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은스님
동은스님

군대 있을 때다. 내가 복무했던 육군 8사단은 일 년 중 반은 훈련이었다. 툭하면 행군이다, 진지보수다 하여 몇 십 킬로미터 걷는 것은 이웃동네 가듯이 했다. 그 가운데 빛나는 연중행사가 있다. 바로 100킬로미터 행군이다. 이 행군은 꼬박 24시간이 걸리는데 밤이 되면 거의 졸면서 걸어간다.

사람 형체만 겨우 보이는 캄캄한 길을 걷다보면 위험할 때가 많다. 전방부대의 행군로들은 대부분 험한 산길이어서 자칫 잘못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졸면서 걷다가 행군 격려차 나와 길 가운데 세워둔 사단장님 차를 들이 받은 적도 있다. 

그런데 묘한 것이 있다. 신병들은 졸다가 갓길로 떨어져 다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고참들은 졸면서도 본능적으로 길 안쪽을 향한다. 신참 때 많이 부딪히고 다쳐봤기 때문에 몸이 먼저 아는 것이다. 절집안도 비슷하다. 선방 용맹정진 때는 차례로 장군죽비를 메고 경책을 돈다. 조는 스님들을 죽비로 때려 깨워주기 위함이다.

여기서도 구참과 신참의 차이가 난다. 분명히 졸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앞에 다가가면 구참은 언제 졸았냐는 듯이 다시 허리를 꼿꼿이 세운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그런데 신참들은 어깨에 죽비를 갖다 대면 내가 언제 졸았냐며 대든다. 아직 멀었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속담이 있다. 다른 말로 ‘세살 때부터 좋은 버릇들이면 일생이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이렇게 일을 할 수 있어 정말 감사해요”하는 마음으로 하면 ‘행복인생’이다. 그러나 “이놈의 팔자”하고 투덜대면 평생 ‘투덜인생’이 되는 것이다. 한 생각 차이다. 그런데 눈앞에 힘든 일이 닥쳤는데 행복하단 마음이 생길리가 없다. 우리 몸과 마음은 편한 것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가르침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치려고 자꾸 애를 쓰는 것이다. 오죽하면 부처님께서도 열반에 드실 때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며 유훈을 하셨겠는가. 하다보면 바뀐다. 애쓴 만큼 바뀐다.

[불교신문3629호/2020년11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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