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는…”
곱씹어 부르며 눈물지은 사연


방학에는 ‘방심’으로, 공부 게을리 할까?
게으름 피지 말라는 훈시로 되새기게 돼

선행스님
선행스님

불교대학이 방학을 하면서 왠지 마음이 휑한 느낌이다. 포교국 소임을 본 다음날부터 달포 기간 동안 정신없을 정도로 강의하고 맞이하게 된 방학이기에 더욱 그렇다. 종강을 하는 날엔 법당에서 사회를 보았다. 그동안 많은 행사를 보고 겪으면서 이렇다 할 사회를 본 일이 없었기에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의식에 앞서 식순에 따른 동선 파악과, 몇 차례에 걸쳐 멘트를 수정하면서 사회자의 애로를 새삼 알게 되었다. 다행히 매끄러운 진행과 말미에 짤막한 위트가 좋았단다. 위안이 되었다.

강원에서는 해제에 맞춰 한 달 가량 방학을 한다. 그때마다 만행을 함께한 도반 스님이 있다. 도반 스님은 평소 계행이 여법하여 동행할 때면 내심 든든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주위에서는 객기가 많은 나와 비교하면서 행여 계행에 장애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기우였다. 오히려 계행에 방해되지 않도록 배려한 것은 이쪽이었다.

그래서 도반 스님도 그것을 믿고 만행을 함께 했다. 만행할 때면 가장 신경 쓰이는 일이 공양이다. 한 번은 식당에 들러 백반을 시켰다. 나물 반찬에 조그마한 생선 한 마리를 곁들이며 주방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드실까?” 끝내 손이 가지 않았다. 계산대에 이르렀을 때는, 저쪽 한편에서 공양하시던 어느 보살님의 계산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출가의 의미를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요즘 그 도반 스님은 불과 얼마 전까지 강원에서 강의하고, 십 수 년 전 선원에서 몇 안거를 성만한 이래 이번에 두 번째로 선원에서 정진하고 있다. 수일 전 대중공양으로 인편에 모처럼 공양금을 전했다. 인사와 함께 게송을 풀이한 문자가 왔다. “계곡에 흐르는 물은 본시 무정(無情)의 상징이거늘 도대체 누가 저 산 중에 있기에 유심(有心)의 낙엽을 자꾸 떠내려 보내는가!” 자못 기대가 된다. 

그랬다.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선원에서 정진할 때면 지내온 일상을 말끔히 지우듯 새로운 각오와 결의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어진 일상은 늘 새로이 도전하고 시작하는 심정이었다. 분명한 것은 정진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결의에는 반드시 정진의 분위기로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2년 전 BBS 불교방송에서 이른 아침마다 5개월여 <법화경>을 강의하고는 그동안 공부했던 교학을 총정리 했다는 생각에 더 이상 여한이 없을 만큼 역량 껏 했다는 심정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방송이 지난해 2개월 여 <원각경> 강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연재하면서 정진의 끈을 놓지 않게 해주는 일이라 여겨 감사한 마음이다.

거기에 불교대학 강의는 여러모로 스스로를 시험하고 점검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어떻게 응용해서 쉽게 전달하여 가슴에 와 닿게 할 수 있을까 때때로 행복한 고민을 한다. 특강 시간에 이고득락(離苦得樂), 곧 괴로움을 여의고 열반인 행복을 얻는 것이 불교의 목적이라는 설명을 하면서 부른 노래가 있다.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잖아요. 당신 없는 행복이란 있을 수 없잖아요. 이 생명 다 바쳐서…” 거사님의 감상이다. “여섯 번을 곱씹어 반복해 부르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방학에는 방심(放心)으로, 하던 공부를 게을리 할 수 있겠다. 그동안 미뤘던 경서를 챙겨, 막방일(莫放逸) 곧 게으름 피우지 말라는 훈시를 되새겨 본다. 

[불교신문3603호/2020년8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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