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로절로 우리절] <30> 진도 향적사
[절로절로 우리절] <30> 진도 향적사
  • 이준엽 광주·전남지사장
  • 승인 2019.12.1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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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 못오는 어르신들…기다리세요! 우리가 갑니다!”

농어촌 고령화 예견한 스님
10여년간 불교요양원 발원
노인복지센터 ‘상락원’ 개원

수급대상 1명서 150명으로
무료도시락에 주간시설 건립
“불자들 손길과 관심 기다려”
나이가 많은 신도들이 해를 넘길 때마다 “부처님 품안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에 어려운 살림에 노인복지시설을 꾸리고 있는 진도 향적사. 주지 법일스님은 적자운영을 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불자들의 관심과 손길을 기다리며 묵묵히 복지불사에 임하고 있다.
나이가 많은 신도들이 해를 넘길 때마다 “부처님 품안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에 어려운 살림에 노인복지시설을 꾸리고 있는 진도 향적사. 주지 법일스님은 적자운영을 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불자들의 관심과 손길을 기다리며 묵묵히 복지불사에 임하고 있다.

남도 땅 끝에 보물섬이 있다. 진도(珍島)이다. 1년 농사로 3년을 먹고산다는 풍요의 땅이다. 그런데 모든 것이 좋고 좋은 환상의 섬 진도도 비껴가지 못하는 것이 있다. 농어촌의 고령화이다. 진도는 이미 초고령화 시대에 접어든지 오래다. 65세 이상 노인이 32.4%에 이른다. 진도에 거주하는 주민 세명 가운데 한명이 타인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초고령 노인이다.   

며칠 전, 진도 향적사 주지 법일스님의 소식이 들려왔다. 향적사 경내에 노인 주간보호시설을 건립하고 준공허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법일스님은 5년 전 세월호 참사 당시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 긴급구호봉사단 현장지원 본부장’을 맡아 혼신을 다했던 주인공이기도 하다. 당시 스님은 전국에서 찾은 불자 봉사자들과 함께 황무지였던 불교 재난구호에 전설을 만들어냈다.

세월호 이후 몇 해를 건너뛰어 만난 스님의 얼굴은 여전히 자애로운 미소로 가득했다. 스님의 안내로 찾은 주간보호시설은 향적사 입구에 자리해 있다. 하얀색 단층건물로 59평 규모에 21명의 어르신이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법일스님은 오래전부터 농어촌의 고령화 사회를 예견하고 노인복지를 준비해 왔다. 불교요양원 운영을 발원한 스님은 10여 년전 진도군이 건립한 복지시설 위탁운영을 신청했다. 그러나 번번히 타종교에 밀리고 말았다. 

나이가 많은 신도들은 해를 넘길 때마다 “부처님 품안에서 여생을 보낼수 있도록 해달라”고 소원했다. 절에 오지 못하는 신도들이 늘어났다. 법일스님은 “오지 못하면 찾아가는 복지를 펴자”고 결론지었다. 노인재가복지센터 ‘상락원’을 설립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기 1년 전인 2013년이다. 재가복지센터는 지역사회에서 일정한 시설과 전문인력, 자원봉사자를 갖추고 필요한 재가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복지시설을 말한다.

특히 노인재가보호센타는 자격을 갖춘 요양보호사가 수급대상자인 노인가정을 직접 찾아가 집안을 청소하고 식사와 세탁 등을 거들어주는 가사서비스, 안마와 병간호 수발 등 간병 서비스, 말 벗을 하거나 상담하는 정서적 서비스 등 일상생활을 도와주는 재가복지다. 
 

상락원 이동목욕차 앞에 선 센터장 법일스님(사진 오른쪽)과 사무국장 지완스님.
상락원 이동목욕차 앞에 선 센터장 법일스님(사진 오른쪽)과 사무국장 지완스님.

상락원 문을 열고 요양사 한 명, 사무장 한 명을 채용했다. 그러나 수급대상자는 한 명이 신청할 뿐이었다. 수급대상 자격이 있는 신도들을 염두해 상락원을 개설했는데, 이미 복지혜택을 받고있는 센터를 벗어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렇다고 모질게 인연을 끊고 상락원으로 신청하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사찰에서 운영한다고 불자에게만 의지하지 않기로 했다. 법일스님의 표현에 따르면 ‘맨땅에 헤딩하기’였다.  

센터장을 맡은 법일스님까지 전 직원이 한명의 어르신을 위해 혼신을 다했다. 그렇게 2년간 적자를 감내하며 겨우 명맥을 이어갔다. 그러다 진도에서 세월호가 침몰하고 향적사는 모든 일을 세월호 구호봉사에 맞췄다. 당시 진도 청년회 출신 지완스님이 향적사를 찾았다. 지완스님은 세월호 봉사에 이어 상락원 사무국장을 자원했다.

그 후 상락원은 해를 거듭하면서 수급대상자가 늘어났다. 어르신이 부처님이기에 부처님 모시듯 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요양보호사 50여명, 수급대상자가 150여명에 이른다. 여기에 목욕차 2대를 갖춘 명실상부한 진도 최대규모의 노인재가복지센터다. 

상락원은 얼마 전부터 복지사업으로 약간의 수익이 발생하고 있다. 수익금으로 3년간 무료도시락을 운영하고 있다. 하루는 수급대상 어르신이 어지럽다며 쓰러졌다. 영양실조였다. 혼자 생활하다보니 제대로 먹지 못했던 것이다. 곰탕을 배달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한 무료도시락 배달은 향적사 신도들 몫이다. 

향적사 입구에 건립한 주간보호시설은 심신이 허약한 노인들을 낮 동안 보호해주는 시설이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노인시설을 갖추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모셔와 낮에 함께 생활하게 된다. 상락원 주간보호시설은 향적사가 주위의 지원 없이 3억원 이상의 예산으로 건립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아직 내부시설을 갖추지 않아 휑하다. 집기를 비롯한 시설을 갖추는데 불자들의 손길이 함께하기를 기원해본다. 
 

■ 향적사 주지 법일스님

“이 섬에선 노인복지가 포교랍니다”

상락원 센터장 법일스님
법일스님

“1980년대 진도 인구가 11만 명이었습니다. 지금은 3만 명에 불과합니다. 더 큰 문제는 젊은이는 계속해서 시골을 떠나고 늘어나는 것은 노인입니다.” 법일스님<사진>은 “지역에서 노령화로 인한 노인문제가 심각하다”며 ‘노인복지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스님은 “노인복지가 곧 포교이다”고 주장한다. 진도를 비롯한 지역에서는 노인의 질병, 빈곤, 고독사, 치매, 노인학대 등 고령화로 인한 노인문제가 심각하다.

특히 독거노인의 대부분은 개별활동이 불편하거나 일상생활이 어려워 타인의 도움을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 법일스님이 노인복지 포교에 힘쓰게 된 것은 오래전부터 현대사회의 흐름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진도에서 태어나 1975년 해남 대흥사에서 출가한 법일스님은 1985년 이래 줄곧 진도 향적사 주지소임을 맡아 지역포교에 힘써왔다. 진도중학생법회(1981년), 진도불교학생회(고등부. 1985년), 진도불교청년회(1982년), 향적사 어린이법회(1987년), 진도불교대학(2007년) 등을 설립해 지역포교를 선도해 왔던 것이다. 또한 30여년간 장흥과 해남교도소, 진도경찰서와 전남지방경찰청 등 지역단체 포교에도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열정적인 포교에도 불구하고 인구감소와 토요일 휴무제시행으로 갈수록 법회는 힘을 잃어갔다. 

“도시에서는 미래를 대비해 어린이, 청소년 포교에 힘써야 하겠지만, 농어촌에서는 점점 늘어나는 노인을 위한 복지포교가 절실합니다.” 법일스님은 “앞으로 농어촌에서는 미래불교를 대비해 사찰마다 노인복지를 실천해야한다”고 새로운 포교방안을 제시한다.  

법일스님은 농어촌의 고령화시대를 예감하고 노인복지로 포교방향을 수정했다. 스님은 대학에 다시 들어갔다. 무안 초당대학교에서 4년간 사회복지사(1급)를 공부한 것이다. 여기에 심리상담 1급을 비롯해 유아교육 1급과 요양보호사 1급 자격증도 갖췄다. “농어촌에는 이웃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어르신들이 많습니다. 종교를 떠나 이들에게 손과 발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지역의 사찰에서 펼치는 노인복지가 바로 포교입니다.”

[불교신문3543호/2019년12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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