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현스님의 초기불교에서 禪까지] <76> 유식의 수행론➂ 제8식과 유식의 여러 학파
[등현스님의 초기불교에서 禪까지] <76> 유식의 수행론➂ 제8식과 유식의 여러 학파
  • 등현스님 고운사 화엄승가대학원장
  • 승인 2020.09.13 11:49
  • 호수 3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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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탓 말고 스스로 업 닦아야

섭론종에서 제8식은 윤회 원인
법상종에선 대원경지의 무루식
지론종, 무루의 참된 의식으로 봐
등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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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생각과 판단의 연속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대로,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판단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사실 한 번도 자기 의지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단지 습관이라는 업에 의해서 강제로 사유 당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생각은 가치 판단과 이해 작용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옳고 그름이라는 가치판단은 옳고 그름에 대한 선험적 지식, 즉 기억이 있어야만 하고, 그러한 기억을 모으고 정리하는 과정 속에서 한 사람의 성향이 뚜렷하게 드러나는데, 그것을 업이라 한다.

이롭고 해로움을 판단하는 작용 역시 선험적 기억의 작용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오온중의 상온(想蘊)의 작용이고, 8식 가운데 6식에 해당되며, 선험적 기억인 업은 제8 저장식에 속한다.

그러므로 ‘생각한다’라는 것은 제8 알라야식에 저장된 기억을 소재로 하여 제7 아애식(오염식)이 의지 작용을 일으켜 현재의 생각과 판단작용이 일으켜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생각은 제8식과 7식에 의해 조건 지워지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업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다시 말해서 제8의 업식이 전오식에서 경험되어질 내용까지를 판단, 결정짓는다. 이때 전오식은 알려진 내용물인 표상이라는 심소와 아는 마음인 심의 합이다. 이를 유식에서는 상분과 견분이라 하고, 이 상분이 외계의 물질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8식에 의해 투사되어 보여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식에서 강조하려고 하는 것은 인생에 일어나는 좋고 나쁜 모든 일들이 업의 투사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괴로움과 역경 속에서도 타인이나 세상을 탓하지 말고 스스로의 마음을 돌이켜 업을 닦으라는 것이다. 

한국에 알려진 유식은 크게 섭론(攝論)종, 법상(法相)종, 지론(地論)종이 있다. 섭론종은 무상유식에 속하며 세친을 스승으로 하는 덕혜의 제자인 진제(paramartha)가 무착의 섭대승론을 중국에 와서 번역한 것을 소의론으로 삼는다. 진제는 제8 알라야식이 참과 거짓이 섞여 있는 진망화합식으로 본다.

이때 장식의 참된 성질은 곧 청정의 심을 말하고, 거짓 성질은 염오심의 심소를 말하는 것이다. 즉, 그는 8식을 심과 심소의 결합된 저장식으로 본 것이고 이는 아비담마의 전통에서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7식까지는 허망한 번뇌(āśrava) 의식으로 (제8식의) 염오심의 심소로부터 진화했다고 본다.

그렇다면 수행을 통해서 제8 알라야식 중 염오심이 제거된 청정한 상태를 참된 의식(Bhūtatathatā) 또는 제9 백정식(amala)이라 부른다. 따라서 섭론종은 제9 백정식을 무루열반(anāśrava nirvān.a)으로 이끄는 최고의 원인으로 여기는 반면, 제8 알라야식은 유루(āśrava)식일 뿐이며 윤회의 원인으로 본다. 

이에 반해 현장에 의해 알려진 법상종의 유식은 세친의 제자인 호법의 제자 계현의 성유식론의 가르침을 현장에 의해 수용되어진 가르침이다. 법상종은 8식까지만을 인정하며, 8식 자체가 염오심인 동시에 집착이 사라지면 대원경지의 무루식이 된다고 본다. 제8식은 ālaya(저장)식이라 하며, 이 알라야식에는 청정심과 염오심이 섞여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수행을 통해 유루 번뇌의 식이 점점 정화되어서 무루(anāśrava)의 식이 드러나게 되면, 그 알라야식에 대원경지(Skt. ādarśa-jñāna)라는 청청하고 순수한 무루식만 남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깨닫지 못한 사람의 제8식은 염오심과 청정심이 뒤얽힌 ālaya(창고)식이지만 깨달은 사람 (붓다)의 제8 무루식은 대원경지이다. 

그러나 지론종에서는 제8 저장(ālaya)식 자체가 모든 사물의 본질인 백정식으로 여긴다. 그것은 늘 순수하고 참된(Bhūtatathatā)식과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태어남과 죽음 속에서도 이 의식은 태어남도 죽음도 알지 못하며,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반면 7식까지는 모두 윤회를 이끄는 유루(āśrava)의 번뇌 식이라고 여기고, 되풀이되는 태어남과 죽음에 종속되지만, 그와 대조적으로 제8(ālaya)식은 태어남과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항상한 무루(anāśrava)의 참된 의식이라고 여긴다. 

지론종은 섭론종에서 말하는 제8식 중 염오심의 심소를 제7식 이하로 이해한다. 다시 말하자면 의식이 생멸하는 가운데서 존재하는 청정심은 지론종의 알라야식이고, 생멸을 여읜 제8식인 백정식은 섭론종의 제9식이 되는 셈이다.

[불교신문3613호/2020년9월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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