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백년대계본부 불교사회연구소가 종단 스님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가 나왔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동안거 기간 중 선원 대중과 포살 결계에 참여한 1만여 스님 중 1671명의 스님이 답변했다. 응답자의 법랍은 10년 이상에서 40년 미만이 대부분이어서 이번 설문조사 결과는 스님들의 일반적 의견이라고 볼 수 있다.  

조사에 따르면 종단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종단 내 불평등 구조 개선’이 38.2%, 고령화 대비가 37.1%로 가장 많이 응답했다. 조직력 강화, 사설사암 문제, 국가정책 대응, 해외포교 등 다른 대답도 있었지만 모두 10% 미만이었다. 

불평등 구조와 고령화 대비는 하나의 몸통에서 나온 다른 가지와 같다. 출가한 스님이 노후를 걱정하는 원인이 불평등 구조에서 파생하기 때문이다. 무소유를 지향하는 출가 종단이 불평등한 구조여서 구성원들이 노후를 걱정한다는 것은 승단 원리를 생각하면 있을 수 없다. 승가는 평등과 화합을 조직 원리로 삼는 수행공동체다.

평등은 승단 구성원이 출가 전 신분, 성별, 나이, 출가햇수 등 조건과 관계 없이 모두 같은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는 뜻이다. 이는 출가자가 생산 활동, 즉 이윤을 추구하지 않고 오직 수행하며 중생제도 임무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가자는 재가자가 경제 활동을 통해 취득한 생산물을 공양 받아 영위하고 대신 재가자들에게는 바른 법을 전하여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이끄는 정신적 스승의 역할을 수행한다. 

화합은 승단 구성원이 같은 규율을 적용받음을 뜻한다. 가령 구성원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승단 직책이나 출가 연한 등에 상관없이 동일한 절차에 따라 동일한 규칙을 적용 받을 때 구성원들은 순응한다. 이것이 화합이다.

만약, 소임에 따라 혹은 친소 관계 등으로 서로 다른 처분을 내린다면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구성원은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다. 이처럼 승가는 평등과 화합 두 원리를 갖고 움직이는 수행공동체다. 불평등 구조와 노후 보장을 걱정하는 스님이 대다수라는 것은 승가공동체가 무너졌다는 반증이다. 

불평등으로 인한 불안한 노후는 경쟁 원리가 작동하는 세속사회의 특성이다. 세속은 무한 경쟁에 내몰린 정글과 같다. 복지제도 사회안전망으로 경쟁에 뒤처진 사람을 구제하는 장치를 마련하지만 근본 원리는 경쟁이다. 소유를 미덕으로 삼는 세속은 한정된 자원을 고루 분배할 수 없어 경쟁을 조장한다.

반면 승가는 무소유를 지향하므로 경쟁이 아닌 양보 배려를 미덕으로 여긴다. 구성원 상당수가 우리 종단이 불평등하다고 본다는 것은 부처님 가르침 보다 세속원리가 지배한다는 뜻이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는 스님들이 부처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하는 승가공동체로서 종단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설문조사 결과가 충격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사회 참여, 신도교육 등 포교 열의가 부족하다면 종책으로 보완 가능하지만 승가공동체라는 근본을 의심하기 때문에 대책도 근본에서 시작해야 한다. 시급한 당면 과제며 우리 종단이 가야할 길이다.

[불교신문3578호/2020년4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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