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거, 집중적으로 수행에 드는 기간
별도 업무 분담 따라 소임표 만들어
간병 지객 정통 수도 욕두 등 다양

‘용상’은 ‘용같은 위신력 갖춘 코끼리’
한 철 슬기롭게 수행 대중 의지 담겨

자현스님
자현스님

안거는 명상문화에서 출발한 불교가 집중적으로 수행에 드는 기간이다. 인도는 계절상 여름의 우기 동안에 하안거가 진행된다. 그러나 동아시아에는 겨울도 있기 때문에 동안거도 존재한다.

안거 3개월은 특별한 수행 기간이다. 그러다 보니 사찰에는 스님들이 늘어나게 마련이다. 선원의 안거 대중은 상시로 사찰에 머무는 소임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별도의 업무 분담에 따른 소임표가 만들어지게 되는데, 이를 ‘용상방(龍象榜)’이라고 한다.

방(榜)이란, ‘방을 붙인다’는 의미로 공개된 게시물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문제는 용상인데, 이게 용과 코끼리라는 뜻이 아니라 용 같은 위신력을 갖춘 코끼리라는 의미다. 인도의 코끼리 토템에 따른 신성화가 우리에게 남긴 흔적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용상방의 한쪽 끝에는 거북 귀(龜) 자가 쓰인다는 점이다. 용(龍)과 귀(龜)를 대칭으로 사용하는 것은 한옥의 용마루 등에서 확인되는데, 부정한 기운을 물리치는 벽사(辟邪)의 한 방식이다. 용상방에 귀(龜) 자가 들어갔다는 것은 조선 시대 스님들이 용상을 코끼리가 아닌 ‘코끼리 같은 권능의 용’으로 이해한 흔적이다.

즉 용상이라는 단어에는 이를 ‘코끼리로 볼 것이냐’와 ‘용으로 볼 것이냐’의 문제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 경전이나 제석천과 관련된 신화 등을 보면, 인도에서 용상을 용으로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즉 불교에서 용상은 100% 코끼리라는 말이다.

용상방은 선원의 다양한 소임을 알 수 있어 흥미롭다. 지객(知客)은 선원에 찾아오는 손님을 안내하고 접대하는 역할이다. 간병(看病)은 병을 간호하는 소임이고, 소지(掃地)는 청소를 말한다. 이런 정도는 사회에도 있는 일반적인 역할들이다.

그 중에는 사찰에서만 사용하는 소임 용어도 있다. 정통(淨桶)은 정랑(淨廊) 즉 화장실 청소다. 어린 시절 화장실 청소의 추억이 출가한 선원에도 있는 셈이다. 수두(水頭)와 욕두(浴頭)도 있는데, 물 공급과 목욕탕 관리다.

예전에는 모든 물을 길어와야 했기 때문에 대중이 사용하는 물을 채워놔야 하는 수두는 상당히 고된 소임이었다. 또 욕두는 보통 때는 별일 없는 한직이지만, 목욕 날이 걸리면 온수까지 처리해야 하는 고난도의 임무였다. 가마솥의 끓는 물을 적시에 욕탕으로 공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명등(明燈)과 마호(磨糊)도 있다. 명등은 등불관리다. 언 듯 생각하면 별일 아닌 것 같지만, 화장실이 멀리 떨어져 있던 큰 절에서는 밤에도 일부는 불을 밝혀야만 했다. 즉 외등까지의 관리인데, 직접 관솔에 불을 붙이던 방식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화재의 위험이 높은 사찰에서는 보통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다음으로 마호는 풀 먹인 옷을 입을 때 풀을 쒀서 공급하는 소임이다. 

끝으로 다각(茶角)을 빼놓을 수 없는데, 차와 간식을 준비하는 동시에 재담꾼 역할도 요청되는 소임이다. 차는 습기에 약하므로 예전에는 뿔로 된 통에 넣어서 보관했다. 때문에 뿔 각(角)자를 써서 다각이라고 한 것이다.

용상방에는 한 철을 슬기롭게 수행하려는 대중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렇게 해서 안거에 든 스님들은 서로 돕는 화합을 통해, 용상의 위엄을 갖춘 눈뜬 대장부로 멋들어지게 거듭나는 것이다.

[불교신문3542호/2019년12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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