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년 만에 세상에 눈 뜬 ‘화엄의 보고’
1200년 만에 세상에 눈 뜬 ‘화엄의 보고’
  • 허정철 기자
  • 승인 2020.05.11 10:18
  • 호수 358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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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대 고승 청량스님
‘화엄경소초’ 우리말 번역

원고지 10만 매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 첫 성과물
“불조은혜 일분 갚은 것”

청량국사화엄경소초

청량 징관스님 지음 / 수진스님 옮김 / 운주사
청량징관스님 지음 / 수진스님 옮김 / 운주사

“毘盧藏海 以普門慧 孰得其精 入法界經 橫傾甘露 遺像淸遠 遍飮群珉 凝眸幻形 豈獨七帝師表 實乃萬世儀型(비로자나회해에서 보문의 지혜를/ 누가 그 정신을 화엄경에서 얻었을까?// 감로법을 기울여 남긴 모습은 맑고 영원해/ 두루 마시게 하니 모두가 아름답고, 환영을 눈여겨보면/ 어떻게 홀로 칠제(七帝)의 사표이며 진실 된 만세의 모범일까.”

조계총림 송광사 화엄전에 모셔진 청량징관(淸凉澄觀, 738~839)스님 진영에 적힌 영찬이다. 영찬을 지어 올린 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찬문에는 화엄의 요체를 열어 후대에 감로법을 베푼 청량스님에 대한 고마움과 존숭의 마음이 담겨 있다.

청량은 중국 당대에 활동한 스님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승보사찰인 송광사에 그의 진영이 모셔져 있다. 어찌된 일일까. 청량스님은 776년 오대산의 여러 사찰을 순례하고 대화엄사에서 <화엄경>을 강의하면서 주석서를 쓰고, 796년에 반야(般若)가 주관하는 40화엄경 번역에도 참여해 이에 대한 주석서를 편찬했다. 이처럼 청량스님은 화엄사상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고 이런 연유로 중국의 화엄종 4조(祖)로 칭송받았다.

1000년 전 중국에서 활동했던 청량스님의 진영이 시공간을 넘어 조선후기 송광사에 모셔지고 찬문을 지어 올렸던 것은 이 시기 만개한 화엄사상과 연관이 깊다. 조선시대에는 청량스님이 80권본 <화엄경>에 주석을 단 <화엄경소>와 <화엄경소초>가 유통되면서 큰 영향을 미쳤다.

17세기 전반 송광사에서는 임진왜란 피해를 복구하면서 2900여 판에 이르는 화엄경소(1625년 개판) 경판을 새기는 대규모 법보불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완성된 경판은 판전(版殿)인 화엄전에 봉안됐다.

또 그 중심 불단에 비로자나불좌상과 <화엄경>의 ‘칠처구회’를 표현한 화엄탱화가 모셔졌고 주석자인 청량스님 진영도 전각에 함께 모셔졌다. 화엄사상이 성행하면서 스님들 사이에는 청량스님을 존숭하는 마음도 더해졌을 것이다.
 

부산 해인정사 주지 수진스님이 중국 당대 고승 청량 징광스님의 '화엄경소초'를 우리말로 번역한 '청량국사화엄경소초'를 최근 출간했다. 사진은 조계총림 송광사 화엄전에 모셔진 청량스님 진영.
부산 해인정사 주지 수진스님이 중국 당대 고승 청량 징광스님의 '화엄경소초'를 우리말로 번역한 '청량국사화엄경소초'를 최근 출간했다. 사진은 조계총림 송광사 화엄전에 모셔진 청량스님 진영.

특히 청량스님의 <화엄경소초>는 소 60권, 초 90권을 붙인 것으로 방대한 분량에 대소승의 경과 논은 물론 유가와 노장까지 넘나드는 상세한 해설을 붙여 가장 뛰어난 <화엄경> 주석서로 꼽힌다. 그럼에도 이제껏 그 완역본을 만날 수 없었던 것은 너무 방대한 분량에 폭넓고 다양한 사상을 품고 있어서 번역할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1993년부터 7년간 해인총림 해인사 강원 강주로 학인들을 지도했던 부산 해인정사 주지 수진스님이 청량스님의 <화엄경소초>를 우리말로 번역한 <청량국사화엄경소초>를 최근 출간해 주목된다.

이 역주서는 원문을 제외하고 번역문만 원고지 10만 매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원문 현토와 함께 원문의 한 글자도 놓치지 않는 꼼꼼한 번역과 역대의 사기들을 총망라한 상세한 각주로 한국불교의 사상적 근간인 화엄사상을 이해하는 나침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전체 100권으로 기획하고 있으며, 1차분으로 ‘화엄현담’ 10권이 우선 출간됐다.

수진스님은 “1976년 해인사 강원에서 처음 <청량국사화엄경소초 현담> 8권을 독파했고, 1981년부터 3년간 금산사 화엄학림에서 <청량국사화엄경소초>를 독파했다”면서 “그때 이미 현토와 역주까지 최초 번역의 도면을 완성했고, 당시 아쉽게 독파하지 못한 십정품에서 입법계품까지의 소초는 1984년 이후 수선 안거시절 해제 때마다 독파해 모두 정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인사 강주시절 잠시 번역에 착수했으나 기연이 맞지 않아 미뤘다가 드디어 2006년 1월 번역에 착수해 2016년 8월 십만 매 원고로 완역 탈고하고, 올해 봄날 시공을 초월한 사상초유 <청량국사화엄경소초>가 1200년 침묵의 역사를 깨고 이 세상에 눈을 뜨게 된 것”이라고 남다른 의미를 전했다.

이 책의 번역은 먼저 입법계품의 소초를 시작으로 세주묘엄품 소초에서 이세간품 소초까지, 마지막으로 소초 현담을 번역하는 순서로 진행했다. 스님은 “<청량국사화엄경소초>의 완역으로 불조의 은혜를 갚고 청량국사와 은사이신 문성노사 그리고 나를 낳아준 부모의 은혜를 일분 갚는다고 여길 것”이라고 소회를 전했다.

수진스님은 조계종 교육위원, 역경위원, 교재편찬위원, 고시위원, 중앙종회의원, 범어사 율학승가대학원장 및 율주를 역임했다. 현재 해인정사 주지를 비롯해 조계종 단일계단 계단위원·존증아사리, 동명대 석좌교수, 동명대 세계선센터 선원장 등의 소임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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