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를 구하는 마음 내어 그대를 맞이하노라”

서민 부응하는 ‘정토불교’ 등장
전쟁 천재지변 苦 염불로 구원

아미타신앙 융성 극락왕생 염원
정토염불 성행 정토미술 나타나

일본 정토계 불화의 대표작품은
아미타불이 망자를 맞는 내영도

가마쿠라 시대 아미타25보살내영도, 일본 지온인 소장.
가마쿠라 시대 아미타25보살내영도, 일본 지온인 소장.

불교신자들이 가장 바라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임종 시 아미타불이 내영하여 극락으로 맞이해 가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여러 경전에는 아미타불과 함께 극락가는 길에 대해 말하고 있다. <관무량수경>에는 왕생인을 근기에 따라 9품으로 나누어 각 품에 따라 아미타불과 관음보살, 세지보살, 무수한 성중 또는 화불(化佛), 화보살(化菩薩), 금색연화(金色蓮華) 등으로 맞이해간다고 설하였다.

또 <무량수경>에서는 무량수불의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있는 자는 상중하의 3배(三輩)로 나뉘는데, 상배는 직접 무량수불과 보살들의 내영을 받으며, 중배는 무량수불의 화불과 그 성중의 내영을, 하배는 꿈과 같이 부처의 내영을 받는다고 한다. <아미타경>에서도 염불수행자는 임종 시 아미타불이 많은 성종과 더불어 내영함으로써 극락에 왕생할 수 있다고 하는 등 아미타 관련 경전에서는 모두 내영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미나모토노 요미모토(源賴朝, 1147~ 1199)가 가마쿠라에 막부(幕府)를 열면서 시작된 일본의 가마쿠라시대(鎌倉, 1185~1333)는 서민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불교 종파들이 성립하면서 일본 불교가 큰 변화를 겪었다.

특히 헤이안(平安, 794~1185) 말기에서 가마쿠라로 넘어가면서 정치적 변혁, 전쟁, 천재지변 등으로 괴로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염불만으로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설파한 정토종(淨土宗), 정토진종(淨土眞宗)이 큰 지지를 받았다. 그래서 흔히 가마쿠라시대의 불교를 정토불교라 부른다.

가마쿠라의 정토불교는 이미 헤이안 중기부터 시작되었다. 천태종 승려 겐신(源信, 942~1017)은 불교 경전과 중국, 한국, 일본의 논서 등에서 정토와 관련된 불교 문헌을 취합하여 저술한 <왕생요집(往生要集)>(985)에서 극락왕생을 원하는 사람은 매일 아미타불을 마음으로 생각하고 죽음을 맞이할 때는 아미타불이 맞이하러 오는 모습을 생각해야 한다는 왕생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였고, 이에 위해 아미타 신앙이 융성하고 극락왕생을 염원하는 열기가 높아졌다. 

가마쿠라 초기에는 히에이잔 엔랴쿠지(延寺)의 승려 호넨(法然, 1133~1212)이 오직 ‘나무아미타불’의 칭명염불(稱名念佛), 즉 부처의 이름을 염불하는 것 만으로도 극락왕생할 수 있다고 설하며 정토종을 열었으며, 그의 제자 신란(親鸞, 1173~1262)은 누구나 염불함으로서 아미타불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며 정토진종(淨土眞宗)을 열었다. 이후 잇펜(一遍, 1239~1289)도 유행염불(遊行念佛)을 설하며 일본 전국을 순례하면서 포교 활동을 했다.

이처럼 가마쿠라시대에는 정토염불이 성행하면서 정토교의 융성에 수반된 정토교 미술이 등장하였다. 정토신앙이 불화에 반영되어 나타난 것이 바로 일본의 정토계 불화이며, 그 대표적인 것이 아미타불이 여러 보살을 거느리고 죽은 사람을 맞이하러 오는 모습을 그린 내영도(來迎圖)이다. 
 

가마쿠라 시대 아미타성중내영도,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가마쿠라 시대 아미타성중내영도,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시대에 아미타내영도가 많이 조성되었지만 일본 정토계 불화에서는 아미타내영도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여 다양한 종류의 내영도가 발달하였다. 일본의 내영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미타불 일행이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내려오는 모습이다. 고려 아미타내영도에서 보던 모습과는 완전히 반대방향이다.

또 고려시대에는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을 거느리고 내영하는 아미타삼존내영도와 아미타불이 팔대보살과 함께 내영하는 아미타팔대보살내영도가 대부분인데 반하여, 일본의 내영도는 아미타불이 25명의 보살을 거느리고 내영하는 아미타25보살내영도와 다수의 성중을 거느린 아미타성중내영도가 많이 그려졌다.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아미타성중내영도는 아미타불이 산과 나무 등을 배경으로 각종 악기를 연주하는 성중 등을 거느리고 구름을 타고 내영하는 모습을 그렸다. 아미타불의 뒤에서는 마치 아미타불의 내영을 알리는 듯 큰 북을 울리며 극락왕생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온 몸에서 빛을 발하며 내영하는 아미타불과 왕생자를 맞이할 연꽃을 받쳐 든 보살 등 일행은 화면 모퉁이의 집안에서 고개 숙여 아들을 맞이하는 왕생자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 아미타불 일행이 탄 구름은 꼬리가 뒤로 흔날리고 있어 방향성과 속도감이 느껴진다.

이들을 둘러싼 사실적인 나무와 산, 휘날리는 흰 구름 등의 정경은 정말 서방에서 인간계로 임종자를 맞이하러 부처님이 내영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연화좌 위에 조용히 서서 한 손을 내밀어 임종자를 맞이하는 고려시대 아미타내영도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심지어는 아미타불이 산 너머 에서 상반신을 드러내고 마치 산을 곧 넘어 올 듯한 모습을 그린 것도 있다. 바로 야마고시아미타도(山越阿彌陀圖)이다. 일본 젠린지(禪林寺)에 소장된 야마고시아미타도는 산 정상부 너머에서 상반신을 드러낸 아미타불과 구름을 타고 산을 넘어 강림한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그렸다.
 

야마고시 아미타도. 일본 젠린지 소장.
야마고시 아미타도. 일본 젠린지 소장.

아미타불은 머리에 보름달 같은 둥근 원광을 배경으로 두 손을 가슴 위에 올린 채 저 멀고 먼 서방극락정토 세계로부터 내영하는 듯 서서히 떠오르고 있다. 정면을 직시하면서 산을 넘어 내영하는 금빛 찬란한 아미타불의 모습은 고요함 속에 그 존재를 드러낸다. 산에 비해 크게 그려진 아미타불의 모습은 마치 사바세계를 다 아우르는 듯하다. 저 산 너머가 어디인가. 바로 아미타불이 상주하는 극락정토세계가 아닌가. 

아미타불 앞에는 이미 산을 넘어 온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구름 위에 서서 관음보살은 두 손으로 왕생자를 맞이할 연화대를 들고, 대세지보살은 두 손 모아 합장하였다. 공손하게 몸을 구부린 채 서있는 두 보살의 모습에서 왕생자를 맞이하는 진지함이 느껴진다.

하단부 양측에는 악령으로부터 왕생자를 지키는 사천왕상이 각 2위씩 서있으며, 중앙에는 양손에 구슬장식이 늘어진 번을 쥔 동자 2위가 마치 길을 안내하듯 서로 마주보며 서 있다. 어디에도 왕생자는 보이지 않지만 동자가 쥐고 있는 번에서 극락으로 가는 왕생자의 영혼을 맞이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아래로 내려올수록 인물들의 크기가 작아져서 인지 산 너머 아미타불의 모습이 더욱 커 보인다. 

이 그림에는 실을 꿰는데 사용했던 작은 구멍이 있다고 한다. 일본 금계광명사(金戒光明寺)에 소장된 야마코시 아미타도에도 아미타불 손가락에 다섯 가닥의 색실이 묶여져 있었다고 한다. 이런 내영도는 염불자가 평소 내지 임종시의 의례에 사용한 것이라고 하는데, 왜 실이 묶여져 있었던 걸까. 그것은 그림속 임종을 기다리는 사람이 손에 이 실을 쥐고 숨을 거두면 곧장 아미타불의 인도를 받아 곧장 서방 세계로 가 그곳에서 왕생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참으로 흥미롭다. 
 

야마고시 아미타도의 협시보살을 확대한 모습. 일본 젠린지 소장.
야마고시 아미타도의 협시보살을 확대한 모습. 일본 젠린지 소장.

아미타내영도 가운데 가장 극적인 장면을 담아 낸 그림은 일본 지은원(知恩院)에 소장된 아미타25보살내영도이다. 세로 145cm, 가로 154cm의 거대한 비단에 아미타여래와 25보살이 구름을 타고 내영하는 장면이 드라마틱하게 그려져 있는데, 아미타불 일행은 갈색 바탕에 허공을 가르듯 화면 좌측 상방에서 우측 하방으로 45도 각도의 대각선을 이루며 내려오고 있다. 화면 향좌측에는 거대한 덩어리처럼 생긴 가파르고 험준한 산악이, 우측 하단에는 정토왕생자와 저택이 그려져 있다. 

아미타불 앞에는 흰색 구름 위 연화좌 위에 서서 거문고와 갈고, 비파, 생, 피리, 북 등을 연주하며 춤을 추거나 합장한 보살들이 아미타불을 둘러싸고 있다. 제일 앞에 도달한 관음보살은 무릎 꿇고 왕생자를 향해 커다란 연화좌를 내밀고, 뒤에 있는 보살은 무릎을 조금 굽힌 채 천개를 받쳐 들고 있다.

집 안의 왕생자는 목전에 다다른 아미타불 일행을 맞이하는 듯 합장하고 그들을 바라보고 검은색 승의와 갈색 가사를 입은 승려는 무릎을 꿇고 합장하였는데, 앞에는 경권을 올려놓는 경상과 붉게 칠한 쟁반 위에 흰색 향로가 놓여 있어 임종의례가 행해지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일본 가마쿠라시대의 내영도를 보고 있노라면 극락왕생을 희구하는 간절한 인간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문득 “수행자가 목숨을 마치려고 할 때 아미타불께서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비롯한 모든 권속들과 함께 금련화를 가지고 오백의 화신불을 나투시어 이 사람을 맞이하러 오시느니라 … 진리의 아들이여, 그대는 이제 청정하게 위 없는 도를 구하는 마음을 내었기에 내가 그대를 맞이하러 왔노라”는 <불설관무량수경>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불교신문3540호/2019년12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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