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가르침은 보이는 상(像) 너머에 있는 ‘깨달음의 세계’
‘석가모니 붓다의 또 다른 모습들’ 강연

6월19일 서울 내를건너서숲으로도서관 다목적실에서 배재호 용인대 문화재학과 교수가 ‘불교미술 이야기’를 대주제로 강연했다.
6월19일 서울 내를건너서숲으로도서관 다목적실에서 배재호 용인대 문화재학과 교수가 ‘불교미술 이야기’를 대주제로 강연했다.

서울 은평구 신사동에 위치한 내를 건너서 숲으로 도서관(관장 김종철)’은 지난 65일부터 26일까지 4차례에 걸쳐 배재호 용인대 문화재학과 교수를 초청해 불교미술 이야기를 대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배재호 교수는 지난 619석가모니 붓다의 또 다른 모습들을 주제로 한 3번째 강의에서 불상과 불화 등 다양한 불교문화재 사진을 살펴보면서 일반시민에게 불교미술에 대해 쉽게 설명해 나갔다.

배 교수는 붓다 열반 후, 그가 존재하지 않는 공허하고 혼란한 인간 세상을 제도할 여러 붓다가 필요했다면서 이들 붓다는 성격과 역할은 각각 다르지만 그 모습은 모두 석가모니 붓다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겉으로 봐서는 별반 차이가 없고 수인과 자세로 구분이 가능할 뿐이라고 밝혔다.

윤회 통해 인간세상에 온 붓다

위대한 인물의 탄생에는 대개 신화적인 이야기가 있게 마련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에는 하늘(불교의 도리천)을 주재하는 환인(桓因)이 있고, 그의 아들 환웅(桓雄)이 인간 세상에 뜻을 두어 태백산에 내려와 곰과 결혼하여 단군(檀君)을 낳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인 성모 마리아의 몸을 통해 하느님의 아들 예수께서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고 한다.

불교에서도 이와 같은 탄생신화가 있다. 석가모니 붓다가 마야부인의 몸을 통해 도솔천에서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붓다가 하늘의 아들은 아니다. 그저 끊임없는 윤회의 과정에서 인간 세상에 왔을 뿐이다. 굳이 따지자면 붓다에게는 명확한 족보가 없는 셈이다.

역사적인 실존 인물이었던 석가모니 붓다의 일생에는 후대에 그의 전기를 기록하는 사람들이 각색하거나 윤색했을 법한 이야기들이 많이 남아 있다. 다만 그런 윤색 여부와는 별도로 붓다가 펼친 이상과 진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 결과 불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 중 하나가 됐다.

내가 누구인지, 삼라만상의 유유한 흐름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일찌감치 간파하고 있었던 붓다의 한 말씀, 한 말씀은 불교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을 하나둘씩 설득해 나갔다. 45년에 걸쳐 하신 말씀은 그 양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붓다의 열반 후, 인간 세상에 남겨진 제자들이 그 분의 말씀을 정리한 것이 대장경(大藏經)’이다.

결집통해 부처님 말씀 전해

붓다의 말씀은 글로 남기지 않은 불립문자(不立文字)였지만, 제자들은 붓다의 말씀을 입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이 구전(口傳)의 방법으로 장·단편의 시 형식인 게송(偈頌, gatha)이 이용됐다. 또한 보다 쉽게 기억하기 위하여 내용을 사성제(四聖諦), 팔정도(八正道), 십이인연(十二因緣)과 같이 4, 8, 12 등 몇 개의 특정한 숫자를 이용하기도 했다. 초전법륜 때나 이후에 말씀하신 내용을 기억으로만 정확하게 전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제자들은 들은 바를 각기 다르게 이해하고 있었다.

결국 결집(結集, saṅgiti)이라는 서너 차례의 모임을 통해 각자가 기억하고 있던 내용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사람이 기억해서 말하면, 여러 사람들이 보충하는 방식으로 내용이 정리돼 나갔다. 평생 곁에서 수행했던 아난이 붓다가 말씀하신 대부분의 내용을 기억해 냈다.

그리고 그 내용(, Sūtra)을 핍팔라(Pippala) 나뭇잎에 적은 다음, 대나무로 만든 바구니 장(, piṭaka) 속에 담았다. 이를 경장(經藏, Sūtra piṭaka)이라고 한다. 붓다가 정한 계율(戒律)을 담아 놓은 것을 율장(律藏, Vinaya piṭaka, 毘奈耶藏)이라 하며, 붓다의 말씀을 풀이하거나 해석한 것을 논장(論藏, Abhidharma piṭaka, 阿毘達磨藏)이라고 한다. 이를 삼장(三藏, tri-piṭaka)이라 하며, 여기에 정통한 스님을 삼장법사라고 한다. 이때의 경전을 패엽경(貝葉經)이라고 하는데, 이는 패엽, 즉 피팔라 나뭇잎에 붓다의 말씀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불멸(佛滅) 후 또 다른 붓다 필요

대장경에는 석가모니 붓다 외에 후대의 사람들이 쓴 전설과 같은 여러 붓다의 이야기도 실려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에 따라 붓다에 대해 기대하는 것도 달랐는데, 이러한 사정은 우리에게 여러 모습의 붓다를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붓다의 열반 후, 그가 존재하지 않는 공허하고 혼란한 인간 세상을 제도할 여러 붓다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들 붓다는 성격과 역할은 각기 다르지만, 그 모습은 모두 석가모니 붓다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겉으로 봐서는 별반 차이가 없다. 수인과 자세로 구분이 가능할 뿐이다.

요즈음 절에 가보면 석가모니 붓다가 모셔진 대웅전보다 또 다른 붓다인 아미타불이나 관음보살, 지장보살을 모신 극락전, 관음전, 지장전이 인기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세속적인 이익과 내세에 대한 불안으로 인해 석가모니 붓다보다는 아미타불이나 관음보살, 지장보살을 믿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 석가모니 붓다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점 또한 분명하다. ()과 용()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체()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대승불교가 처음 출현할 때 일부 불교도들은 예토(穢土)인 인간 세상과는 구별되는 피안(彼岸)의 세계인 정토가 있고, 그곳을 다스리는 붓다가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이들 붓다의 이름을 외우고 부름으로써 죽은 후에 그곳에 태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그들의 상상 속에 석가모니 붓다와는 구별되는 또 다른 붓다와 그의 정토 세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쿠샨시대 간다라 지방에서 화지부(化地部)라는 부파가 1세기부터 2세기 사이에 찬술한 <무량수경(無量壽經)>, 북인도에서 1세기 말에 성립된 <아미타경(阿彌陀經)>, 모든 내용은 아니지만 1세기 전후에 찬술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300년경 인도 북부 카슈미르 지방에서 성립된 <열반경(涅槃經) 등은 대표적인 대승불교경전이다.

대승불교로 약사불 등 등장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아미타불, 미륵불, 약사불, 지장보살, 관음보살 등도 대승불교운동이 일어나면서 생겨난 석가모니 붓다의 또 다른 모습들이다. 아미타불은 사람들이 사후에 그렇게 가고자 염원하던 극락정토에 태어나는 것을 보장해 주며, 미륵불은 또 다른 정토인 도솔천에 태어나게 하거나 혼란한 인간 세상을 구원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 불상이 사후 보장을 약속하였다면, 약사불은 사후 보장 뿐만 아니라 온갖 질병을 치유해 주는 현실적인 역할도 한다.

그리고 지장보살은 선업(善業)을 쌓지 못해 지옥에 떨어진 중생들을 구원해 주며, 관음보살은 이 세상이나 저 세상에서 어려움에 빠진 중생들을 도와준다. 이들 붓다와 보살 속에는 과거 우리 선조들이 지녔던 삶의 애환과 종교적 감수성이 반영돼 있다.

석가모니 붓다는 열반에 들어갈 때, 제자들에게 자신의 모습인 불상을 만들지 말고 스스로 의지하거나(atta-dipa) 자신의 가르침()에 의지하라(dharma-dipa)고 당부했다. 붓다의 열반 후 약 500년 동안 인도에서 불상을 만들지 않던 무불상(無佛像) 표현의 시대가 이어진 것도 바로 이 유훈 때문이었다.

대상 만든 뒤 실체로 착각해

석가모니 붓다는 왜 그의 상(, 불상과 불화)을 만들지 말라고 했을까? 불교 수행의 목표는 무지(無明)과 집착에 의해 생기는 인생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무지와 집착이란 대상(對象)에 대한 모습을 만들어 그것을 실체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눈으로 보고 느끼는 상(대상, 모습)은 이 세상을 왜곡되게 보게 하는 매개가 된 셈이다. 붓다는 제자들이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 자신의 참 모습이 왜곡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붓다께서 의지하라고 했던 그의 가르침은 바로 상() 그 너머에 있는 세계, 즉 깨달음의 세계를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우리들은 붓다를 쉽게 설명하겠다고 열심히 불상을 만들고 불화를 그리고 있다. 왜곡 아닌 왜곡을 계속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곡되어 버린 또 다른 붓다들을 만나러 가는 이유는 과거 우리 선조들이 붓다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 조금이라도 짐작해 보기 위함이다.
 

배재호 교수는…
배재호 용인대 문화재학과 교수는 경북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국립대만대학 예술사연구소 석사과정 수료에 이어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불교미술사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학예연구사를 거쳐 1996년부터 용인대 문화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현재 용인대 박물관장도 맡고 있다.

대통령실 정책자문위원(문화재)과 문화재청 문화재위원과 문화재전문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불교신문 논설위원(2011~2017)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이코모스(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한국위원회 이사, 한국미술사학회 이사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나의 불교미술이야기> <중국불상의 세계> <세계의 석굴> <연화장세계의 도상학> <세상은 연꽃 속에> <동양미술사(공저)>, <중국의 불상> <당대불교조각>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중국사원문화기행> <중국석굴과 문화예술> 등을 발간했다.

정리=박인탁 기자 parkintak@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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