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미 정상의 판문점 만남
[사설] 북미 정상의 판문점 만남
  • 불교신문
  • 승인 2019.07.05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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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포성이 멎고 휴전협정을 맺은 지 66년 만에 미국과 북한 두 정상과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었다. 미국 북한 두 정상이 손을 잡고 남북을 오르내릴 때 아무런 장벽도 걸림도 없었다. 높이 15㎝, 너비 40㎝의 판문점군사분계선은 한낱 시멘트 덩어리에 불과했다. 

이미 두 차례 만난 양 정상이지만 6월30일 판문점 회동은 가히 세기적 사건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극적이고 역사적 순간이었다. 지난 2월 아무런 성과 없이 돌아갔던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뒤의 허탈감, 또 다시 한반도에 암운이 드리울지 모른다는 불안감, 아무리 해도 이 땅에 평화는 찾아오지 않을지 모른다는 절망감을 일거에 물리친 희망의 무대였다. 세 정상이 내딛은 한 걸음, 서로에게 건넨 한 마디가 모두 역사로 남을 감동의 연속이었다. 

지난해 4·27 남북 정상회담 때처럼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함께 판문점 북쪽 지역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남쪽 지역으로 내려왔다. 이로써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땅을 밟은 첫 미국 대통령이 됐다.

2년 전만 해도 서로를 향해 핵무기를 들이대던 미국과 북한의 양 정상은 “과거를 청산하고 미래로 나아가자”, “미국 대통령으로서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을 수 있었던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밝고 평화로운 미래를 희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백악관으로 초청했고, 김 위원장은 “언제라도 원하면 응하겠다”고 화답했다. 두 정상은 2~3주 안에 협상 팀을 꾸려 비핵화 협상 및 북-미 3차 정상회담을 위한 협상을 시작하기로 했다. 

혹자는 아무런 성과도 없는 ‘쇼에 불과하다’고 폄하하지만 비관적으로 볼 일이 아니다. 오랜 습(習)은 하루 아침에 변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거듭하고 노력해야 한다. 불교는 이를 수행이라고 한다. 수행에 앞서 지난 날의 잘못된 습을 되풀이 하지 않고 밝고 깨끗한 자신을 찾겠다는 원(願)을 세우는데서 변화는 시작된다. 원을 세우면 과거의 습을 씻어내는 참회를 한다. 더러운 물을 버린 빈 그릇을 맑고 깨끗한 물로 채우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남북관계도 이와 같다. 적대와 대립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고 무력으로 억누르려는 전쟁의 습에서 벗어나 평화 공존 화합의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지난 날의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 지난해 남북 정상이 만나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비핵화를 약속한 것이 참회다. 그 바탕에서 자주 만나고 대화를 나누며 평화의 기운을 키워야한다. 악한 행동이 거듭되면 파멸로 치닫지만 선한 행동이 거듭되면 평화가 찾아온다. 

끝없이 반복하는 힘은 믿음이다. 바른 길 옳은 행동을 한다는 믿음 만이 끝없이 올라오는 회의감을 억누르고 좌절하려는 의지를 일으켜 세우는 버팀목이다. 전 세계 언론이 비현실이라고 했던 세 정상의 판문점 만남은 우리가 옳은 길을 가고 있다는 믿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66년 전에 멈춰 섰던 평화의 시계가 다시 움직인다. 불교는 평화를 사랑하고 염원한다. 한반도에 영원한 평화가 찾아올 때까지 불자들의 기도 힘이 절실하다.

[불교신문3501호/2019년7월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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