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의 길에서 만난 세상 속 이야기
수행의 길에서 만난 세상 속 이야기
  • 허정철 기자
  • 승인 2020.01.09 09: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월간 ‘신문예’ 신춘문예 수필 당선한 장산스님
당선작과 50여 편 이야기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출간
순수한 시선으로 본 세상, 그로부터 얻은 깨달음 눈길

허공의 달을 병에 담은 동자승

장산스님 지음 / 조계종출판사
장산스님 지음 / 조계종출판사

“머리는 허공에 두고/ 두 팔은 은하수에 닿아 있다// 내가 세상에 올 때 그가 따라와/ 내가 주인이라고 한다// 일상사는 삼생(三生)의 인연/ 나도 한 번 본 적 없는 낯선 그놈// 태고적부터 써 내려온 허물을 벗고/ 나는 배추밭을 나는 나비”(장산스님의 시 ‘무영수(無影樹)’)

지난해 월간 <신문예> 신춘문예 수필부문에 당선 된 부산 세존사 회주 장산스님이 당선작을 비롯해 그동안의 글들을 모은 신간 <허공의 달을 병에 담은 동자승>을 출간했다.

장산스님은 지난 2013년 부산에서 설악산까지 53일간 왕복 1300킬로미터 걷기 수행을 성취한 기록을 엮은 수필집 <걷는 곳마다 마음꽃이 피었네>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또 당대(唐代) 조주 선사의 말씀을 풀어 쓴 <조주어록 석의>를 비롯해 스승인 고암 선사의 뜻을 기록한 <고암 법어록> 등 여러 책을 펴냈다. 그리고 2019년 겨울, 그간 수행 길에서 만난 사람과 풍경들을 통해 깨달은 내밀한 이야기 50여 편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선보여 주목된다.

이 책에는 전국 방방곡곡 홀연히 길을 떠난 장산스님이 마주한 풍경들로 가득하다. 불현듯 도반의 연락을 받고서, 또는 계절이 바뀌거나 갑자기 호기심이 생겨 떠난 길 위에서 스님은 눈부신 정경과 인상적인 사람들을 만난다. 20년 전 가을,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속 정취를 보러 봉평으로 향한 스님은 허생원과 동이가 걸었을 무릉도원 같은 메밀꽃밭에서 강렬한 달빛에 취한다. 또 1000년 전 최치원 선생이 “천상이 어딘가 했는데 바로 예로구나”라며 감탄한 곳으로 붉디붉은 진달래로 가득한 홍류동 계곡에서 봄의 향연을 만끽하기도 했다.
 

지난해 월간 '신문예' 신춘문예 수필부문에 당선 된 부산 세존사 회주 장산스님이 당선작을 비롯해 그동안의 글들을 모은 에세이 '허공의 달을 병에 담은 동자승'을 출간했다.
지난해 월간 '신문예' 신춘문예 수필부문에 당선 된 부산 세존사 회주 장산스님이 당선작을 비롯해 그동안의 글들을 모은 에세이 '허공의 달을 병에 담은 동자승'을 출간했다.

“궁남지에 핀 꽃과 아직 피지 않은 연 봉우리를 사람들은 자신의 눈 속에 넣으려고 드넓은 꽃밭을 헤매는데, 세상의 모든 연꽃은 여기에 다 와 있다는 것을 알았지요. 사람들은 그날따라 얼마나 많이 왔는지, 연지(蓮池) 두렁길에서 부딪쳐 걸을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모두가 연꽃 이야기만 하는데 가만히 보니 사람들의 눈동자엔 수많은 연꽃들이 환하게 피어 있었습니다. 그들도 나처럼 연꽃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눈 속에 담아가려는 것 같았지요. 서 대사에게 연꽃을 얼마나 찍었느냐고 물으니, 그는 말하기를 연꽃을 찍는 것이 아니라 연꽃 속의 미소를 본다는 것이었지요.…염화미소? 부처님이 영산에서 연꽃을 드시니 가섭이 미소를 지었다는 그 염화미소가 생각났습니다.”

특히 흐드러지게 핀 부여 궁남지 연꽃밭의 정경을 담은 ‘궁남지 연꽃이 필 무렵’은 월간 <신문예> 2019년 신춘문예 수필 부문 당선작이기도 하다. 스님은 “가끔 그를 쓴 것을 한 스님에게 보여줬다가 그만 신춘문예에 응모하고 말았다”면서 “덜컥 수상작이라는 통보를 받고 이것이 좋은 것인지 뭔지 몰라 어쩔 줄 몰라 했는데 또 주변 사람들이 책으로 나오면 좋겠다 하여 세상에 나오게 됐다”고 전했다.

더불어 세상사는 사람들 속 장산스님의 ‘이야기 스케치’에는 위트가 넘친다. 남원 광한루에서 춘향이와 이몽룡을 즉석 연기하는 유쾌한 청춘남녀, 울산 진하 해변을 덮친 해무를 보며 처용가를 읊는 교포 3세 고대 언어학자 헤일리 킴, 가야산 해인사에 살던 기인 앵금이 등 저마다의 개성을 간직한 이들이 보통의 우리 삶에서 벌어지는 각양각색의 모습들을 이야기한다.

“세상사를 꿰뚫고 있으며 인간사를 변화시키는 글, 대중을 위해 만상의 참모습을 밝혀주는 글을 쓴다”는 스님은 순수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로부터 얻은 깨달음을 이 책의 각 글 말미에 짧은 시구절로 남겨 깊은 여운을 자아냈다. 여기에 책 곳곳에 스님의 직접 그린 세밀화도 볼거리다. 숨겨진 옛날이야기들을 마치 곁에서 들려주는 듯 친근하게 풀어나가며 삶에서 되새겨야 할 지혜와 교훈을 전해준다.

1965년 해인사에서 고암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장산스님은 해인사 강원과 동국대 불교대학을 졸업했다. 스님은 1985년 호주 시드니에 불광사를 설립했고, 이후 2003년 부산에 세존사를 창건했다. 또 조계종 초심호계위원·법규위원·교육원 역경위원장, 부산 동명불원 주지, 서울 대각사 주지, 재단법인 대각회 상임이사 등을 지냈다. 현재 부산 금련산 자락 세존사 반산선원에서 안거하며 스스로 노산(老山)이라 자호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