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교현장에서] 하루도 편한 날 없지만 오늘도 전법의 길
[포교현장에서] 하루도 편한 날 없지만 오늘도 전법의 길
  • 윤중근 포교사단 광주전남지역단장
  • 승인 2019.12.14 0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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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법회 참선 염불봉사까지
이따금씩 일정 겹쳐 난감해도
불교발전 밑거름 역할 ‘보람’

“참나, 오늘 또 나갑니까?” 뒷등으로 들려오는 보살의 조금 짜증 섞인 목소리다. 대꾸도 못하고 나서는 발걸음이 편할 리 없다. 그래도 어쩔 것인가. 보살 나름대로 서운해서 그런 것을. 이를 탓하기보다 오늘 치러야 할 소임을 떠올리며 포교 현장으로 나간다.

근래 일정을 돌아보았다. 지난 일주일을 적어보면 월요일 재적 사찰 백련사에서 초하루 법회, 화요일 원진사에서 참선수행, 수요일 화순 전대병원 병동 순회법회, 목요일은 강진 정수사 동공제 참석, 금요일은 문화 예술팀 연습실 입주법회 참석, 토요일 강진 무위사 법회 참석, 오늘 일요일은 강진불교회관에서 개최하는 사암연합회와 신도회 연합회의에 참석해야 한다.

다시 매월 정기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일정을 정리해 보면, 매월 중앙단 회의를 참석하고, 첫째 주 토요일은 포교사단 정기법회, 매주 초하루 보름에는 재적사찰 법회 참석, 매월 첫째, 셋째 화요일은 원진사 참선수행, 셋째 토요일은 망월묘역 염불봉사, 넷째 수요일은 화순 전대병원 병동 순회 법회에 참석한다. 시쳇말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어느 날은 두 세 개가 겹치기도 한다.

현재 광주전남지역단장 소임을 3년째 맡고 있고, 지역에서 불교대학과 백련사 신도회장을 역임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러한 직함을 10여 년째 계속 몇 개씩 달고 있었으니 가정에 충실할 수 없었다. 이를 곱게 보아 줄 보살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우리 집안은 원래가 기독교 집안이다. 어머니는 지역 교회 권사였고 형제들 모두 기독교인이다. 어릴 때부터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어서 자라서도 형제들 모두 자연스럽게 교회를 다니고 있다. 동생의 경우 고향 강진에서 교우들과 함께 해마다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이러한 집안에서 나 혼자 불교에 입문하게 된 것은 조금은 의외라 여겨질 것이다. 그것도 포교사로서 지역단을 이끄는 단장 소임을 맡고 있으니, 여기까지 오기에는 한 분 스님과의 만남이 계기가 됐다. 지금은 대한 종책특별보좌관 단장을 맡고 있는 혜일스님이다. 90년대 초 스님께서 백련사 주지로 주석하고 계실 때였다. 

당시 본인은 소설가 최인호의 <길 없는 길>이라는 경허스님을 주제로 한 역사소설을 읽고 불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관련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던 시절이었다. 마침 그 때 스님께서 강진에 불교대학을 개설하셨고 체계적으로 배워보고자 하는 호기심에 입학을 했다.

불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이 때부터라고 여겨진다. 불교대학 과정이 마무리되어 갈 즈음 혜일스님께서 몸담고 있는 강진군청에 불자회 창설을 적극 권유해 강진군청의 여러 도반들과 함께 불자회를 창설하고 초대 회장 소임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또 스님께서 강진군청 불자회 회장이면 포교사 고시도 보아야 한다고 강권하셔서 자의반 타의반 주위 도반들과 함께 포교사가 되었고, 군단위 신도회장을 다년간 역임하면서, 나름 지역 불교를 이끌었다.

한편으로는 어린이 포교를 위해, 강진읍 근교에 스님과 함께 부지를 사들 이고 건물을 지어 룸비니 동산이라는 어린이집을 개설했다. 그리고 이곳에 백련사에서 운영하던 불교대학을 옮겨, 포교사들이 직접 운영토록 하였다. 이 모두를 포교사 도반들과 함께하였고, 적극적인 활동으로 해마다 30여명의 불교대학생들이 배출되었다. 이러한 활동에 힘입어 그 당시 군수와 국회의원은 강진불교대학 출신이 될 정도였다.

지금 돌이켜 보면 할 만큼 했다고 자부하며 모든 걸 내려놓고 쉬고 싶을 때도 있다. 그래서 우리 보살도 내 건강도 생각하고, 가족과 함께 하고자 자신을 챙기는 것이다. 자신도 때로는 내가 사판의 길에 너무 치중해 수행에 소홀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모든 걸 내려놓고 스스로를 생각하며 깊게 참구하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아직은 그런 생각 자체가 자신의 이기심의 발로이지 않나 하는 생각에, 또 다른 소임을 받아 들여야 했다. 이제 중앙단의 부단장으로서 조금이나마 불교 발전에 디딤돌이 되어야한다고 다짐해 본다.

[불교신문3543호/2019년12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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