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영

취재 현장에서 많은 스님들을 만나며 듣는 공통된 걱정이 있다. 뭘 하는지 알 수 없는 ‘요즘 스님들’에 대한 이야기다. 승가 구성원인 스님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공개될 이유는 없으나, 수행자의 일상이 어떠한 정진도 없는 것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거론하는 스님들은 어떻게 해보고 싶어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토로한다. 승가가 공동체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물어야하는 이유다. 

‘요즘 스님들’은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요즘 세태를 빗대어 표현한 말이다. 사찰의 문화가 그만큼 바뀌었다. 예불이나 발우공양에 참석하지 못해 대중에게 참회하는 풍경도 많은 사찰에서 사라졌다. 정기적으로 행해지던 자자와 포살도 형식화되거나 아예 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규율에 매여서도 안되지만 기본적인 규칙조차 사라져서는 안된다. 

승가공동체를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규칙이다. 계와 율, 청규 등은 청정승가를 구현하는데 더없이 소중한 약속이다. 한국불교가 1600년을 이어올 수 있었던 바탕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승가와 불교에 대한 경외심과 권위, 위의도 여기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종교로 최근에는 늘상 가톨릭이 꼽힌다. 여러 이유가 있으나 그 중 하나를 꼽으라면 가톨릭 성직자들의 위의가 살아있기 때문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보여지는 모습에서 위의가 살아있기에 존경심 또한 우러나오지 않을 수 없다. 

승가공동체와 유사한 가톨릭 수도원의 경우 하루 일과가 성독과 미사, 수행, 기도, 노동 등 공동으로 이뤄지는 일이 많다. 공동체 유지 비결이자 청정성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참선 수행을 하는 선원의 안거기간도 이와 비슷하다. 하지만 그것이 선원에 국한될 이유는 없다. 사찰을 구성하는 모든 대중이 출가자로서의 기본적인 예경과 정진을 병행해야 한다. 

승가에는 아름다운 전통이 많다. 그 중에서 공양주, 부목, 정통, 다각 등 각자 소임을 다 하면서도 함께 정진하고 포살하는 수행문화는 단연 돋보인다. 부정적인 의미의 ‘요즘 스님들’이 아니라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요즘 스님들’로 바꾸기 위한 공동체 문화를 지금이라도 다시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존경받는 승가로 거듭날 수 있다. 이 모두 ‘요즘 스님들’의 몫이다.

[불교신문3496호/2019년6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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