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주
이봉주

영업을 하다가 바깥공기를 마시러 가게 밖으로 나온 어느 날 밤이었다. 그림자처럼 어두운 누군가가 나를 보더니 죄를 짓다가 들킨 사람처럼 엉거주춤한 자세로 어찌 할 지를 몰라 했다. 그는 길가에 영업집에서 내놓은 음식물 쓰레기를 손으로 헤쳐서 먹다가 나에게 들킨 것이다.

그의 행색은 한눈에 보아도 노숙인이었다. 나는 애써 못 본 척 외면했지만 그는 여전히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통 속 음식물에 미련을 못 버린 듯 내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무료 급식소가 모두 문을 닫았다. 그가 허기를 해결하던 곳을 잃어버린 것이다. 사람은 먹어야 산다. 배고픈 허기를 채우는 것은 탐욕이 아닌 인간의 본능이다. 바이러스는 손이 최대 감염원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으로 손들이 서로 멀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 손은 아직 따듯하다.

도시락과 주먹밥을 만들어 노숙인들을 찾아가서 허기를 채워주는 스님들의 따듯한 손이 있다. 그 스님 옆에는 폐지를 주워 팔아 모은 돈을 보시하는 쪽방 촌 주민의 따듯한 손이 있다. 노숙인들에게는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것이 굶주림일 지도 모른다. 바이러스가 우리들 서로의 손을 멀어지게 할 때, 그들에게 다가가는 따듯한 손의 소식을 전하는 불교신문 기사가 읽는 이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4월20일은 장애인의 날이었다. 장애인의 날도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으로 그들을 위한 각종 행사들이 모두 취소돼 조용한 분위였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인은 딸이 결혼을 하는데 결혼식 날 자기 아이를 하루 돌봐 달라고 했다. 지인은 두 남매를 두었는데 결혼하는 딸의 오빠가 장애인이다.

그 아이가 정신지체아여서 행동이 부산하고 한 군데 오래 앉아 있지 못한단다. 오래 앉혀놓으면 자신을 자해하거나 남들에게 가해를 하기 때문에 결혼식장에 데리고 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간 단기보호시설이나 야간 단기보호시설이 코로나로 인해 모두 문을 닫아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피해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지경이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들에게까지 그 피해가 이어지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인류는 그동안 수많은 바이러스의 공격을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며 극복해 왔다. 아직 코로나의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바이러스를 극복하고 있는 힘은, 전국 각지에서 코로나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운영하던 병원을 문 닫고 대구 경북으로 달려가 코로나와 싸우는 의료진의 손과 그 의료진들의 열악한 식사를 해결해 주기 위해 도시락을 싸고 있는 시민들의 따듯한 손이다.

그리고 그들 뒤에서 노숙인들을 찾아가 허기를 채워주는 스님들의 손과 폐지를 주워 팔아 모은 돈을 보시하는 쪽방촌 주민의 따듯한 손이다. 모두, 천수보살의 손이다. 

[불교신문3587호/2020년6월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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