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불교민속 순례] <21> 부처님과 함께하는 삶, 부탄
[세계 불교민속 순례] <21> 부처님과 함께하는 삶, 부탄
  • 구미래 불교민속연구소 소장
  • 승인 2019.12.12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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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으로 가난해도 마음은 부자인 나라
사원과 종(Dzong)에 들어갈 때 어깨에 두르는 카네. ⓒrm0213
사원과 종(Dzong)에 들어갈 때 어깨에 두르는 카네. ⓒrm0213

불법이 깃든 식생활, 의생활

쌀밥을 치대어 둥글게 편 다음 마늘ㆍ치즈ㆍ생강 등의 양념을 발라 먹는 부탄식 피자가 있다. 담백하고 알싸한 맛이 일품인 부탄 서부지역의 전통음식 ‘점자’를 말하는데, 그들은 반죽으로 가운데 뾰족한 탑처럼 만들어서 그곳에 먼저 양념을 바른다.

별식을 먹기 전에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기 위함이고,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형상으로 숭배의 마음을 담는 것이다. 일상을 부처님과 함께하는 부탄사람들은 의식주 모두에 지극한 신심이 깃들어 있고, 신앙으로서만이 아니라 삶 속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깊이 녹아 있다. 

도축장과 동물원이 없는 부탄에서 모든 동물은 자연의 일부로 자유로이 천수(天壽)를 누린다. 최소한의 육류는 인도에서 수입하고 동물에게선 버터와 치즈를 얻을 뿐이니 채식이 굳건히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살생장면을 보지 않고, 나를 위해 살생했음을 듣지 않고, 나를 위해 살생한 의심이 없는 고기”에 한하는 삼정육(三淨肉)을 지키기 위함이자, 모든 생명이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농약도 쓰지 않고 불편을 감내하며 일체의 다른 생명을 해하지 않는 데 최우선의 가치를 둔다. 

부탄사람들은 전통 옷차림도 독특하여 여성과 남성이 모두 치마를 입는다. 남녀의 치마는 각기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세로선ㆍ가로선의 문양으로 음양의 이치를 담고 있다. 여성은 저고리를 입고 사각 천으로 된 ‘키라’를 발끝까지 내려오도록 두르는 치마인 데 비해, 남성의 경우 품이 넓은 원피스 형태의 ‘고’를 입은 뒤 허리띠를 묶어 길이가 무릎까지 오도록 끌어올린다. 그런데 이 옷을 특별한 행사나 공식적인 자리는 물론 학교와 직장에서도 입으니, 외출복의 개념으로 전통복식을 착용하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스스로 ‘부처님의 제자’라 여겨 사원에 들어설 때는 가사를 두른다. 전통복식을 갖추는 것은 물론이요, 그 위에 ‘카네’라는 흰 천을 어깨에 걸쳐 대각선으로 몸에 두르는 것이다. 노란색의 카네는 국왕만이 두를 수 있고, 여성들은 수가 놓인 길고 얇은 천을 쓴다. 사원과 관청이 함께 있는 부탄 특유의 ‘종(Dzong)’이라는 성에 들어설 때도 마찬가지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복식예법을 갖추고 성스러움과 마주하는 그들의 마음가짐이 감탄을 자아낸다. 

불교공동체의 집과 마을

경제적으로 가난한 나라지만 부탄서민들의 집은 튼튼하고 멋지다. 자급자족으로 의식주를 해결하며 살아간다지만 그렇게 반듯하고 창문도 많은 삼층집을 어떻게 뚝딱 만들어내는 것일까. 그 답은 마을이 하나의 공동체로 움직인다는 데 있다. 누구의 집이든 주민들이 힘을 합쳐 큰 돌을 쌓고 흙으로 발라 뼈대를 만들며, 아무리 작은 마을에도 기술자가 있어 목재로 아름다운 창문의 전통가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마음이 부자인 그들은 벽화와 단청으로 채색한 멋진 집에서, 일층은 가축들에게 주고 이층에 거주하면서 삼층에 부처님을 모신다. 집집마다 모셔둔 불단(佛壇)의 규모와 장엄은 놀라울 정도이다. 최소한의 물자로 검소하게 살아가는 그들이 화려하게 꾸미는 유일한 공간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불단에 청수를 올리고, 하루의 평안함에 감사드리며 잠자리에 드니 일상의 시작과 끝은 그렇게 부처님과 함께한다. 
 

부탄 어느 민가의 불단. ⓒskanaudtkd
부탄 어느 민가의 불단. ⓒskanaudtkd

누군가 부탄사람들의 가옥을 ‘검이불루(儉而不陋)’라 표현하였다. 소박하지만 누추하지 않아 당당하고 격식을 갖춘 모습이다. 그러다보니 마을을 다니다보면 어느 집이 부자이고 가난한지 알기 힘들다.

어느 나라든 가옥에서 빈부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게 마련이지만, 한 세기 전쯤에서 멈춘 것 같은 그들의 단아한 집은 경제력에 따른 차별성이 없는 것이다. 나와 네가 도움이 필요할 때 반드시 서로 도와줄 거라는 믿음이 체화되어 살아가는 이들이기에 ‘남들보다 좀더’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일까. 

마을 안팎에서 펄럭이는 수많은 깃발 또한 불교공동체 선(善)이 집약된 상징물이다. 깃발마다 경전구절을 적었으니 그들의 소망은 부처님의 말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마을로 접어들어 집집마다 연결된 구불구불한 길은 맨 꼭대기에 자리한 사원에서 멈춘다.

집의 가장 높은 곳과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 부처님을 모시고, 깃발에 적은 소망이 바람을 타고 모든 생명에게 빠짐없이 닿기를 바라는 이들. ‘인간은 홀로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터득하고,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일이 가장 쉽고 자연스러운 것임을 명쾌하게 보여준다. 

성스러운 행렬의 가피

부탄중부의 사람들은 해마다 겨울과 여름에 두 차례씩 성스러운 축제행렬을 맞이한다. 이 무렵 추위와 더위를 피해 수행하기 좋은 곳으로 옮겨 반년씩 지내는 스님들의 대대적인 이동이 있기 때문이다. 겨울에 떠나 여름이면 돌아오는 곳은 ‘부탄의 스위스’라 불리는 아름답고 성스러운 마을 붐탕이다.

이곳에는 부탄에서 가장 오래된 잠바이사원이 있어 스님들은 겨울이 오면 난방이 불가능한 사원을 떠나, 모든 성물(聖物)을 모시고 따뜻한 트롱사로 이운하는 ‘소엘 타브’라는 전통을 지녔다. 

깃발을 들고 악기를 연주하는 스님들, 불상과 성물을 모신 가마, 창과 방패를 든 스님들의 이운행렬은 장관을 이룬다. 행렬이 지나가는 마을마다 인근에서 모여든 이들 또한 긴 줄을 이루고, 큰스님은 한 명 한 명의 머리에 비단으로 감싼 관정법구(灌頂法具)를 대어 가피를 내린다. 법구에는 창건주로 추앙받는 샵둥스님의 사리가 모셔져 있어, 부탄사람들은 이 날 스님들을 친견하고 이운행렬 때만 공개되는 법구의 가피를 받고자 간절히 원한다. 

출발한 지 서너 시간이 지나 도착하는 마을 트롱사에서도 상기된 표정의 주민들이 스님들과 성물을 영접하기 위해 줄지어 기다린다. 겨울을 나게 될 트롱사는 부탄 정중앙에 자리한 곳으로 왕족의 역사가 시작된 땅이자 부탄 정신문화의 중심을 이루는 곳이다. 마을 입구에 부정한 기운을 정화하는 향을 피우고, 이운행렬의 도착과 함께 관정법구를 접촉하는 입성의식이 거행된다. 

이러한 의식은 곳곳에서 열린다. 부탄의 수도 팀푸에 위치한 정부청사이자 부탄불교의 총본산인 따시최종의 스님들도 겨울이면 푸나카종으로 이동한다. 경전을 짊어진 수천 명 스님들과 함께 불교본부가 따뜻한 푸나카로 옮겨갔다가 되돌아오는 겨울ㆍ여름의 대이동은 일대 장관을 이루게 마련이다.

떠나보내는 마을과 맞이하는 마을의 주민들에겐 반년마다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시간이자, 수백 수천의 스님을 친견하고 성물의 가피를 받는 축복의 연례행사이다. 그렇게 그들은 삼보와 함께 겨울을 맞고 여름을 맞는다. 
 

망자의 유골로 만든 차차.
망자의 유골로 만든 차차.

망자를 위한 공동체의 공덕

부탄에서는 사원은 물론 길가나 산기슭에서 망자의 흔적을 자주 접하게 된다. 사람이 죽으면 화장한 유골 가루와 재를 진흙으로 반죽해 손에 쥘 정도의 작은 탑처럼 만드는데, 이를 차차(Chacha)란 한다. 그릇에 고깔 뚜껑을 덮어놓은 형상이 앙증맞을뿐더러 여러 개를 만들어 한곳에 모아두니 산길에서 만나는 돌탑처럼 정겹다. 차차에 색을 칠하기도 하고 고깔부분에는 탑처럼 단을 표시하거나 문양을 넣는데, 모두 스님들의 손으로 만들어진다. 

유골의 대부분은 강과 산에 뿌리고 일부로 차차를 만들어 고인이 다니던 길가, 경치 좋은 곳, 사원 등에 두는 것이다. 또 그들은 마을 어귀나 언덕에 108개의 흰색 깃발을 세워 함께 살다 떠난 이들의 환희로운 왕생을 기원한다. 늘 오가던 곳에 차차를 두어 서로의 추억을 기리고, 기도를 담은 깃발을 세워 소망을 함께 나눈다. 차차와 깃발이 바람에 풍화되어 서서히 흔적이 사라지듯 슬픔도 자연스레 옅어질 것이다. 

그런가하면 망자를 위한 공양물로 보릿가루와 버터를 섞어 갖가지 모양으로 탑처럼 꾸미는 똘마(Torma)를 만든다. 똘마는 불단에 먼저 올리는 것이기에 스님들이 예술작품처럼 정성껏 만드는데, 나무틀에 보릿가루를 반죽해 살을 붙이고 버터로 만든 조각을 장식하면 멋진 똘마가 완성된다. 똘마를 불단에 올려 7일간 부처님께 망자의 극락왕생을 축원하는 공양물로 바친 다음, 산이나 지붕에 놓아두어 동물들이 먹도록 한다. 

그들은 윤회의 굳건한 믿음 속에서, 죽음을 내세로 가는 출발로 여기며 망자를 위한 의식을 여법하게 치른다. 따라서 직장에서도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최대 49일까지 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개 7일ㆍ21일ㆍ35일 가운데 자유롭게 선택하면서, 삼칠일간 쉬는 비율이 가장 높다고 한다. 이 기간 동안 자식들은 매일 스님과 함께 불공을 올리고 경전을 읽으며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스님은 고인을 위해 정성껏 똘마와 차차를 만들어 기도하고, 마을사람들은 유족과 함께 깃발을 세워 상실의 슬픔을 나누며, 일터에서는 긴 시간 부모에게 정성을 다하도록 허용하는 공동체 전체의 배려를 읽게 된다. 뿐만 아니라 부처님께 올린 똘마를 동물에게 아낌없이 보시하니, 모든 생명으로부터 받아 떠나는 망자의 공덕이 얼마큼일지 짐작하기 힘들다. 

[불교신문3542호/2019년12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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