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절집에서 빠지지 않고 하는 것이 음력 7월15일 백중이다. 다음 생을 찾아가지 못한 영혼들과 몸을 받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지옥에서 지내고 있는 영혼들을 구해주는 날이다. 시드니 보리사에서도 매년 백중을 맞이하여 천도를 한다. 

먼저 각자가 일 년 동안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희생시킨 영혼들과 생명을 다한 후에 아직도 다음 생을 찾지 못해 떠돌고 있는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를 해서 백중 당일 날 한마음 한 뜻으로 기도를 한다. 

석가모니부처님 당시 목련존자 모친을 부처님과 여러 수행자들이 함께 지옥에서 하늘세계로 보내고 다시 힘을 쓸 필요가 없는 것처럼 천도가 잘 되면 좋은데, 힘이 부족해 매년 수고롭게도 백중을 맞이하여서 기도를 하고 음식을 마련하고 의식을 한다. 

주인 있고 주인 없는 영혼들 안에는 보통은 돌아가신 사람들만 포함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내 한 몸을 유지하기위해 희생된 영혼들과 다른 몸을 유지시키기 위해 희생시킨 영혼들을 위해 긴 시간 동안 참회기도를 함으로써, 생명의 존귀함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하루 전날 몇 명이 모여 시장을 같이 보고 음식을 만드는 일과 불단과 영단을 준비한다. 준비하는 음식은 어느 동네, 어느 절 방식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 각자 다른 지역 다른 사찰을 다녔던 기억에 제사상이라 생각하여 절식이 아닌 자신의 집에서 하던 식도 등장한다. 다만 중요한 것은 준비하고 염불하는 이들의 마음이 얼마나 정성스럽고 다른 이익을 따지지 않고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시간과 공간을 청정하게 장엄하느냐에 달려있다.

전통 위폐를 하나하나 접어서 했었으나 올해부터 그냥 인쇄 된 종이에 영가 명단을 적는다. 위폐엔 지붕도 있고 문도 있고 방바닥도 있다가 인쇄지엔 위아래 연잎 만 있다. 집 모양이어야 죽어서도 그 안에서 편히 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접어왔던 종이위폐가 문명을 맞아하여서 연잎으로 바뀌었다.

이미 다음 생을 잘 살고 오지 않는 영혼들은 어짜피 오지 않으니 어쩔 수 없지만, 만약에 헤매다 온 분들이나 얼떨결에 따라 들어온 영혼들은 집이편안할지 연잎이 편안할지 알 수가 없다. 시대를 핑계 삼아 모두가 본래자리에서 벗어나고 다른 목적으로 변질되어 갈 뿐이다.

보리사는 신도 숫자도 적지만 절을 시작한지 10년이 되어도 거실을 법당으로 사용하는 셋방살이를 면하지 못한 까닭에 매번 병풍을 설치하고 영단을 설치하고는 끝나면 위폐를 태움과 동시에 영단도 사라진다. 항상 위폐를 놔둬서 갈려는 영혼들의 발목을 잡지 않기 위해서 영가 위폐는 의식을 마치고해가 지고 나면 위폐는 태워져서 재로 돌아간다.

효심에 위폐를 오래 동안 놔두려는 이들도 있지만, 훨훨 날아가서 다음 생을 빨리 찾아가고 다음번엔 위폐를 쓰더라도 오지 않고 새로운 삶을 살도록 기원해주는 것도 그에 못지않은 효심이다. 그리고 생명을 다하더라도 천도가 필요 없이 다음 생을 빨리 찾아 들어가도록 열심히 마음을 닦는 것이 여러모로 본인에게도 좋고 자식들에게도 좋은 일이다.

법회에 참석하는 이들이 한국사람 뿐만 아니라 중국인도 있는 까닭에 <금강경>을 한국인은 한국 발음으로 읽고 중국인은 중국 발음으로 두 번을 읽어 부처님 전에 불공을 드리고 천도를 한다. 천도에도 의식 중간에 원각경보안보살장을 영가를 위해서 독송을 하고 한국식으로 잔을 올리고 절을 한다. 외국인들이 처음엔 어색해 하더니, 여러 번 하다 보니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매번 20명을 넘을 정도의 작은 숫자가 참석하는 백중 천도이지만 모두가 매번 한 마음으로 일 년을 정리하고 화합의 계기로 삼는 날 가운데 하나이다. 

[불교신문3523호/2019년10월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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