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래의 불교 세시의례] <1> 섣달그믐의 조왕불공, 가람기도
[구미래의 불교 세시의례] <1> 섣달그믐의 조왕불공, 가람기도
  • 구미래
  • 승인 2020.01.20 09: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묵은해 잘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 복되게 맞이하다

해가 바뀌는 시기는 종교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새해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클 뿐만 아니라 시작은 늘 조심스러워, 신적 존재의 가피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해를 복되게 맞이하려면 먼저 묵은해를 잘 마무리해야 한다. 그 마무리는 지난해의 무사안녕에 대해 두루 감사하고,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며 참회하는 일일 것이다.

이에 사찰에서는 섣달그믐에 제야도량·포살법회 등을 열어 성찰의 시간을 갖는가하면, 특정공간에 머물며 가람공동체를 수호하는 신에게 의례를 올리기도 한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인 섣달그믐에 의례대상으로 모시는 대표적인 신격에 조왕(竈王)과 가람신(伽藍神)을 꼽을 수 있다.

조왕은 부엌의 신으로 후원을 지키고, 가람신은 가람을 수호하는 토지신으로 사찰 입구에 주로 모셔져 있다. 각각 가람공동체의 안채에 해당하는 후원과 전체 결계도량 영역을 지키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어, 이들 신을 섬기는 조왕불공과 가람기도를 살펴본다. 
 

섣달그믐 부뚜막에 공양물을 차려놓고 올리는 진관사 조왕불공.
섣달그믐 부뚜막에 공양물을 차려놓고 올리는 진관사 조왕불공.

삿됨을 막는 경책의 신 

조왕(竈王)은 불과 부뚜막을 관장하는 신으로 대부분의 사찰 공양간에는 조왕이 모셔져 있다. 탱화로 그려 모시거나, ‘나무조왕대신(南無竈王大神)’이라는 위목(位目)을 써서 모시기도 한다. 탱화의 경우 아궁이 땔감을 대는 담시역사(擔柴力士)와 음식을 만드는 조식취모(造食炊母)를 양쪽에 거느린 모습으로 흔히 그려진다. 

조왕의 역할에 대해 <석문의범>에는, 부엌을 지키는 일뿐만 아니라 ‘인간사를 엄정히 살펴 선악을 가리는 신(檢察人事分明善惡主)’이라 적었다. 이는 <포박자〉에 “매월 그믐밤 조왕이 옥황상제에게 죄를 고해, 죄가 큰 자는 수명을 3백일 감하고 가벼운 자는 3일 감한다”고 했듯이, 조왕이 하늘에 올라가 인간의 죄를 고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탱화에는 조왕이 머리에 관을 쓰고 문서를 든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후 조왕의 승천을 일 년에 한번으로 여겨 매년 섣달그믐에 집중적인 조왕 섬기기가 이루어진다. 

따라서 사찰에 모신 조왕은 공양간을 삿된 침입으로부터 지켜내는 역할과 함께, 인간의 죄를 감시하는 엄정한 책무를 지녔다. 부처님께 올릴 마지와 대중공양을 위한 모든 음식이 만들어지는 공양간은 뭇 생명을 이어가게 하는 신성한 영역이다. 그런 만큼 외부의 적도 물리쳐야겠지만 내부도 점검할 것을 깨우치는 참으로 적절한 설정이라 하겠다. 모든 신장은 우리를 지켜주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우리 안의 삼독을 경책하는 존재이기도 하지 않은가.

공양 소임을 맡은 스님들은 아침마다 공양간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조왕단에 불을 밝히고 하루의 무사함을 기원한다. 이러한 일상의 기도뿐만 아니라 매달 그믐에 조촐한 조왕불공을 올리고, 섣달그믐이면 한 해를 마감하며 본격적인 조왕불공을 올리는 사찰이 많다. 달과 해가 바뀌는 일단락의 시점에, 우리에게 공양이 닿기까지 무수한 은혜에 감사하고 성찰하며 올리는 기도인 것이다. 
 

섣달보름 하후원에서 스님과 신도들이 올리는 범어사 조왕기도.
섣달보름 하후원에서 스님과 신도들이 올리는 범어사 조왕기도.

오행조화 기원하는 공양물

진관사에서는 섣달그믐에 아궁이와 가마솥이 있는 전통 공양간에서 조왕불공을 올리는 전통이 깊다. 총무스님 또는 원주스님이 부뚜막에 공양물을 차려놓고 조왕의 자비로운 덕과 은혜를 찬탄하며 올리는 조촐한 기도이다. 이렇게 후원살림을 맡아보는 스님이 ‘조왕청’을 염송하며 공양을 올리고나면, 대웅전에서 섣달그믐의 묵은 제사를 마친 주지스님이 참여해 조왕기도 동참재자들과 사부대중을 위한 축원이 이어진다. 

조왕단에는 조왕의 위목을 모셔두고, 두 개의 커다란 가마솥과 부뚜막 위에 공양물을 차린다. 이날 쌀·보리·수수·팥·콩·조 등을 켜켜이 쌓아 만든 조왕편을 시루 째 가마솥 솥뚜껑 위에 올리는데, 부엌의 신에게 오곡을 바침으로써 풍요와 오행의 조화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있다.

또 다른 솥뚜껑에는 기름진 음식을 즐기는 조왕을 위해 부각·두부부침·녹두전을 비롯해 갖가지 나물과 과일을 올린다. 후원을 관장하는 스님이 주체가 되어, 부엌을 다스리는 신의 상징성과 입맛에 맞추어 올리는 지극한 정성의 공양물이다. 

범어사의 경우 섣달보름에 조왕불공을 올린다. 이날 저녁 천왕문에서 사천왕기도를 올리고나면, 사부대중이 함께 공양간으로 이동해 조왕을 향한 기도와 축원이 이어진다. 상후원과 하후원에 빠짐없이 공양물을 차려놓고 차례로 기도하는데, 어둠이 깔린 사찰후원을 오가며 조왕단 앞에서 발원하는 모습은 성스럽기 그지없다. 이날 기도를 마치면 떡국을 나눠 먹고 회향하니, 다함께 나누는 종교공동체의 여법한 섣달 세시의례라 할 만하다.

<불설조왕경>과 <불설환희조왕경>에, 조왕이 “경사를 만나게 하고, 악귀와 백 가지 병을 물리치는 신”이라 했다. 먹는 일이 만복과 만병의 근원이니, 부엌에서 생명과 건강과 복이 시작된다는 뜻은 참으로 타당하다. 불가에서 예로부터 ‘내호조왕(內護竈王) 외호산신(外護山神)’이라 하여 ‘조왕은 안을 지키고 산신은 밖을 지킨다’고 본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천왕문을 들어선 담장 안쪽에 자리한 통도사 가람각.
천왕문을 들어선 담장 안쪽에 자리한 통도사 가람각.

섣달그믐밤, 주지 스님의 기도

가람신(伽藍神)은 도량을 지키는 사찰 토지신으로, 한국불자들에게 익숙지 않으나 신중청에 ‘하계당처 토지가람’으로 빠짐없이 등장하는 신격이다. 송대(宋代) 선종사원에서는 가람당과 조사당을 법당 좌우에 배치하고 가람당을 토지당이라 불렀다. 중심법당의 양쪽에 물리적·정신적 외호를 맡을 존재들을 모신 것이다. 우리나라 사찰에서도 가람신을 모신 전각이 더러 남아있는데, 대표적으로 통도사 가람각을 들 수 있다. 

통도사의 가람각(伽藍閣)은 천왕문을 들어서서 담장 안쪽에 자리한 1칸짜리 자그마한 전각이다. 1706년에 건립된 이래, 삿된 기운이 침범하기 쉬운 안과 밖의 경계지점에서 도량을 지키고 있다. 내부에는 예부터 내려온 ‘밀호가람성신지위(密護伽藍聖神之位)’라 쓴 위패를 모셨고, 근래 도교적 색채의 가람신으로 묘사한 탱화를 조성해 걸어두었다. 본래 법당 외벽에 그려져 있던 적마(赤馬) 그림은 중건 때 사라졌는데, 가람신이 외호의 임무를 보러 쏜살같이 오갈 때 타는 말을 상징한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통도사에서는 섣달그믐밤 가람각에서 주지스님이 가람기도를 올리는 전통이 있다. 평시에도 매일 사시기도를 하고 있지만 특별한 의식은 연중 단 한차례인데, 섣달그믐 밤 11시 반에 주지스님 혼자서 ‘가람청’을 염송하며 올리는 기도가 바로 그것이다. 이 시간은 묵은해와 새해가 교차되는 시기로, 사찰의 대표로서 가람신에게 지난해의 옹호에 감사드리고 새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것이다. 

갖가지 과일을 차려놓은 가람단에는 매일 마지·차·등·향이 오르고, 법당에 비치된 가람기도 예불문에는 가람신의 위상을 ‘도량을 옹호하는 토지대신, 호법선신’이라 적었다. 이렇듯 가람을 수호해주는 든든한 존재이기에 눈 밝은 불자들도 소망을 기대어, 찾는 이 없을 법한 이곳에 신도들의 일상적인 가람기도가 이어지고 있었다. 가람신을 찾아와 절을 올리고 기도하는 이들, 한달불공을 청한 이들이 끊이지 않았고, 공양물 꾸러미마다 저마다의 소망을 지닌 불자들의 이름·주소와 발원내용이 정성스레 적혀있었다. 
 

천왕문과 해탈문 사이에 자리한 해인사 국사단.
천왕문과 해탈문 사이에 자리한 해인사 국사단.

가람을 지키는 토지신들 

해인사 국사단(局司壇)에 모신 국사대신(局司大神) 또한 가람신과 성격이 같다. ‘국(局)’은 사찰의 경내를 말하니 이를 맡아보는 소임의 신을 뜻한다. 국사단의 위치는 통도사 가람각처럼 천왕문을 들어선 사역(寺域) 경계지점이다. 그런데 원래 대적광전 왼편에 있던 것을 2007년 대비로전을 세우며 옮긴 것이어서, ‘가람당은 법당 좌측’에 세우는 선종사상의 사원구조를 지녔음을 알 수 있다. 옆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는 현재의 자리 또한 의미심장하다. 많은 이들이 그곳에 본래 마을의 성황당이 있었을 것이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오인스님의 연구에 따르면, 대보름마다 대중전체가 국사대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전통이 있었는데 일제말엽에 중단됐다가, 1973년부터 종성스님이 매달 그믐 국사단에서 다시 기도를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믐날의 술시나 해시를 ‘국사대신의 공양시간’이라 하여, 이때 마지와 함께 술·당근·묵·떡·과일·나물을 차려놓고 기도를 올린다. 통도사 가람신과 해인사 국사대신에게 올리는 기도가 ‘그믐’이라는 의례시간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을에서 지내는 성황제·당산제가 대보름이나 봄가을에 풍요를 비는 축제분위기를 지녔다면, 유사한 성격의 사찰 가람기도는 섣달그믐에 올리는 조촐한 감사의식이다. 한때 본전 옆에 자리하며 대보름마다 대중전체의 섬김을 받기도 하던 가람신의 위상이 조금씩 낮아짐 셈이다. 이와 더불어 원주 치악산 구룡사에도 사역 바깥에 유서 깊은 국사단이 있고, 표충사 경내 안팎에 있는 두 개의 내가람각·외가람각, 월정사 성황각 등도 모두 가람을 지키는 토지신을 모신 곳이다. 

가람신·부엌신 등은 산신·칠성신과 마찬가지로 민간에 뿌리를 둔 토속신이지만, 일상의 마지는 물론 연례의식도 단절된 곳이 많다. 외곽과 후방의 소홀하기 쉬운 곳도 전체를 흔들 수 있는 소중한 영역임을 알아 선조들은 빠짐없이 감사의 마음을 올려왔으니, ‘마무리를 잘하면 시작은 절로 잘 되게 돼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듯하다. 

구미래 불교민속연구소 소장

[불교신문3551호/2020년1월18일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