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스님
월호스님

지혜의 눈(慧眼)인 색즉시공(色卽是空)의 안목으로 보면, 모든 존재는 실체가 없다. 고정된 몸도 없고 마음도 없으며, 고정된 나도 없고 너도 없다. 당연히 천당도 없고 지옥도 없다.

서당지장 선사에게 어떤 선비가 와서 물었다. “천당과 지옥이 있습니까?” “있다.” “불보·법보·승보도 있습니까?” “있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를 물으니 모두 ‘있다’고 하자, 선비가 말했다. “스님의 말씀은 틀리지 않습니까?” “왜 그런가?” “경산스님은 모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에 선사가 물었다. “그대는 부인이 있는가?” “있습니다.” “경산화상은 처가 있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경산화상이 없다고 한 것이 옳구나.” 경산스님은 천당과 지옥이 모두 없다고 했으나, 지장선사는 천당과 지옥이 모두 있다고 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것인가? 실체로 보자면 모두 없지만, 현상으로 보자면 모두 있다. 결국 옳고 그름은 입장과 안목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다.

법의 눈(法眼)인 공즉시색(空卽是色)의 안목으로 보면, 모든 존재는 현상(現象)으로서 있는 것이다. 몸도 있고 마음도 있으며, 나도 있고 너도 있다. 천당도 있고 지옥도 있다. 현상을 무시하면, 현상도 나를 무시한다. 그러므로 현상을 무시해서도 안 되고 매여서도 안 되는 것이다. 잘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문수보살이 어느 날 선재동자에게 말했다. “약 아닌 것을 캐오너라.” “산중엔 약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약이 되는 것을 캐오너라.” 선재가 땅위에서 한 줄기 풀을 집어 문수에게 주니, 문수가 받아들어 대중에게 보이며 말했다. “이 약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리라.” 독초가 약초다. 다만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구름에는 실체 없네. 다만 현상 있을 뿐! 폭우 되어 쏟아지면 많은 생명 사라지고 단비되어 뿌려주면 많은 생명 살아나네.”

[불교신문3614호/2020년9월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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