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불화] <16> 타향에 남겨진 벽화들
[동아시아 불화] <16> 타향에 남겨진 벽화들
  • 김정희 원광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 승인 2019.10.09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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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대 사찰벽화, 中 산서지역에 다수 분포돼 있다”

탄탄한 구도, 능숙한 필치 돋보여
미국ㆍ캐나다 주요 박물관에 소장
화가 주호고와 제자들 주로 제작
미국 캔자스 시티의 넬슨 앗킨스미술관에 있는 치성광여래도.
미국 캔자스 시티의 넬슨 앗킨스미술관에 있는 치성광여래도.

캐나다의 수도 토론토에 위치한 로열 온테리오 박물관(Royal Ontario Museum)에 가면 뜻하지 않게 거대한 사찰벽화와 마주치게 된다. 가로길이가 11m에 이르고 높이도 5m가 훌쩍 넘는 벽화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감탄사와 함께 서글픔이 몰려온다. 벽화의 짜임새 있는 구성과 능숙한 필치에 놀라고, 이 벽화가 왜, 무슨 이유로 구만리나 떨어진 여기까지 왔을까 라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찡하곤 한다. 

이 벽화는 원래 중국 산서성 직산현의 흥화사(興化寺)라는 사찰에 있던 것으로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의 내용을 그린 것이다. 화면의 중앙에는 미륵불이 왼손은 무릎 위에 놓고 오른손은 가슴부근까지 들어 올려 손바닥을 아래로 향한 채 두 발을 흰색 연꽃 위에 올리고 대좌 위에 앉아있다. 두광과 신광을 갖추고 있는 미륵불의 좌우로는 두 보살이 손에 경전을 받쳐 들거나 가슴에 손을 올리고 서있으며, 본존과 좌·우측 보살 사이에는 천인이 공양물을 받쳐 들고 서있다. 

또한 본존의 좌·우 위쪽에는 각각 1인의 비구가 그려졌는데, 왼쪽의 노비구는 가슴 앞에서 두 손을 모은 채 본존불을 향해 서있으며, 오른쪽의 젊은 비구는 불자(拂子)를 들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화면의 양쪽에 흥미로운 장면이 그려져 있다. 바로 전륜성왕(轉輪聖王) 양거(穰)와 부인이 미륵의 제자가 되기 위해 삭발하는 장면이다. 

화면의 우측에는 양거가 머리를 풀어 늘어뜨리고 두 손에는 염주를 잡고 미륵불 쪽을 향한 채 의자에 앉아 있으며, 위쪽에는 승려가 칼을 들고 그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다. 뒤에 있는 인물은 막 잘려나간 머리카락을 두 손에 들고 있으며, 아래쪽 인물은 한쪽 무릎을 땅에 꿇고 넓적한 쟁반에 머리카락을 받으려 하고 있다. 앞에는 보관을 쓴 어린 태자가 양거의 소맷자락을 잡고 눈물을 닦는 모습이 보인다.

화면 좌측에는 머리를 풀어 늘어 늘어뜨린 부인이 합장한 채로 미륵불을 향해 의자에 앉아 있고, 위쪽에서 한 인물이 칼을 쥐고서 부인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으며, 부인의 등 뒤로는 화려한 보관을 쓴 여인이 슬픈 표정으로 왕관을 들고 서있다. 양거와 부인의 주위로는 대신과 시녀로 보이는 사람들이 주욱 둘러 서있다. 

이 벽화가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의 변상도라고 할 수 있지만, 설법하는 미륵불과 전륜성왕 부부의 체발장면만을 부각시켜 표현하여 강렬한 인상을 준다. 이 벽화가 그려져 있던 흥화사는 산서성 직산현의 남쪽 15㎞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곳으로, 수나라 개황12년(592)에 창건되었으며 원대(元代)에 중수되었다.

사찰 내에는 천왕전(天王殿), 나한전(羅漢殿), 중전(中殿), 후대전(後大殿) 및 동서배전(東西配殿)과 회랑이 있었으며, 주요 전각의 벽면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었으나, 1926년 조사 당시 내부의 전각은 훼손되어 벽화는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고 한다.

중전의 남벽에는 칠불도(七佛圖, 현 베이징 고궁박물원소장), 동벽과 서벽에는 각종 전각·궁전·수목·산수를 그린 벽화가 남아있었으나, 후대전(後大殿)의 동·서벽 벽화는 이미 없어진 상태였고, 다만 북벽 상부에 천왕(天王)과 여러 천상(天像)만 남아 있었다. 온테리오박물관의 미륵하생경변상도는 아마도 후대전의 서쪽 벽면에 그려져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 펜실베니아대학 박물관에서 광승하사 명대 벽화를 전시하는 모습.
미국 펜실베니아대학 박물관에서 광승하사 명대 벽화를 전시하는 모습.

그런데 1926년 조사 당시 후대전 북벽 동쪽의 모서리 부분에 “미륵설법도는 주호고(朱好古)와 장백연(張白淵)이 함께 그렸다”는 내용과 함께 “대원국세차무술중추십사엽○공필(大元國歲次戊戌中秋十四葉○工畢)”이라는 묵서가 발견되어, 미륵설법도는 원나라 성종 때인 1298년에 그려진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 후 1303년에 강력한 지진으로 인해 인근 지역이 모두 파괴되었을 때 흥화사 역시 건축물과 벽화가 파손되어 보수하였지만 원형은 거의 보존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박물관과 캔사스시의 넬슨 앗킨스(Nelson-Atkins)박물관, 펜실베니아대학박물관, 필라델피아박물관 등에도 흥화사 벽화만큼이나 기구한 운명을 가진 벽화가 여러 점 소장되어 있다. 이 벽화들은 모두 흥화사 벽화처럼 산서성의 사찰에서 옮겨왔다.

뉴욕 메트로폴리탄의 한국실 바로 앞 넓은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는 벽화와 넬슨 앗킨스박물관에 소장된 벽화는 산서성 홍동현의 광승하사(廣勝下寺)에 있던 것이다. 광승사는 동한대인 147년에 처음 창건되었으며, 특이하게도 상사(上寺)와 하사(下寺) 등 두 사원으로 나뉘어져 있다. 벽화는 하사에 있었는데, 광승하사는 당나라 때 창건되어 13세기에 불에 타고 1303년 대지진으로 무너졌던 것을 1309년에 재건하였다고 하니 벽화도 대개 그 무렵에 그려진 듯하다.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벽화와 넬슨 앗킨스박물관의 벽화는 광승하사 대웅보전의 동벽과 서벽에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두 작품의 구도와 형식이 거의 비슷하다. 두 벽화 모두 화면 중심에는 설법인(說法印)을 하고 결가부좌한 여래가 좌우 협시보살과 함께 배치되어 있으며, 그 좌우에 보살과 제석천, 범천, 사천왕 등이 서로 대칭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불, 보살의 대좌 아래에는 각각 공양자와 공양물이 있으며, 천상에는 6구의 과거불이 비천과 함께 하강하고 있다. 

넬슨 앗킨스박물관 벽화는 광승하사 후전 동벽에 있었던 것으로, 주존은 수미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앉아 왼손에는 금륜(金輪)을 들고 오른손은 설법인을 결하고 있다. 본존의 왼쪽에는 붉은 해가 그려진 보관을 쓴 일광보살(日光菩薩), 오른쪽에는 흰 달이 그려진 보관을 쓴 월광보살(月光菩薩)이 협시하였으며, 협시보살 옆으로는 십일요성신(十一曜星神: 日身·月神·羅·計都·紫·月·金星·木星·水星·土星·火星)과 시녀, 동자들이 묘사되어 있어 치성광여래도임을 알 수 있다.
 

캐나다 온테리오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흥화사 미륵불설법도의 미륵불.
캐나다 온테리오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흥화사 미륵불설법도의 미륵불.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벽화는 광승하사 후전의 서벽에 있던 것이다. 한때 치성광여래도라고 알려져 왔지만 주존 앞에는 석장과 약합을 든 약왕보살(藥王菩薩)과 약상보살(藥上菩薩)이 배치되었으며, 두 보살의 좌우로는 약사12대원을 상징하는 약사12신장이 표현되어 있어 약사여래도임을 알 수 있다. 상단에는 6구의 작은 부처가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약사칠불 중 6위를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두 벽화는 짜임새 있는 탄탄한 구성, 엄격한 대칭적 구도, 곧고 굵은 필선하며 인물의 강건한 형태 등이 앞에서 본 흥화사 미륵하생경변상도와 닮았다. 얼굴은 좀 더 사각형적이며 인물의 형태가 좀 더 경직된 느낌은 있으나 대의와 보살의 영락장식, 보관의 형태도 유사하다. 광승하사의 벽화가 흥화사 벽화보다 불과 10년 후에 그려진 것을 보면 광승하사의 벽화 역시 주호고가 그렸을 가능성이 크다. 주호고와 그의 제자들은 산서지역에서 활동하면서 나름 특색 있는 벽화를 그렸던 것 같다. 

흥화사와 같은 직산현에 있는 청룡사 후전(대웅보전)에는 흥화사 보다 이른 1289년에 그려진 미륵설법도와 석가설법도가 남아있는데, 미륵설법도는 흥화사 보다 규모는 작지만 둥글고 원만한 상호, 장엄한 구성과 유려한 필선 등이 흥화사 벽화와 거의 닮아있다. 뿐만 아니라 도상도 흥화사 벽화의 도상과 거의 일치하고 있어 주호고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주호고 또는 그의 일파는 13세기 후반~14세기 전반에 산서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사찰벽화 제작을 주도했던 것 같다. 그는 원대 양릉(襄陵) 출신의 화가로 “산수를 잘 그렸을 뿐만 아니라 인물을 매우 정교하게 그려 마치 사람이 살아있는 듯했다”(<山西通志>)고 한다. 하지만 지금 주호고의 진작은 흥화사 벽화 외에는 없으니 그의 명성을 확인할 길이 없다. 

펜실베니아대학 박물관에도 광승하사에서 가져온 명대의 치성광여래도와 약사여래도가 소장되어 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많은 중국의 벽화가 타국에서 떠돌고 있는지 알 수 없다. 흥화사 벽화는 일찍이 1920년대 골동상에게 넘어가 온테리오박물관으로 옮겨져 소장되었는데, 흥화사는 1930년대 중일(中日)전쟁 때 많이 훼손되어 현재는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고 하니 이런 게 바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다. 
 

중국 산서성 홍동 광승하사.
중국 산서성 홍동 광승하사.

[불교신문3524호/2019년10월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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