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중계] 前 조계종 포교원장 혜총스님 조계사 신중기도 입재 법문

전 포교원장 혜총스님이 5월23일 서울 조계사 신중기도 입재법회에서 법문했다.

서울 조계사(주지 지현스님)는 5월23일부터 5월25일까지 초하루 신중기도를 봉행했다. 5월23일 신중기도 입재법문 법사로 나선 전 조계종 포교원장 혜총스님(부산 감로사 주지)은 “부처님 제자는 항상 자신의 허물을 볼 줄 알아야 한다. 허물을 보았으면 바로 뉘우칠 줄 알아야 한다”며 “아집과 아만에 휩싸여 벗어나올 줄 모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묵묵하게 각막한 세상을 헤쳐 나가다 보면 마침내 아침햇살처럼 좋은 날이 찾아올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어 스님은 “사바세계에 태어나는 순간 누구나 죄를 짓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거듭거듭 참회해야 한다”며 “다시는 윤회하지 않고 극락세계 아미타부처님 회상에 태어나고자 정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님의 법문 내용을 요약, 정리했다.

오늘은 경자년 윤4월 초하루 조계사 법회 날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창궐하고 있는 코로나19가 부처님 위신력으로 빨리 소멸되고, 전 세계인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부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발원한다. 코로나19로 인해 희생된 영가들도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길 바란다. 전국에 계시는 불자 여러분, 세계인들이 부처님 품안에서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조계사 법당에서 기도를 올렸다.

올해 4월은 다른 해보다 남다르다. 윤달에 들면 같은 달이 두 번 돌아오지만 이번 윤4월 초하루는 부처님오신날을 2600년 만에 연기했다. 연등회도 하지 않기로 총무원에서 결정을 내렸다. 총무원장 원행스님을 비롯해 부‧실장 등 집행부 스님들이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내린 결정이다. 매우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불교는 불교가 우선이 아니다. 모든 중생이 우선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불교를 위해 불교를 믿는 것이 아니라 중생 개개인이 이고득락해서 성불하는데까지 이르면 생사가 없어지는 것이 불교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불교를 펴라고 하셨다. 부처님오신날을 연기한 것은 초유의 일이다.

부처님께서 오신 이유는 무엇일까. 괴로움을 없애고 행복한 삶을 지속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괴로움 가운데 가장 큰 괴로움은 생과 사다. 태어나는 것과 죽는 것, 태어났기 때문에 반드시 늙음이 있고, 늙으면 반드시 병이 들고, 병이 들게 되면 반드시 죽게 된다. 이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 괴로움이다.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 세계에서 인간은 다섯 번째 단계인 높은 단계다. 불자는 인간 가운데에서도 훌륭한 분들이다. 부처님 법을 알고 생로병사에서 벗어나고 이웃의 괴로움을 덜어주는 불교이기 때문이다. 육바라밀 열심히 닦아서 모두 성불하는 것이 유일하게 인간계다.

윤달은 공달이다. 생전예수재를 한다. 4년 만에 돌아오는 윤달을 몇 번 맞이하고 떠날지는 모르지만 가족들과 조상들을 위해 생전예수재에 동참하자. 부처님오신날 밝히는 등은 괴로움을 없애는 근본이다. 어둠은 괴로움으로 가는 길이고 밝음은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부처님 오심을 맞이하고 부처님같이 밝게 살기 위해 지혜의 등을 다는 것이다. 등을 밝히면 괴로움이 없어진다. 등은 희망이다.
 

신중기도 입재법회에 동참한 조계사 불자들의 모습.

一更端坐結跏趺
怡神寂照胸同虛
曠劫由來不生滅
何須生滅滅生渠

일경에 단정하게 결가부좌하여
기쁘고 신령스럽게 고요히 비추니 가슴은 허공과 같구나
오랜 세월로부터 와도 생멸하지 않거늘
어찌하여 모름지기 나고 멸하며, 멸하고 나는가.

이 게송은 달마스님이 법문한 내용이다. 사람이 태어나면 살고, 살면 죽고 하는 그것이 무엇인가. 우리의 근본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는 것은 반드시 죽기 위해서다. 살아보니 죽으러 가는 길이다. 불교에서는 죽으면 끝이 아니다. 죽으면 또 태어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은 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행동을, 말을 함부로 하게 된다.

불자는 태어나면 살다가 죽고, 죽으면 또 태어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살아 있을 때 모든 업장을 소멸하기 위해 생전예수재도 하고, 조석으로 기도도 한다. 반드시 우리는 죽음으로 끝이 아니다. 영원토록 부처님 될 때까지 보살행을 닦겠다는 것이 바로 불자다. 달마스님이 생과 사의 근본을 말씀하신 것도 이 때문이다.

참으로 묘하고 묘하지 않는가. 일찍이 보지도 듣지도 못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출몰하여 세계대전에 버금가는 재앙이 덮치고 인류에게 큰 상처를 입히고 있지만 우리는 오늘 이 거룩한 부처님 회상에 모여서 기도 불공 정진하고 있다. 이 회상에 나와서 법문을 설하고 듣고 하는 이 시간과 공간 자체가 깊고도 깊은 미묘한 설법이다. 오랜 세월 동안 모두가 인연법에 따라 태어나고 멸한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생멸의 연속이다. 나고 멸하고, 멸하고 나는 이 생멸의 세계 속에서 나고 멸하지 않는 본래의 고향으로 나아가는 길을 밝히고 있는 종교가 바로 불교다. 부처님께서 우리들에게 간곡하게 설하신 금구성언의 핵심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출현도 인연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건강에 좋다면 뭐든 가리지 않고 섭취하려는 인간의 탐욕이 이같은 재앙을 불러온 것이다. 몸에 좋다면 살생을 해서라도 취하려고 하는 인간의 잔인함이 과보를 부르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물 한 방울에 9억의 생명체가 있다고 하셨다. 모든 병균은 나와 더불어 본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절제하고 절제하며 이겨낼 수 있다. 절제하는 삶, 그것이 바로 부처님 법이다.

불교는 인과응보다. 인간의 욕심이 쉬지 않는 한 더 혹독한 바이러스가 올 수 있다. 인연법을 알지 못하는 이상 인간이 겪어야 할 고통은 앞으로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최첨단 과학문명 속에 세계질서를 좌지우지한다는 미국과 중국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 티끌같은 바이러스에 속절없이 무너진다. 인간은 이렇게 허약한데도 겸허한 마음을 지니지 않고 끊임없이 욕망에 허덕인다. 욕망의 과보를 되풀이하면서도 참회할 줄 모른다.

마치 지옥에 있는 사람과 같다. 지옥에 있는 사람들이 수천만세가 지나도록 지옥고를 받으면서도 죽지 않고 고통을 받는 것은 왜 그럴까. 그 업이 생전에 지은 업이 지중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깨달아야 한다. 지옥고를 받으면서 죽지 않는 이유는 업이 있기 때문이다. 지은 죄는 언젠가는 받게 된다. 남이 대신 받아주지 않는다.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용성스님께서 자운스님과 망월사에서 결사를 하셨다. 이것을 기초로 해서 청담스님, 자운스님, 성철스님, 향곡스님, 보경스님 등이 봉암사 결사를 한 것이 유명하다. 당시 결사는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것이었다. 계율을 잘 지킴으로써 부처님 법대로 살자고 했다. 부처님께서 정해 주신 계율을 지키면서 살지 않는다면 불자라고 할 수 없다. 오계를 잘 지키면서 실천할 때만이 불자라고 할 수 있다.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육바라밀이 잘 닦는 것이 결사다. 어제 그 마음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오늘 해이해졌다면 다시 본래 자리, 그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결사다. 반복해서 결사해야 한다. 잘못하면 참회하고 반복해서 결사해야 한다. 부처님 제자로서 부처님이 돼야겠다, 가족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반드시 부처님이 되어 생사고행을 벗어나 이고득락하겠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바로 여러분들이다. 지옥고에서 악업을 푸는 도리가 바로 참회다. 참회하면 악업은 사라진다.

인도 아사세왕은 그 아버지를 죽인 죄를 짓고 참회하고 드러내어 부처님을 향하여 지난 잘못을 자세히 말하고 참회했다. 부처님께서는 아사세왕을 가엽게 여겨 죄의 성품을 관찰하게 했다. 잘못된 것을 알고, 잘못을 고치고 다시는 반복해서 죄를 짓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 참회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아픔을 겪는 것은 모두 다 인간들이 제공한 것이다. 부처님 전에 인간들의 잘못을 고하고 참회하며 다시는 그런 병이 오지 않는다고 굳게 믿는 것이 바로 불자들의 신심이어야 한다.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고 해도 이 사바세계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죄를 짓게 마련이다. 죄업이 쌓이다 보니 죄업의 결과로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사바세계라는 이 세계의 속성이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거듭거듭 참회해서 다시는 윤회하지 않고 서방 극락세계의 아미타부처님 회상에 태어나고자 정진해야 하는 것이다. 그 모습이 조계사 신도들의 모습이자 전국에서 불교를 믿는 불자들의 모습이다.

남편을 배려하고 아내를 배려하고, 이웃을 배려한다는 것은 결국에는 내가 이로운 일이다. 남편을 부처님 같이, 아내를 부처님 같이 모셔라. 그것이 부처님이 바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을 때 부처님 앞에 발원하면 된다. 행복으로 가는 첫 걸음이 거기에 있다. 남편으로부터 존경받는 아내, 아내로부터 존경받는 남편만큼 최고의 명예다. 그 이상의 명예가 없다. 고통의 원인이 어디서 왔는지 알았으면 진심으로 뉘우치고 또 뉘우치는 사람이야말로 현명한 사람이고 지혜로운 사람이다.

부처님 제자는 항상 자신의 허물을 볼 줄 알아야 하고 허물을 보았으면 바로 뉘우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아집과 아만에 휩싸여서 벗어나올 줄 모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이 힘들고 혼탁하여 길이 보이지 않고 막막할수록 우리 불자는 나의 도심(道心)을 더욱 깊고 높게 하여 묵묵히 각막한 세상을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마침내 아침햇살처럼 좋은 날이 찾아올 것이다.

一切諸法皆如幻
本性自空那用除
若識心性非形像
湛然不動自如如

일체의 모든 법은 허깨비와 같아서
본성을 저절로 텅 비었는데 어찌 제거하려 애쓰는가
만약 마음의 본성이 형상이 아님을 알면
담연하고 부동하여 저절로 여여하리라.
 

정리=엄태규 기자 che11@ibulgyo.com
사진 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불교신문3587호/2020년6월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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