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과 함께 호흡한 조선의 불교건축”
“백성과 함께 호흡한 조선의 불교건축”
  • 허정철 기자
  • 승인 2020.09.14 09:57
  • 호수 36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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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불숭유’의 사회
조선의 불교건축史
한 호흡으로 정리

“불교가 건축 통해
500년 어떻게 살았나”

조선시대 불교건축의 역사

홍병화 지음 / 민족사
홍병화 지음 / 민족사

조선시대 불교건축사를 한 호흡으로 정리한 <조선시대 불교건축의 역사>가 최근 출간됐다.

전국 전통사찰 전수조사 책임연구원, 서울시 문화재위원회 건축전문위원, 조계종 포교원 전문포교사 교수를 역임한 홍병화 서울시 은평구 한옥위원이 조선 후기 불교건축의 성격과 의미를 주제로 박사논문을 쓴 지 10여년 만에 조선시대 불교건축사 전체를 다루는 이 책을 출간하게 됐다.

저자는 “조선시대 불교건축의 역사는 그냥 건물의 역사를 쓴 것이 아닌 만큼 하나의 건축이 탄생하기에는 얼마나 많은 역사적 사건과 그 사건을 헤쳐 나온 주체들의 역량이 결집됐는지 말하고 싶었다”면서 “그래서 건축을 통해 불교가 500년을 어떻게 살아냈는지를 설명하고 싶었다”고 소회를 전했다.

특히 금강산 신계사 복원사업 등 전통사찰과 관련된 다양한 조사에 참여하고, 전통건축 관련 현업에 종사해 온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불교건축사, 그중에서도 특히 “조선시대 불교건축사를 정리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고 한다.

조선시대는 일반적으로 ‘억불숭유의 사회’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오히려 그 시대야말로 불교가 진정한 종교로 성장할 수 있는 시대였고, 이는 우리나라의 새로운 주체의 탄생과 관련돼 있으며, 그것이 불교건축에 반영되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책은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불교건축의 역사를 시대별로 나눠 알기 쉽게 정리하고 사진자료와 삽화를 실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독자들이 이 책을 접했을 때 기존 상식으로 ‘조선시대’와 ‘불교건축’은 잘 연결되지 않는 주제처럼 보인다. 고려시대까지 국가의 지원을 받고 승승장구하던 불교가 조선시대에는 척결의 대상, 비판의 대상이 됐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고려 말, 사회적 혼란이 심화돼 가는 상황에서도 대형 사찰을 중심으로 자신들만의 부를 축적하기 바빴던 불교와 그런 불교로부터 비롯됐던 사회적 모순을 극복하는 것이 조선이라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한 이들에겐 시급한 목표였던 만큼 ‘억불’은 그들이 내세운 명분이었다. 그래서 조선사회를 ‘억불숭유의 사회’라고 말한다.
 

홍병화 서울시 은평구 한옥위원이 조선시대 불교건축사를 한 호흡으로 정리한 '조선시대 불교건축의 역사'를 최근 출간했다. 사진은 책에 수록된 국가무형문화재 제126호 진관사 국행수륙대재.
홍병화 서울시 은평구 한옥위원이 조선시대 불교건축사를 한 호흡으로 정리한 '조선시대 불교건축의 역사'를 최근 출간했다. 사진은 책에 수록된 국가무형문화재 제126호 진관사 국행수륙대재.

그러나 이 땅에서 오래도록 이어져 온 불교 전통은 조선시대는 물론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을까? 저자는 먼저 “조선시대에 불교가 탄압받았다는 것은 불교가 느꼈던 상대적 박탈감을 말하는 것일 뿐, 실제로는 이전 국가권력이 부여했던 사찰에 대한 특혜를 거둔 정도였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방적 지원과 비호 속에서 성장한 것을 정상적인 성장이 아니라고 본다면, 비로소 불교는 조선시대에 들어서야 진정한 종교로 성장할 수 있는 출발점에 선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단순히 조선시대에 불교가 탄압받았다고 이해하면, 그 시대의 실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한정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저자가 이 책에서 보여주려는 것은 단순히 조선시대 불교 건물의 역사가 아니다. 저자는 조선시대 불교건축사는 이 땅에서 민중이라는 주체가 어떻게 역량을 키우고 결집해 왔는지 보여주는 귀중한 증거라고 본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중심이 상류층에서 중·하류층으로 옮겨지는 과정의 시대정신이 가장 잘 반영된 건축이 아마 불교건축”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불교가 백성들과 함께 호흡하는 종교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과정이 불교건축에도 고스란히 반영됐을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조선 후기로 갈수록 부각되는 존재는 민중들이었고, 그런 주체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불교건축이 요구됐음을 밝히고 있다. 그래서 조선 후기에 불교건축은 번듯하고 화려한 외형보다는 부처님의 법을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한 명이라도 더 수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저자는 “화려한 상류사회의 일부였던 불교건축은 조선시대에 비로소 대중 속으로 들어가 백성과 함께 호흡하면서 불교건축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었다”면서 “그리하여 ‘억불숭유의 사회’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며 이것이 책에서 드러내 보이는 새로운 불교건축사”라고 의미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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