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본격 시작하는 입동(立冬) 소설(小雪)이 지나자 본격 추위가 몰려왔다. 수은주가 영하로 내려가고 눈까지 내렸다. 아주 덥거나 추운 계절은 가난의 서러움을 더한다. 난방비 걱정하지 않고 방한이 잘되는 집에서 반팔 반바지로 한 겨울을 나는 대한민국이지만 연탄 걱정, 끼니 걱정이 끊이지 않는 이웃도 적지 않다. 정부가 이들을 찾아 계절 때문에 삶과 건강을 해치는 불행을 맞지 않도록 조치하지만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민간의 따뜻한 손길이 필요하다. 

우리 불자들도 한 겨울 어려운 이웃과 함께 따뜻하게 나려는 자비행이 끊이지 않는다. 우리 종단의 아름다운동행은 11월8일 서울 인사동 북광장에서 ‘아이연탄맨 캠페인 사전 홍보·모금 행사’를 열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아이연탄맨 캠페인은 달동네· 쪽방촌 거주민 등 추운 겨울을 난방장치 없이 버텨야 하는 소외 계층에게 연탄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올해 6회째를 맞이했으며 주변 사람들과 함께 릴레이 모금방식으로 운영한다. 해를 거듭할수록 불교계를 넘어 일반 시민과 기업의 동참이 늘어난다는 소식이다. 불자들이 이 캠페인에 참여하면 달동네 쪽방촌 어르신들을 지키는 내의가 되고 온기를 내는 연탄이 될 것이다. 

불교계 장기기증 운동 단체인 생명나눔실천본부도 오는 12월3일 중계동 달동네를 찾아 독거노인 어르신들에게 이불과 쌀 등 생활용품을 전달한다. 서울의 대표적 빈민촌인 백사마을을 찾아 방한용품을 전달하는 생명나눔실천본부는 올해도 후원자와 홍보위원들과 함께 자비행을 실천한다. 

이외 많은 사찰과 불교신행단체들이 겨울 자비행에 발벗고 나선다. 광대한 팔만사천법문을 한마디로 축약하면 자비다. 발고여락(拔苦與樂), 괴로움을 없애고 더불어 즐거움에 젖는 것이 자비라고 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즐거움은 수행을 통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적멸(寂滅)이지만 물질적으로 힘든 사람을 도와 그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행동으로 이해해도 본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남을 돕는다는 생각에서 멈추지 않으면 된다. 

일본 에도막부 말기 선승 양관(良寬,1758~1831)선사는 마을 사람들이 낡은 절을 수리하는 바람에 부잣집으로 착각한 도둑이 들자 줄 물건이 없어 옷을 다 벗어주었다. 알몸으로 마당에 나온 선사는 달을 보고 ‘저 아름다운 달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한국의 우화선사(1903~1976) 역시 절에 도둑이 들어 모아둔 불사금을 훔쳐가려 하자 “절대 안된다”며 막아선 뒤 “빌려 가면 모를까”하고는 다 내주었다. 그리고는 다음날 제자들에게 이를 자랑했다. 

불교의 자비는 이런 식이다. 내가 가진 것, 내 소유물을 내주는 시혜가 아니라 잠시 갖고 있던 것을 본래 주인에게 돌려주되 베푼다는 생각조차 없는 보시 바라밀이 진정한 자비행이다. 그러므로 연탄 한 장 없어 추위에 벌벌 떨며 한 끼 밥 지을 쌀조차 없어 굶주리는 이웃을 보고도 눈 하나 깜빡 않는 업보(業報)를 쌓았다면 빨리 벗어나야 할 것이다.

[불교신문3537호/2019년11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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