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현

지금은 우리가 물과 공기처럼 흔전만전 사용하고 있는 한글, 그 한글의 탄생 과정이 참으로 혁신적이며 세종대왕과 신미스님 등의 목숨을 건 필생의 대역사(大役事)였음이 조철현 감독의 ‘나랏말싸미’를 통해 생생하게 구현되었다. 

사실 한글은 세계의 수많은 언어 중 언제, 누가, 왜 만들었는가를 명백히 알 수 있는 유일한 언어이자 과학적인 음운체계를 가진 가장 독창적인 언어로 평가되고 있다. 이제까지 한글은 세종대왕의 지극한 애민정신과 주체적 문화인식 아래 인간의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 떠 창제됐음을 원론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언제, 누가, 왜는 알고 있지만 ‘인간의 발음기관 모양을 어떻게 본 떠 자모음 스물여덟자가 생명체처럼 탄생하게 됐는가’에 대한 사려는 미흡한 편이다. 사실 한반도는 삼국시대와 고려를 거쳐 세종 당대에 이르기까지 중화문화권에 갇혀 과거시험이든 관공서 문서든 한자로 통용됐다. 

‘나랏말싸미’는 글자 따로 말 따로인 나라말의 이중 체계를 일원화하려는 세종의 야심찬 프로젝트를 형상화시켰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영화는 가뭄해소를 위해 세종과 신하들이 기우제를 지내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한문으로 된 장황한 축문에 세종은 “과연 조선의 터주 천지신명들한테 그런 비나리가 통하겠느냐”며 역정을 낸다. 이로부터 나라에서 가장 고귀한 임금 ‘세종’과 숭유억불 시대에서 가장 천한 신분인 스님 ‘신미’ 가 만나 ‘백성에게 가장 쉽고 간단한 글자’를 창제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뜻글인 한문을 고수함으로써 ‘지식 기득권 사수’에 나선 유자(儒者)들의 반대를 무릅쓴 세종의 극한까지 치닫는 소리글에 대한 탐구심과 천착은 경탄스럽다. 산스크리트어·티베트어·파스파 문자를 놓고 수백차례 씨름하던 화면이 서서히 명확한 점과 획으로 나누어지는 과정은 한글이 얼마나 정교하고 체계적인 단계를 거쳐 완성됐는지를 역력하게 보여준다. 

한편 세종을 연기한 송강호는 위대한 업적의 성군이라는 세종대왕의 이미지를 뛰어넘어 나라말을 소리글로 창출시켜나가는 리더로서의 산고와 좌절, 협업과 충돌, 고뇌와 희열을 보듬어내는 지성적 면모의 또다른 세종으로 신선하게 다가왔다. 

[불교신문3511호/2019년8월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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