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에 섬처럼 떠 있는 절

#1
몇 해 전, 안동에서 울진으로 이동하는 중에 표지판에서 청량사를 본 일이 있었다. 나는 멀지 않은 때 다시 이곳을 찾게 되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겼던 것 같았다. 자동차를 국립공원 선학정에 세우고 그림을 그릴 아이패드와 물통만 들고 가볍게 출발했지만 꽤 거리가 있는 트레킹이었다. 모퉁이만 돌아서면 일주문이 보이려나 하는 순간을 몇 번이나 만난 다음에야 산마루에 자리한 절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부러 청량사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찾아보지 않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낮게 내려앉은 안개 너머로 산의 일부분처럼 자리 잡은 모습은 잠시나마 힘겨운 세상을 잊게 만들었다. 새벽 장거리 운전의 피로감, 어디서나 마스크를 써야하는 고된 일상의 긴장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풀어져 발걸음이 느려졌다. 얼마나 더 걸어야하나 했던 마음은 없고 비현실적인 풍경 속에 좀 더 오래 머물고 싶었다. 
 

#2
그렇게 청량사를 찾은 이 순간. 깊은 생각에 잠긴 미륵상 앞에서 유리보전이 비스듬히 보이는 자리에서 이상하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본래 눈물이 많기도 하지만 요즘엔 대수롭지 않았던 일상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순간 울컥하는 날이 많아졌다. 바람이 좋은 날에 어디든 가고, 누구와도 웃고 이야기할 수 있었던 평범한 순간의 소중함을 잃고 난 후에야 귀한 줄 아는 어리석음 말이다. 미륵불 앞에서 합장을 하고 우리의 미래가 어둡지 않기를 빌고, 유리보전에 들어서 약사여래불 앞에 엎드렸다. 일상을 빼앗은 질병으로부터 중생이 무너지지 않기를 빌었다. 
 

#3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선 5층 석탑은 바다 위에 떠 있는 것 같았다. 모든 이의 마음을 듣고 품어 주기 위해선 응당 있어야 할 자리였다. 어디에도 꺼내놓지 못하는 근심을 이 산까지 지고 올라온 사람들의 원(願)이 바다 위에 흩어지는 환영처럼 탑에서 구름이 퍼져 나갔다. 여름과 가을의 경계에서 오랜 시간 고생한 중생들에게 달게 익은 열매처럼 삶이 돌아오길 바라고 또 바랐다.

bjh4372@daum.net 

[불교신문3616호/2020년9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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