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총스님에게 듣는 서원이야기] <44> 관음보살십대원(觀音菩薩十大願)③
[혜총스님에게 듣는 서원이야기] <44> 관음보살십대원(觀音菩薩十大願)③
  • 혜총스님 부산 감로사 주지 · 실상문학상 이사장
  • 승인 2020.11.30 14:21
  • 호수 3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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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보살은 어디서 오셨는가’
무명 업장 녹이면 성불인연 만나


반야선은 평등무차별한 배로
누구나 다 올라와 있음에도
깨치기 전엔 올라온 줄 몰라

⑤ 원아속승반야선(願我速乘般若船)   저 언덕의 지혜배에 어서 빨리 올라지이다.

반야선(般若船)은 본래의 땅, 본래의 고향, 청정무구하며 여여부동한 자리요, 열반의 세계로 가는 지혜의 배이다. 그러므로 관세음보살님은 하루 속히 이 배에 오를 수 있게 해주십사 하신 것이다. 

아울러 고통의 바다를 떠돌고 있는 중생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길도 이 반야 지혜이니 어서 속히 이 배에 오르게 해주십사 하고 발원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오르고자 원하는 지혜의 배, 반야선에 누구나 다 이미 올라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아는 것이 깨침이다. 이미 올라 있으면서도 올라 있는 줄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바로 사바세계 중생이다.

미혹하다는 것, 무명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이 반야선에는 승선인원이 무제한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을 태워도 모자람이 없다. 그리고 누구는 타고 누구는 타지 못하는 승선자격도 없다. 키가 큰사람이나 작은 사람이나, 피부가 검은 사람이나 흰 사람이나,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누구든 오를 수 있는 평등무차별한 배다.

차별상(差別相)을 떠난 경계이기 때문에 깨치고 나면 누구나 자신이 오른 반야선의 선장이다. 주인공이다. 이 배의 선장이 되면 천 가지 만 가지의 방편을 나투어 무량한 중생을 제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통의 바다를 무사히 건너갈 위신력을 가지게 된다. 

이 반야선은 이미 관세음보살님을 비롯한 무수한 제불보살께서도 오르셨기에 우리가 반야선에 오를 수만 있다면 모든 불보살님을 뵙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소에 관세음보살님 명호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모시고 쉼 없이 염불하면 우리의 마음자리에 탐냄, 성냄, 어리석음 등으로 생긴 어두운 무명(無明)의 업장은 서서히 녹아내리고 세상의 고통으로부터 평온을 찾고 구경에는 성불의 인연도 만나게 된다.
 

삽화=손정은
삽화=손정은

⑥ 원아조득월고해(願我早得越苦海)   생로병사 고해 속을 어서 빨리 건너지이다.

불교에 입문한 부처님 제자라면 무엇보다 이 고통의 바다를 건너겠다는 원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이 세상이 고통의 세계인 줄을 확연히 알고 이 사바세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원을 세우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엄격히 말해 불자(佛子)가 아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 고통의 바다를 하루 빨리 건너게 해주십사 하신 것은 이 세상이 존재하는 일체법을 보니 이 세상은 아무리 풍족하고 부족함이 없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무너지는 세계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세상을 고통의 바다, 고해(苦海)라고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깨침이 없으면 폭풍우가 몰아치는 칠흑 같은 바다 위에 떠돌아다니다가 난파될 처지에 놓인 배에 오른 것과 같다. 

고통의 바다를 건너고야 말겠다는 확고한 결정심(決定心)을 지녔다면 여러분은 불자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이 없다면 불자가 아니라 그냥 절이 좋아서 오가는 사람이다. 설령 그런 사람이라 하더라도 관세음보살님은 외면하지 않는다. 이 서원을 인연으로 깨어나기를 바라신다.

[불교신문3633호/2020년11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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