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밖엔 명창·인기가수
승가에는 범패 어산 어장


찬불가, 법문 중에 읊는 게송, 대중가요
개사곡, 설법만큼이나 호응 클 때 있어

선행스님
선행스님

경전에 곡조와 운율을 넣어 부처님의 덕을 찬탄하여 공양 올리는 의례가 범패다. 범패는 의례와 의식인 영산재와 작법무(作法舞)를 행하여 영혼을 천도하는데, 오늘날 가곡(시조) 판소리와 함께 전통 음악의 한 장르로까지 발전하였다. 밖에는 명창과 유명 가수가 있다면, 승가는 범패에 뛰어난 스님을 어산(魚山) 또는 어장(魚匠)이라 한다.

어산의 유래는 중국 위무제의 넷째 아들인 조식이, 어산에서 범천의 노래 소리를 듣고 그 음을 터득하여 연구한 이후로 범패로 정립이 되었다 한다. 조지훈 시인의 ‘승무’는 작법무 곧 무용의 형태인 춤을 통해 세속적 번뇌를 종교적으로 승화시키는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겠다. 

지난해 사중에서는 범패를 전문적으로 익히는 교육기관을 개설하여 매주 많은 스님들이 동참하여 수학하고 있다. 범패의 범음은, 천둥과 같이 심오하며, 맑아서 멀리까지 전파되고, 마음속에 스며들어 경애심이 우러나며, 쉽게 이해 할 수 있어 듣는 이가 싫증나지 않는 음성을 이른다. ‘가릉빈가’는 이러한 음성을 소유한 상상의 새인데, 사람의 머리와 새의 몸으로 극락정토에 살면서 미묘한 음성으로 설법하기에 불교음악을 상징하는 표상이다.

음성 공양의 형태는 다양하다. 찬불가는 물론 법문 중에 읊는 게송과 대중가요 또는 개사한 노래는 설법 내용만큼이나 호응이 클 때가 있다. 그동안 초청된 강의나 설법 중에 종종 노래를 하곤 했다. 지난해 연말 화엄산림 법상에서 법문 말미에 어김없이 한 곡 했다.

“밤새~ 님의 모습인가 향기인 듯한 생각에~ 뜨거운 가슴으로 길을 나서도 막상 갈 곳이 없어요.” 어느 보살님은 “아버님을 보내드린 후 힘들었는데, 스님 노래에 그만 눈물 났습니다.” 법회 후 대웅전 마당에서 보시까지 챙겨 주셨다. 

때론 노랫말도 큰 감동으로 와 닿을 때가 있다. 지난해 이맘때 산중에 주석하는 어른 스님께서 입적하셨다. 주변의 권유로 만장을 썼는데, 일찍이 서예를 접하게 되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한글을 익혔고, 출가해서는 3년여 한자를 사사 받은 이력이 있어 2박3일 사뭇 썼다.

3일째. 한 보살님이, 입적 3일 전에 스님을 뵙고 한 말씀 부탁드렸다는데, 별다른 말씀 없이 “할 말은 많아도 아무 말 못하고 돌아서는 내 모양을 저 달은 웃으리”하셨단다. 그 사연을 들은 대중들이 이구동성으로 만장에 쓰기로 결정되기 무섭게 순식간에 빼곡히 둘러섰다.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지목을 받고, 법상에 오를 때만큼이나 긴장된 마음을 진정하고 이내 붓을 들었다. 다행히 두 줄로 쓴 글이 균형이 잡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길게 쉬었다. 옆에서는 일부 탄성에 가까운 음성과 함께 만족한 표정이어서 내심 체면이 서는 기분이었다.

그 노랫말의 첫 소절은 “헤어지기 섭섭하여 망설이는 나에게 굿바이 하며 내미는 손…”이다. 지난 달 중순 열흘 여 인도성지순례를 다녀왔다. 순례를 하는 동안 이렇다 할 설법을 못한 아쉬움에 회향에 임박해서 이 노래를 했는데, 동참한 불자들로부터 환호를 받았다.

만장은 몇몇이 고정해서 쓰기도 하지만, 대체로 문상 온 분들이 고인을 기리고 인연된 내용을 쓰기에, 자연스레 필력을 감상하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행자시절 수덕사 방장이셨던 원담 노장님 옆에서 꼬박 4시간여 먹을 갈았다. 많은 대중에게 일일이 써 주시는데 먹물이 휘호를 따라가기 벅차서, 중간에 맹물이라도 가져오라는 말씀까지 하실 정도였다. 노장님은 필력뿐만 아니라 문장력도 빼어나셨다. 어느 때는 3일간 메모 한 장 없이 만장을 쓰셨다는데, 그 말씀에 절로 경외심이 일어났다. 지금은 어디에 원력으로 사바세계로 다시 태어나셨으리라.

선행스님 영축총림 통도사 한주

[불교신문3567호/2020년3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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