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 삶 몸소 실천한
법정스님 열반 10주기
추모하는 법문집 출간

“나를 잃어 가는 이들
위해 바칠 깊은 위로”

좋은 말씀

법정스님 지음 / 맑고 향기롭게 엮음 / 시공사
법정스님 지음 / 맑고 향기롭게 엮음 / 시공사

서울 요지의 대형 음식점이었던 대원각을 운영하던 김영한은 1987년 법정스님에게 대원각을 불교 도량으로 시주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하지만 법정스님은 그 청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다가 1995년에 이르러서야 그 뜻을 수락해 대법사를 열었다. 대법사는 1997년에 길상사로 이름을 바꾸고 같은 해 12월14일에 창건법회를 열었다.

왜 법정스님은 수년에 흘러서야 김영한의 뜻을 받아들였을까? 이는 1994년에 시민운동인 ‘맑고 향기롭게’를 발족한 일과 무관하지 않다. 1975년부터 송광사 뒷산 불일암과 강원도 오두막에서 은거하며 홀로 수행하던 스님은 ‘생전에 밥값은 하고 가야겠기에 이 일 한 가지만은 꼭 하고 싶다’는 뜻을 세우고 개인의 청정함(맑음)이 사회적 메아리(향기로움)로 확산되기를 바라며 1994년 맑고 향기롭게를 발족하고 이듬해 대법사(현 길상사)의 문을 열었다.

이처럼 사회운동가로서 발걸음을 시작한 법정스님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법문집 <좋은 말씀>이 출간됐다. 2010년 우리 곁을 떠난 법정스님의 열반 10주기를 맞아 선보인 법문집에는 ‘생전에 밥값은 하고 가겠다’는 스스로의 뜻에 따라 보다 적극적으로 대중에게 다가서며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자 했던 스님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맑고 향기롭게를 발족하며 첫 걸음을 내딛었던 1994년 3월26일 구룡사 강연을 비롯해 1997년 12월14일 길상사 창건 법회, 2003년 맑고 향기롭게 발족 10주년 기념 법회 등 1994년부터 2008년까지 법회와 대중 강연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 주었던 울림이 큰 메시지들을 담은 31편의 미출간 법문이 실려 있어 눈길을 끈다.

법정스님은 이 책을 통해 “나눔을 통해 개별적인 자아가 우주적인 존재로 확장될 수 있고, 신앙생활의 도량이 되는 절과 교회는 호사스러움을 벗고 스스로 청빈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눔’과 ‘맑은 가난’은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화두이자, 스님이 전 생애에 걸쳐 견지했던 삶의 질서였다.
 

지난 2월19일 서울 길상사에서 봉행된 법정스님 10주기 추모법회에 참석한 스님들이 법정스님의 영정에 삼배를 올리는 모습.
지난 2월19일 서울 길상사에서 봉행된 법정스님 10주기 추모법회에 참석한 스님들이 법정스님의 영정에 삼배를 올리는 모습. ⓒ불교신문

또한 이 법문집을 통해 스님이 환경문제에 깊이 천착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점점 파괴되어 가는 자연환경을 우려하는 차원을 넘어 그릇된 국제 질서와 사회 시스템을 고발함으로써 근본적인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대량 소비를 부추기는 기업들의 과도한 이윤 추구, 시장 확대를 꾀하는 강대국들의 지배 전략, 더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소비 시스템을 꾸짖는다.

사람이 먹어야 할 곡물과 물을 가축에게 먹여서 고기를 취하는 육가공 산업과 육식 위주의 식단을 비판하는 부분에서는 가난한 나라의 식량난과 식수난이 어디서 비롯되고 있는지 명확하게 파고든다. 때문에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는 우리의 육신이 돌아가 쉴 곳인 고향을 무너뜨리는 동시에 우리의 영혼을 망가뜨리는 일”이라고 엄중하게 경고한다.

더불어 법정스님은 현대인의 숙명적인 공허함과 외로움, 자아 상실, 도덕적 해이와 점점 희미해져 가는 행복과 자유 그리고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 각자가 해야 할 역할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책에 실린 글들은 미려한 문체로 그린 아름다운 수필인 동시에 혼탁한 세상에 던지는 날카로운 충고이며, ‘나’를 잃어 가는 이들에게 바치는 깊은 위로이기도 하다.

이처럼 법정스님은 수행자이자 수필가, 불의한 힘에 맞선 개혁가, 지구의 미래를 위해 길을 열었던 환경 운동가 등 여러 가지 모습으로 우리 곁에 왔다가 떠났다. 해방과 휴전 이후 거세게 밀어닥친 문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전통 사회가 파괴되고 자아를 상실하는 세태를 목격하며 스님은 말과 글과 행동으로 대중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애썼다.

특히 개인의 정진을 넘어 중생을 구할 생각과 행(行)의 질서를 세우기 위해 끊임없이 수행했고, 이 책은 그 수행의 결과물이다. 올바르게 살아가고 세상을 치유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이 책은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동안 부딪히는 수많은 질문들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계기로 삼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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