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스님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 나타날 수 있는 인공지능 로봇은 최첨단 컴퓨터와 빅데이터가 갖추어진 인공지능이 내장되어있기 때문에 온갖 지식과 정보를 모두 갖추고 있다. 또한 일 년 삼백육십오일 미동조차 하지 않고 좌선하는 용맹정진이 가능하다. 아울러 입력된 준수사항에 100% 충실하게 반응하므로 계율을 어기는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선정을 통한 참다운 지혜, 즉 무분별적 지혜는 인간을 따라올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소프트웨어의 기본이 0과 1의 분별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자비심을 계발하는 것은 어떨까? 내 말에 순종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자심(慈心)은 로봇에게도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내 말에 거역하고 나를 해치려는 사람까지도 사랑하는 비심(悲心)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자신의 존재자체를 위협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자면, 앞으로 인공지능 로봇 스님과 차별화를 위해서는 무분별지(無分別智)와 함께 대비심(大悲心)을 계발하는 수행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이 대목에서 <선문염송>의 ‘파자소암’ 화두가 떠오른다. 신심이 돈독한 노파가 한 수행자에게 초막을 지어드리고, 이십년을 변함없이 공양 올렸다. 오직 수행에만 전념해온 스님에게 어느 날 자신의 젊은 딸을 보내어 꼭 끌어안으며 묻도록 하였다. 

“이럴 때, 어떠하십니까?” 

스님이 답했다. 

“마른 나무가 찬 바위에 기댔으니, 삼동(三冬)에 따사로운 기운이 없도다.” 

딸이 돌아와서 노파에게 이야기를 전하니, 노파가 말했다. 

“내가 이십년 동안 겨우 속한(俗漢)을 공양했구나.”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서 암자를 불 질러 버렸다.

이 스님이야말로 이십년 동안 열심히 수행해서 인공지능 로봇 스님을 닮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노파의 말은 이렇게 바꿀 수도 있겠다. “내가 20년 동안 겨우 인공지능 로봇을 공양했구나.”

이 화두에서는 인공지능 로봇 스님이 할 수 없는 무분별지와 대비심에 입각한 답변이 필요하다. 내가 그 스님이라면 어떤 대답을 해야 했을까? 

[불교신문3513호/2019년8월24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