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가족 화쟁’ 이 보여준 교훈
[사설] ‘가족 화쟁’ 이 보여준 교훈
  • 불교신문
  • 승인 2019.08.27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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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화쟁위원회와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가 가족을 주제로 대화 한마당을 만들었다. 이른바 ‘가족 화쟁’이다. ‘가족 화쟁’에서는 20대 아들 딸과 50대 부모가 한 자리에 모여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부모는 말을 안 듣고 반항하는 자식 때문에 고통받고, 아들은 개인의 자유보다 가족을 더 중시하는 집안 분위기에 짓눌린다는 하소연을 했다. 참가한 가족으로부터 사연을 듣고 이에 대해 나름의 해법을 서로 제시하는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한다. 

화쟁위원회가 4대강, 봉은사 직영, 민노총 파업, 세월호 진상규명 등 사회 종단의 굵직한 문제를 주제로 놓고 풀던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변화다. 화쟁이 사회 갈등에만 유효한 해법이 아니라 가족 간에도 적용된다는 진리를 일깨워준 셈이다. 그런 점에서 화쟁위원회가 앞으로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분야와 주제를 놓고 합리적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는다.

화쟁은 양 극단을 버리고 올바른 길을 찾는 불교사상이다. 원효대사는 화쟁으로 불교를 회통했다. 다름을 인정하고 보다 높은 차원의 화합과 통합을 꾀한 것이 화쟁의 본질이다. 인간 사회는 상대성의 노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와 남을 대립관계로 놓고 비교하다 갈등한다. 그 해법은 공격적이며 위험하다.

세속은 갈등을 ‘투쟁’으로 해결하려 한다. 이기면 성공이라 자화자찬하고 지면 원한을 품는 식이다. 그러나 연기의 관점에서 보면 어느 일방이 영원히 승리하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원인은 결과를 낳고 그 결과가 다시 원인으로 작용하여 다른 결과를 만드는 식으로 끝없이 이어진다. 바로 윤회의 사슬이다. 

불교는 윤회의 사슬에 들어있는 한 고통을 피할 수 없다고 본다. 윤회의 사슬을 끊기 위해서는 인연을 단절하는 길밖에 없다. 단절은 버림을 통해서만 이뤄진다. 상대가 있다는 상(相), 내가 옳다는 상(相)을 버릴 때 실상이 제대로 드러나고 나와 상대방의 갈등도 사라지고 둘 사이에 끝없이 계속되는 인연도 멸(滅)한다.

이는 마치 <금강경>에서 말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그 어떤 법도 얻은 바가 없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이름한다”는 것과 같다. 최상의 진리라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저 얻는 바가 없다는데 하물며 그 어떤 상도 영원불변하며 존속할 수 없다. 이를 직시하면 상대와 비교하여 갈등하고 결국 나와 남을 괴롭히는 어리석은 행동을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화쟁에서 말하는 갈등의 해법이 여기에 있다. 

우리 사회와 가족은 많은 갈등을 안고 있다. 노사관계, 이념 대립, 비정규직, 계층, 지역 등 사회 문제와 부모와 자식, 시어머니와 며느리, 부부 사이 등 온통 문제 투성이다. 이를 해결하는 길은 화쟁의 가르침 뿐이다. 대립하는 상대가 서로 마주 앉아 대화하고 받아들이며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는 방식이 아니면 갈등은 해소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화쟁위원회가 주최한 ‘가족 화쟁’은 좋은 선례를 남겼다. 종단도 한국이 낳은 가장 뛰어나고 독창적인 화쟁사상이 현대 병리현상을 치유하는 약으로 널리 쓰이도록 더 연구하고 보급하는데 매진하기를 권한다. 

[불교신문3514호/2019년8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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