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라도 다시 선방에
동안거 방부를 올리고
수행정진하는
‘수도승(修道僧)’이 될 터이니
죽기 살기로 용맹정진해
보살님의 시은(施恩)에
보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 분의 보살님이야말로
내 스승이자 문수 지혜가
아닌가 싶다

진광스님
진광스님

산책을 즐기며 살아가는 곳에 대원슈퍼라는 곳이 있다. 식료품과 온갖 잡화를 다 파는 동네 슈퍼마켓인데, 이곳의 주인이 바로 원더우먼 같은 억척스럽고 정 많은 대원행(大願行) 보살이다. 

명절 차례상부터 잔치음식까지 척척 만들어내고 온갖 밑반찬부터 요즘은 흔히 볼 수가 없는 술빵이며 약과에 아침마다 김밥까지 싸서 팔고 있다. 김밥을 다 못 팔면 이내 복지시설로 보내 보시를 실천한다. 어디 그뿐이랴, 새마을 부녀회 일원으로 꽃과 나무도 심고 자원봉사 활동까지 그야말로 천하무적이다. 만약 이 세상에 진정한 보살이 살아 계신다면 바로 이분이 아닐까 싶다.

산책길에 근처 초등학교를 거쳐 가는데 매양 작은 손수레에다 물을 받아가는 노보살님 한 분을 만난다. 꽤 먼 곳에 사시는데 산책길에 이곳에 들려 식수를 받아 가시는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항상 불교경전을 독경하는 테이프를 틀어놓고 당신도 따라하며 그렇게 온 거리를 돌아다니신다. 그리 독실한 불자이니 법명이 당연히 있겠지만 필자는 그분을 감로수(甘露水) 보살이라 부른다.

남들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도리어 당당하고 나아가 불교가 참 좋다며 전법포교까지 하시며 살아가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딱히 그게 아닐지라도 보살님의 삶과 얼굴 모습, 그리고 모든 언행이 모두 불법(佛法) 아님이 없으시다. 보살님의 뒷모습이나 불경소리가 들려오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고 너무나 행복한 마음이다. 

또 한 분 잊지 못할 분은 광주에 사시는 감로성(甘露性) 보살이다. 천운큰스님께서 주석하시던 광주 향림사를 다니는 신심 깊은 불자로, 지금도 불교합창단 단원으로 활동하며 자원봉사까지 솔선수범 하는 분이시다. 그분의 자녀가 총무원에 근무하는 인연으로 알게 됐다.

그동안 매년 직접 스님들 입는 속고쟁이를 만들어 보내 주시는지라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입고 지내왔다. 그 마음이 하도 고마워 혹여 오래 입어 닳아서 떨어져도 차마 버리지 못한 채, 서툰 솜씨로 바느질을 해서 기워 입곤 했다. 그럼에도 단 한번도 생색을 내거나 공치사가 없으시다. 당신께서는 짐짓 보살의 몸을 나툰 부처님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그 신심과 정성에 보답하는 길은 열심히 수행정진해 깨달음을 이루고 널리 중생에게 회향하는 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조계종 총무원에서 행정하는 ‘수도승(首都僧)’ 신세인지라 얼마나 부끄럽고 욕된 마음이었는지 모른다. 이제라도 다시 선방에 동안거 방부를 올리고 수행정진하는 ‘수도승(修道僧)’이 될 터이니 죽기 살기로 용맹정진해 보살님의 시은(施恩)에 보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세 분의 보살님들은 춘원 이광수의 ‘육바라밀(애인)’이란 시처럼 “이제 알았노라, 님은 이 몸께 바라밀을 가르치려고/ 짐짓 애인의 몸을 나툰/ 부처시라고…”라는 생각이다. 그 마음을 잊는다면 가죽에 털이 나고 머리에 뿔을 인채로(皮毛戴角), 단월집의 소가 돼 이류중행(異類中行)함이 옳으리라. 불가에서는 ‘비보 셋 문수 지혜’라는 말이 있고, 공자님는 “세 사람이 함께 가면 그 가운데 반드시 내 스승이 될 만한 이가 있다(三人行必有我師)”고 말했다. 세 분의 보살님이야말로 내 스승이자 문수 지혜가 아닌가 싶다.

[불교신문3634호/2020년12월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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