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국문학자의 30년 참선 수행기
어느 국문학자의 30년 참선 수행기
  • 장영섭 기자
  • 승인 2019.12.24 1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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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수련회서 시작
부지런한 정진한 기록
수행 통한 심신의 변화
구체적이고 생생히 전달

깨어남의 시간들

이강옥 지음 / 돌베개

정년퇴직을 앞둔 국문학자가 그간의 수행 행로에 대해 기록한 책이다. <깨어남의 시간들 - 수행의 길, 송광사에서 롱아일랜드까지>의 저자는 현재 영남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대 젊은 시절 출가를 결심하고 삼랑진 만어사에 들어간 적도 있었다.

스님으로서의 인연은 이어지지 못했고 결국 대신 세속에서 수행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본래면목을 찾기 위해 탁마해온 세월이 어언 30여 년이다. 겉모양은 늙었고 부침도 겪었으나 한결같이 유지되어온 것도 있었다. ‘이 뭐꼬?’   

이 책은 2001년부터 2018년까지 이강옥 교수의 수행기록을 시간적 순서로 기술하고 있다. 2001년 송광사, 2003년 거금도 송광암, 2010년 미국 롱아일랜드, 2012년 부산 안국선원, 2016년 송광사, 2017년 봉화 금봉암, 2018년 홍천 행복공장에서 쉼 없이 정진했다.

출가를 하지 못한 아쉬움 때문인지 출가수행자 못지않은 구도열로 가득하다. 출세간의 수행과 달리 세간에서의  재가 수행은 현대인들의 복잡한 사회생활과 분리되지 않는다. 그만큼 수행을 통한 삶의 변화도 ‘다채롭게’ 체험할 수 있다. 수행이 깊어지면 일상이 달라지고 타인의 일상도 다르게 대할 수 있다.

글쓴이는 자기 수행과 타인의 일상 관찰이 연결되는 흥미롭고 내밀한 과정을 친절하고 명료하게 보여준다. 특히 한국어를 오래 공부한 국문학자라는 이력이 책의 가치를 높인다. 수행을 통한 삶의 변화와 일상 속에 숨겨져 있는 삶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포착해 우리말로 표현해낸다는 것이 장점이다.

‘흐르는 물의 가르침’은 2001년 송광사 여름 수련회에서의 수행담이다. 그저 수행에 호기심으로 참여한 사찰 여름수련회에서 그는 벅찬 감동과 초발심을 얻었다. 초발심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성되는 것인지 그 생생한 과정을 담아 눈길을 끈다. “아는 자는 말하지 않는다.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깊은 내면으로의 여행이다.”

‘묵언’을 통해 우리 시대의 말하기를 참회하고 있기도 하다. “묵언은 말로 생계를 꾸려 온 나 자신의 과거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나는 살아남기 위하여 끊임없이 말을 해 왔다. 그중 참 많은 부분은 남을 헐뜯거나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남의 기를 죽이는 것이었다.” 

‘파도가 된 나’는 2003년 거금도 송광암 여름 수련회에서 얻은 선정(禪定)의 경험이다. “몽돌에 앉아 밀려오는 파도와 밀려가는 파도를 바라보았다. 파도가 밀려올 때 내가 들숨을 들이키고 파도가 밀려갈 때 내가 날숨을 내쉰다. 들숨에 내가 살고 날숨에 내가 죽는다. 파도도 밀려와서 살아나고 밀려가서 죽는다. 파도와 나는 함께 밀려오고 함께 밀려간다. 함께 숨을 들이쉬고 함께 숨을 내쉰다. 파도와 내가 하나가 된다. 나는 파도가 되었다. 그럼 나는 어디에 있는가?”

교환교수로 일했던 롱아일랜드에서, 다시 돌아간 송광사에서, 저자는 곳곳에서 ‘깨어나고’ 있다. ‘허공꽃’은 2016년 송광사 대중공양 때의 일을 기록했다. 2003년 거금도에서처럼 불교의 중도(中道)에 대한 통찰이 빛난다.

“‘이발’(理髮)은 머리카락을 다듬는다는 뜻이다. 자른다고 하지 않고 왜 다듬는다고 했을까? 어떤 손님은 이발사에게 자기 머리카락을 자를 정도와 방법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손님은 그냥 이발사에게 머리를 맡긴다. 물론 남자 머리카락의 알맞은 길이가 있을 것이고 또 손님의 머리 모양이나 취향과 나이에 따라 알맞은 스타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보면 이발이란 모순이요 아이러니다. 이발은 지나치게 짧게 잘라도 안 되고 지나치게 길게 잘라도 안 된다. 이발은 안 자르면서도 자르는 것이어야 하고 자르면서도 안 자르는 것이어야 한다. 이발에 중도(中道)와 살활(殺活)의 원리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참선 수행을 하면 정확히 몸과 마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궁금한 이들이 보면 좋을 책이다. 전체적으로 생활의 한 부분으로 자리한 수행문화를 인문학자의 시각으로 관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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