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핵심 '연기법‘에 관한
철학적이고 분석적인 고찰
‘자아 없음’의 실상 밝혀

인식이란 무엇인가

신용국 지음 김영사

부처님은 연기법을 깨달아 비로소 부처님이 되었다. ‘이것이 있으니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니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으니 저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지니 저것이 사라진다.’ 부처님의 이와 같은 선언으로 요약되는 연기법(緣起法)은 불교의 근본이고 궁극이다. 곧 깨달음은 다른 무엇이 아니다.

연기법을 정확하고 완전하게 인식해야만 깨달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식이란 무엇인가-연기법, 세상의 ‘자아 없음’을 말하다>는 연기법을 입체적이고 종합적으로 탐구한 학술서다. 인간의 사고에 대한 치밀한 분석이 돋보인다.    

동서양 철학을 비롯해 아비담마·유식(唯識)·여래장(如來藏)·중관(中觀) 등 불교 여러 학파의 연기에 관한 이론을 비교 분석했다. 힌두교·도교 등에서 부처님의 가르침과 혼동되고 있는 유사 개념과의 대조도 정밀하다. 양자역학·뇌과학·생물학적 인식론 등 최신 학문도 불교의 연기법에 비춰봤다.

연기법에 대한 현대적인 해석과 바른 이해로 독자를 이끈다. 다양하고 철저한 논증을 통해 ‘인식’에 대한 개념적 전환을 역설한다. 아울러 연기법이란 세계가 상호 의존한다는 법칙이다. 연기법의 내면화를 통해 공생의 세상을 향한 사회적 실천의 길도 제시한다.
 

우리 모두는 상호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각자도생에 따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사진 픽사베이
우리 모두는 상호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각자도생에 따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사진 픽사베이

글쓴이는 <인드라망의 세계> <연기법, 우주의 진실> <연기론, 인식의 혁명> 등의 책을 꾸준히 펴낸 연기법 ‘전문가’다. 1부에서는 연기법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용어와 개념들을 소개한다. 2부는 연기법에 대한 본격적인 해부다. 부처님이 법문한 ‘오온연기’ ‘육육연기’ ‘십이연기’를 심층적으로 다뤘다.

3부에서는 불교 교리와 자주 혼동되는 유사 개념들을 바로잡았다. 단적으로 말해 신(神)이든 자아든 본질이든 형이상학적 존재이든, 실재를 상정하면 무조건 불교가 아니다. 아울러 다양한 불교 부파(部派)들의 이론들을 비교·대조했다. 기존의 어느 책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다채로운 분석과 도표를 통한 정리가 눈에 띈다.

4부에서는 연기법 수행의 의의와 실제 방법을 설명했다. 5부에서는 인지생물학·뇌과학·양자역학 등의 최신 과학 이론을 연기론과 대비해 그 특성을 견주었다. 현재까지 인류기 다다른 지성(知性)의 최첨단은 결국 연기법과 일맥상통하고 있음을 논리적으로 상세하게 규명했다.

5개의 부, 34개의 장, 424개의 소제목으로 연기법의 밑바닥까지 긁었다. 다방면에 걸친 풍부한 인용과 총체적인 접근으로 학술적 연구에 낯선 이들에겐 다소 난해한 책일 수 있다. 붓다의 연기법이 인류 최고의 지혜임을 입증하려는 치열한 탐구는 박수를 받을 만하다.

깨달음은 인간의 전유물이다. 곧 세상의 근본이자 동력인 연기법 역시 인간의 인식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법이다. 연기법을 다루는 대부분의 책들은 불교 경전과 교리부터 시작하는 경향이 강하다. <인식이란 무엇인가>의 차별성은 불교 이전에 연기법 그 자체를 다룬다는 점이다. 연기를 깨달아야만, 연기가 드러난다.

저자는 모든 알음알이를 가능케 하는 ‘인식’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 인식자와 인식대상, 인식행위의 본질부터 차근차근 살펴보는 방식을 택했다. 예컨대 관습적으로 연기법의 대명사로 사용되는 무아(無我) 등 기존의 불교 용어를 다른 용어로 대체하고 있다. 깨달음은 불교가 아니라 ‘연기법’에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연기법을 바르게 아는 것이란 나와 세상의 인과(因果)를 아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것이 일어나니 저것이 일어나고, 저것이 사라지니 이것이 사라진다”는 부처님의 유명한  설법은 불교의 진수이며 그것이 불교의 모든 것이다.

연기법의 핵심 메시지는 ‘자아 없음(無自我)’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서로 의존하여 형성되고 서로 의존하여 소멸한다는 사실을 철저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근본적인 괴로움이 종식된다.  

연기법의 인식은 단순히 앎을 위한 앎이 아니다. 세상을 위한 앎이고 또한 진정 나를 살리기 위한 앎이다. ‘특별한 내가 있다’는 실재론과 개체주의가 세상을 이토록 망쳐놓았다. 적자생존 약육강식 자원독점 물질만능 자본주의는 근원적으로 지구에 나만 남을 때까지 싸우고 빼앗을 것을 종용한다.

책은 ‘각자도생’의 무명을 극복하고 ‘의존적 형성’의 실상을 알아야 한다고 재촉한다. 더 늦으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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