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 끊어야 하나 보듬어야 하나

불교, 서양철학, 심리학자
‘번뇌’ 주제로 다방면 연구
성찰한 내용 담은 ‘학술서’

“불교의 핵심 주제는 번뇌
언제나 깊이 있게 다뤘다”

번뇌(煩惱)는 보통 마음이 괴로움을 느끼는 일종의 심리상태, 예를 들어 우울, 근심, 불안, 절망, 공포 등 몹시 괴롭고 힘든 심리상태를 말한다. 이를 한자로 풀이해 보면 ‘번(煩)’은 불 화(火)에 머리 혈(頁), 즉 불붙은 머리, 열난 머리다. 그리고 ‘뇌(惱’)는 두뇌 뇌(腦) 자에서 몸 육(肉) 대신 마음 심(心)을 쓴 것이니, 두뇌와 결부된 또는 결박된 마음이다. 문자적으로만 보자면 번뇌는 머리에 열이 나거나 신체에 얽매여 있음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이를 중생의 해탈을 가로 막는 최대의 적으로 여긴다. 탐·진·치도 번뇌의 일종으로, 번뇌를 중생이 겪는 모든 고통의 원인이자 조종자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번뇌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가 구체적으로 느끼는 심리상태를 의미할까, 아니면 그런 심리상태를 일으키는 원인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러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 초기불교와 대승불교, 선불교, 서양철학, 심리학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번뇌에 대해 다방면으로 연구하고 성찰한 내용들을 정리한 학술서 <번뇌, 끊어야 하나 보듬어야 하나>가 최근 출간됐다.

초기불교와 대승불교, 선불교, 서양철학, 심리학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번뇌에 대해 심도 있게 정리한 학술서 ‘번뇌, 끊어야 하나 보듬어야 하나’가 최근 출간됐다. 사진은 번뇌와 망상을 끊기 위해 제22교구본사 대흥사 동국선원에서 정진 중인 수좌 스님들.
초기불교와 대승불교, 선불교, 서양철학, 심리학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번뇌에 대해 심도 있게 정리한 학술서 ‘번뇌, 끊어야 하나 보듬어야 하나’가 최근 출간됐다. 사진은 번뇌와 망상을 끊기 위해 제22교구본사 대흥사 동국선원에서 정진 중인 수좌 스님들.

먼저 한자경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는 ‘번뇌와 번뇌 너머’란 제목의 편집자 서문을 통해 구체적인 번뇌론을 논의하기 위한 준비작업으로 자신이 이해한 불교 번뇌론의 기본구조를 간략히 정리하고 있다. 한 교수는 “괴로운 심리상태로서 의식이 느끼는 수번뇌와 그런 심리상태를 일으키는 원인으로서의 근본번뇌는 서로 구분되지만 실제로는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 되는 순환을 이룬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번뇌의 순환성은 곧 번뇌의 근거 없음 내지 허망성을 의미하며, 그러한 번뇌의 허망성은 역설적이게도 번뇌 너머의 청정한 본래 마음, 일심 내지 여래장을 지시해 주는 기호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어 이필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파라미타칼리지 교수는 ‘번뇌, 알아야 끊을 수 있다’를 주제로 “불교의 핵심 주제는 번뇌와 수행”이며, “따라서 불교는 언제나 번뇌를 깊이 있게 다뤄 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번뇌란 무엇인가, 번뇌는 어떻게 발생하는가, 번뇌는 어떻게 끊을 수 있는가”라고 묻고 이에 대해 초기불교에서의 용례를 들어가며 그 의미와 해결점을 제시한다. 결론적으로 “번뇌는 실체론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를 따라 일어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따라서 ‘번뇌는 밖에 있는가, 안에 있는가?’라고 이원적으로 분별해 장소를 물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김재권 능인대학원대학교 불교학과 교수도 ‘대승불교의 번뇌론의 유형과 그 사상체계’란 제목의 글을 통해 대승의 번뇌론이 발전되는 과정 및 그 특징을 드러내기 위해 우선 초기경전에서의 번뇌론과 아비달마불교 설일체유부에서의 번뇌론을 정리한다. 이어 대승불교의 번뇌론으로 반야중관의 번뇌론과 유식학파의 번뇌론을 순서대로 논한다.

이와 더불어 오용석 원광대 마음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는 ‘물고기의 꿈, 그리고 깨어남’을 주제로 쓴 글에서 “선불교의 번뇌를 범부의 번뇌와 수행자의 번뇌 둘로 구분하고, 발심하지 못한 범부의 번뇌는 생사의 번뇌이고 발심한 수행자의 번뇌는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의 번뇌”라고 말한다. 이어 “선불교에서 번뇌란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원적 분별 너머로 나아가기 위해 극복돼야 할 뿐”이라며 “그렇게 일체의 분별을 넘어 무심의 경지에 이름으로써 일체중생을 향한 무연자비를 실현할 수 있게 된다“고 논했다.

‘서양철학에서는 번뇌 망상이란 문제를 어떻게 보았는가’를 주제로 쓴 박찬국 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우선 일본 정토진종 창시자 신란이 말하는 인간의 번뇌와 유한성은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인간의 유한성과 기독교철학에서 논의된 인간의 원죄성과 다를 바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서양철학 전반에 나타나는 번뇌 망상의 양상과 대응을 논한 후, 키르케고르의 저서 <죽음에 이르는 병>중심으로 번뇌의 문제를 다룬다. 이유경 분석심리학연구소장도 ‘번뇌의 분석심리학적 이해’란 제목의 글에서 융의 분석심리학이 번뇌의 증상을 어떻게 분석하고 또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분석심리학은 그러한 자기의 실현 내지 성숙한 인격의 완성을 위해 ‘적극적 명상’의 방법으로 자아의식과 무의식의 소통과 합일을 찾아 나갈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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