금은 흥국사 의승수군유물전시관에 봉안되어 있다.


누가, 언제, 어디에서 왜 그렸는지에 대해서는 불화의 아랫부분 양쪽에 붉은색을 칠하고 검은색으로 쓴 ‘화기’란에 쓰여 있다. 이 불화의 세부이력서와 같은 것이다. 화기 앞부분에 불화를 조성한 연대와 봉안장소, 불화의 명칭을 적는 것이 보통인데, ‘흥국사관음전상단후불(興國寺觀音殿上壇後佛)’이라고 적혀 있다. 조선시대에는 불전의 불단은 상단(불보살단), 중단(신중단, 神衆壇), 하단(영단, 靈壇)으로 나눈 삼단신앙이 유행했다. 상단에는 영산회상도, 아미타불도 등을, 중단에는 지장보살도, 신중도를, 하단에는 감로도와 같은 불화를 건다. 이 불화는 흥국사 관음전의 상단에 후불도로 그렸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연화질(緣化秩)이란 이 불화를 그리는데 참여한 사찰의 인물과 그 소임을 적는 것이다. 불화가 경전의 법식에 맞게 제작되었는지 불화 제작의 총책임을 감독하는 증명(證明)은 지영(知穎)스님이 맡았다. 법당을 청소하고 등과 향을 공양하는 소임인 지전(持殿)은 민돈(敏頓)스님이, 불화를 그리는 동안 다라니를 암송하는 송주(誦呪)는 홍한(弘翰)스님이 했다. 불화를 그릴 때 필요한 여러 가지를 제공하는 소임인 공양(供養)은 성윤(成充)스님이 담당했다. 그리고 이 불화를 그린 작가인 화원(畫員, 畫師, 良工, 金魚 片手, 畵工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림)은 의겸(義謙)스님과 12명의 제자들이었다.

여수 흥국사 수월관음도에서 ‘선재동자’ 부분을 확대한 모습
여수 흥국사 수월관음도에서 ‘선재동자’ 부분을 확대한 모습

 

붓놀림이 신선 같은 의겸스님
여수 흥국사는 임진왜란 당시 의승군의 본거지였다. 한때는 의승군 300여명이 훈련을 했던 장소였으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폐허가 됐다. 17세기부터 18세기까지 중창불사가 많이 이루어졌다. 이때 관음전 관음보살도와 응진당 영산회상도와 16나한도가 조성됐다. 이 불사에 전라도와 경상남도의 지역을 누비던 의겸스님과 그의 제자들이 참여하게 됐다.


의겸스님은 숙종~영조 대에 걸쳐 약 50여 년간 수십 명의 제자들을 이끌고 호남과 지리산 지역에서 많은 불화를 제작한 화사(畵師)였다. 스님은 1722년 청곡사 괘불탱(국보 제302호), 1728년 안국사 괘불탱(보물 제1267호), 1730년 운흥사 괘불탱(보물 제1317호) 등의 대작을 비롯하여, 1757년 구례 화엄사 삼신불도(보물1363호) 등 격조 높고 아름다운 불화들을 남겼다.


그의 존칭이 ‘붓의 놀림이 신선과 같다’는 칭호인 호선(毫仙, 해인사 석가모니불도, 1729년), ‘절정기에 달했다’는 호칭인 존숙(尊宿, 개암사 괘불도, 1749년)으로 등장한 것으로 보아 대단한 경지에 이르렀고 존경받던 화사였음을 알 수 있다.


의겸스님은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것을 빨리 받아들여 작품에 새로운 시도를 추구했다. 불화는 대개 면을 꽉 채워 칠하는 진채법(眞彩)으로 그리는데, 일반회화에서 사용하는 수묵담채기법(水墨淡彩技法)을 이용하여 호남지역만의 불화의 특징을 창출했다. 안정감 있는 구도와 짜임새 있는 구성, 생명력 있는 섬세한 인물묘사로 아름다운 불화를 그렸다. 스님의 영향력은 제자들에게 이어져 그의 불화의 구성과 표현을 따르는 경향이 한동안 지속됐다. 한편 의겸스님은 특이하게도 1730년에 관음보살상(내원정사 소장, 원 경남 고성 운흥사에서 조성)을 조각하기도 했으니, 뛰어난 예술적 기량을 엿볼 수 있다.


극락왕생 무량수불 친견 발원
흥국사 수월관음도 조성에 참여했던 이들은 ‘원컨대 이 공덕이 일체에 널리 미쳐서 우리들과 뭇 이웃들이 극락세계에 태어나 무량수 부처님을 함께 뵈옵고 모두가 불도를 이루어지이다’라고 발원했다. 이러한 발원내용은 1723년 흥국사 십육나한도와 영산회상도 화기에도 똑같이 적혀 있고, 안국사 괘불(1728년) 등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전쟁의 아픔을 극복하고 관음보살에 귀의한 이들이 간절하게 바랐던 것은 현세에서의 안락한 삶보다 극락왕생을 더 원했던 것은 아닐까.


이들의 소원을 들어 줄 분은 수월관음도에 등장하는 온갖 보배로 장식된 청정하며 꽃과 과일이 풍부한 정토에서 고통에 빠진 이들을 이끌어 주는 자비로운 모습의 관음보살이었을 것이다.


입춘이 지나고 남도에서 꽃 소식이 올라오고 있다. 한겨울 빠알간 동백꽃이 피어오르듯 우리나라의 융성을 기원해본다.

 

[불교신문3654호/2021년2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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