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곁에 스님이 이 시대 정취보살

지혜 없는 자비는 ‘연민’에 불과
중생 도울 땐 다시는 고통 속에
되돌아가지 않게 하는 지혜 갖춰

원욱스님

관세음보살이 선재에게 보현의 행원을 찬탄하고 계실 때, 저 멀리 동쪽에서 한 보살이 등장하니 바로 정취(正趣)보살이다. 이 보살이 공중에서 발로 윤위산을 살포시 누르니 사바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며 땅속에서 온갖 보석들이 찬란하게 솟구쳐 올랐다. 그 뿐 아니라 정취보살의 몸에서 아름다운 여러 갈래의 광명이 나와 온 세상을 비추니 해와 달이 그 빛을 잃을 정도였다.

모든 고통 속에 있던 이들에게 광명이 비추자 극심한 고통과 고통의 원인이 사라져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선재가 환희하고 있었다. 그 때 관세음보살이 선재에게 어서 정취보살에게 가서 어떻게 보살의 행과 도를 닦아야하는지 질문하라고 깨우쳐주신다. 정신을 차린 선재가 정취보살 발아래 엎드려 절하며 여쭙는다.

“거룩하신 이여, 저는 이미 보리심을 내었지만 보살수행자로서 어떻게 보살의 행을 배우며 보살의 도를 닦아야 할지 잘 알지 못하옵니다. 원컨대 제게 가르침을 주소서!” “선재여, 나는 보살이 반드시 지녀야 할 ‘넓은 문으로 신속하게 행하는 해탈(普門速疾行)’을 성취했단다.”

정취보살은 십회향 가운데 제8 진여상회향 선지식이다. 진여(眞如)의 참된 마음, 선한 마음으로 우리의 본모습, 바로 부처님의 모습이다. 일체중생은 누구나 다 이 부처님 모습이 있다. 진여의 마음으로 여러 선근을 중생에게 회향한다면 보살은 보리심이 견고해져 수행에 전념하게 되어 궁극적인 지혜를 성취하게 된다.

지혜, 바로 정취보살은 지혜의 보살인 것이다. 지혜의 정취가 자비의 관세음과 함께 중생을 위해 다양한 회향을 할 수 있도록 원바라밀을 중심으로 아홉 개의 나머지 바라밀을 수행하는 것이다.

지혜 없는 자비는 중생을 동정심으로 보아 안타까워하는 연민에 지나지 않는다. 중생을 도울 때엔 중생이 다시는 고통 속에 되돌아가지 않게 하는 탁월한 지혜가 있어야 한다. 지혜는 내 안에 있는 광명이다.

이미 밝게 빛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찾을 것도, 찾아야 할 필요도 없이, 바로 내 자신이 빛인 비로자나 법신의 모습임을 자각하는 것, 이것이 나의 진실한 모습이다. 진여상회향이란 이런 모습으로 중생을 교화시키라는 것이다.
 

삽화=손정은
삽화=손정은

정취보살 이전까지의 회향은 보살수행자들은 전공필수인 오명(五明)을 익혀 중생의 생활을 풍족하게 했다. 바로 불교 교학인 내명(內明)을 통해 지혜와 행복에 이르는 길을 안내하고, 병든 이를 치료하는 방법인 의방명(醫方明), 중생과 소통하기 위한 언어학과 문법학인 성명(聲明), 논리적 근거를 확보하는 인명(因明), 중생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온갖 정보와 기술학인 공교명(工巧明)이다.

정취보살에 이르러서는 이 다섯 가지가 저절로, 무공용의 상태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중생을 교화하려는 모든 스님들은 불교교리에 해박하고, 의료정보, 다양한 언어능력과 스피치, 논리적인 사고력, 문화예술과 가난을 극복하는 돈 버는 방법에 대해서도 탁월한 능력을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난다 하더라도 충분히 실력을 저절로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교화할 중생을 보자마자 보살이 지혜로 스캔하면 바로 중생을 만족시킬 답이 나온다. 이 시대의 정취보살은 바로 여러분 곁에 머물고 있는 모든 출가자, 스님들이다. 스님들 역시 정취보살의 가르침으로 출가자의 근본입장과 출가사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정취보살은 이런 지혜로 무장하여 ‘넓은 문으로 신속하게 중생을 해탈시키는 회향’의 선지식이 된 것이다. 

“넓은 문, 빠른 행의 해탈, 이것은 오직 선지식과 부처님의 가피가 없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즉 용맹 정진하는 사람만이 보살의 근기를 얻고 지혜의 눈이 열리는 것이다. 나는 동방 묘장 세계의 보승생 부처님 계신 곳에서 여기 사바세계로 왔다. 그 부처님 계신 데서 여기로 오는 동안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불가설 불가설전) 시간과 세계를 지났다.

나는 그 세계 곳곳마다 들려서 부처님께 아름다운 공양거리를 장만하여 올리니, 모든 여래께서 인가해 주시고 모든 보살들이 찬탄하였다. 그러자 나는 나를 만나는 모든 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저절로 알게 되었다. 그들의 욕망과 이해를 알게 되니 그들 앞에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고, 광명을 놓고, 재물을 보시하기도 하며 온갖 방법으로 그들을 교화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좀 더 깊은 수행으로 얻어지는 공덕의 행은 남쪽의 타라발저성의 대천신을 찾아가라.”

[불교신문3519호/2019년9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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