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스님 구름 비껴 타고 오면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기대


‘정진으로 생긴 폐병’ 정진으로 해결
시한부 화두 타파 ‘인간승리’ 주인공

선행스님
선행스님

해제다. 마치 겨울잠에서 깬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그 기분은 섭심(攝心) 곧 마음을 집중하여 혼미하거나 산란하지 않도록 갈무리하는 동시에, 접심(接心) 곧 정진의 끈을 놓지 않고 이어가는 기간이겠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선원에서 정진하고 해제의 기분을 만끽(?)했다. 허나 이번에는 지난해 초가을부터 경전강의 방송에 이어 지금 게재하고 있는 연재로 인해 선원 결제에 동참하지 못하고 원고에 집중하고 있어, 해제 때 만날 납자(선객)들을 맞이할 반가움으로 대신 해야겠다.

유독 기대되는 납자가 있다. 지난해 1년여 함께 선원에서 정진하며 그간의 역경을 극복한 일을 듣고, 눈물겨워 그만 즉석에서 ‘인간 승리’라는 별호를 붙여준 스님이다. 미국 LA사막에서 3년 동안 은사이신 청화 노스님을 시봉하면서 정진했다고 한다. 이후 폐에 이상이 생겨 결핵약을 하루에 수차례 한웅큼씩 서너 달 먹다가, 마침내 국립 결핵 요양원에 입원했단다.

근무하는 직원 중에 첫 대면을 하기가 무섭게 “스님! 인생 막장에 오셨습니다!” 그 한마디에 그만 아찔하더란다. 그렇게 석 달을 꼬박 요양하던 어느 날, ‘정진으로 생긴 병인만큼 정진으로 해결해야 하지 않겠나!’ 문득 정신이 들어, 그길로 짐을 챙겨 곧장 선원에 방부를 했단다.

좌복에 앉아 안간 힘을 다해도 연신 몸이 굽혀져, 고꾸라지기 일보 직전까지 버텼단다. 그해 한철 석 달 동안 무릎 위로 손을 얹고 지렛대 삼아, 온 힘을 다해 지탱한 손이 미끄러지듯 스치다 보니, 누비 동방 상의 세 벌이 달더란다. 그 후로 일체 약을 끊고 내리 10년 넘게 무문관을 위주로 정진했단다.

그간의 증상이 궁금하던 차에 폐 전문의를 만나 정밀검사를 받게 되었는데, 결과를 본 의사 선생님이 그만 까무러치듯 놀라더란다. 병명은 폐경화ㆍ기관지 확장증ㆍ만성 기관지 폐쇄증ㆍ폐 섬유화로, 이 중에 하나만 만나도 거의 몇 달을 넘기지 못할 시한부 상태였는데도 10년 넘게 지내온 것이 기적 같은 일이었다고 한다. 듣는 순간 찡한 마음에 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져, 즉석에서 ‘인간 승리’ 스님이라고 탄성을 하고 마음속으로 늘 그렇게 부른다. 

‘정진으로 생긴 병이기에 정진으로 해결하겠다!’는 한마디가 심장을 울리듯 가슴에 와 닿았다. 허투루 한 말이 아니었다. 수계한 이후로 줄곧 선원에서 정진한 스님은, 3년 결사ㆍ가행정진ㆍ용맹정진 도량을 찾아 일관되게 정진한 끈이 이어졌다는 생각에 더욱 감동이었다. 지금도 끊임없이 정진하는 그 스님의 호가 와운(臥雲)이다. 행여 구름을 비껴 타고 나타난다면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자못 기대가 된다.

선원에서는 해제에 임박해서 자진하여 조기해제(?)하고 떠나는 납자들이 간간이 있다. 1994년 동안거에 함께 지낸 납자다. 해제일에 임박한 날 아침 소복이 쌓인 눈에, 선원 뒷길로 오롯이 발자국이 선명했다. 아무 말 없이 해제비를 챙기지도 않고 걸망 진 스님의 흔적이었다.

20년이 훌쩍 넘어 우연히 마주쳤다. 이렇다 인사할 겨를도 없이 다짜고짜 그 날의 일을 물었다. 이른 새벽 마당에 소복이 쌓인 눈을 본 순간, 서산스님의 게송이 불현듯 떠올라 지체 없이 걸망지고 나왔단다.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불수호란행(不須胡亂行)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눈 내린 벌판을 어지러이 걷지 말지니, 오늘 내가 남긴 이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라. 

또 한 번 마주할 수 있을 런지 기대해 본다. 

선행스님 영축총림 통도사 한주

[불교신문3557호/2020년2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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