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평정해 호흡 정지되면
‘있는 그대로의 법’을 보게 돼
괴로움 소멸하는 길도 경험

등현스님

수행은 남에게 보여주거나 자랑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구호를 외치거나 명예를 얻기 위한 것도 아니다. 다만 잠재되어 있는 번뇌를 정화하여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얻고 ‘오온에 나없음’을 증득하여 해탈하기 위함이다. 수행 도중에 발생하는 모든 현상에 대해 집착하거나 자랑하지 않고 알아차림을 확립하면, 몸의 움직임과 의도, 심과 법의 생멸에 대한 앎이 명료해지게 된다.

이때 내쉬는 호흡이 길어지고 미세해지면서, 발생한 모든 것은 소멸하고야 만다는 소멸에 대한 앎(bhaṅga ñāṇa)이 깊어진다. 소멸을 관찰함이 더욱 명료해지면 생성한 모든 것이 점점 더 빠르게 소멸하여, 필경에는 모두 사라진다는 두려움이 마음에 일어나는 것을 본다(bhayatupaṭṭhāna ñāṇa). 

살면서 경험하고 의지했던 모든 대상이 소멸의 위험에 처해 있음을 보면, 현상계의 모든 법들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염리(厭離)심이 발생하고 (nibbhedānupassanā ñāṇa), 이 무상한 것들로 이루어진 윤회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가 발생한다(muccitukamyatā ñāṇa). 이때 모든 존재에 대한 집착이 순간적으로 놓아졌기 때문에 오는 마음의 평정함을 경험하게 된다(saṅkhār- upekkhā ñāṇa). 마음의 욕망이 사라졌을 때 호흡은 더욱 미세해져서 숨을 들이쉬는 것도 들이 쉬지 않는 것도 아닌 상태가 된다.

4성제에 대한 법의 눈

마음이 고락희우(苦樂喜憂)에 치우치지 않는 평정함(upekhā)을 성취하여 호흡이 정지되었을 때, 마음은 흔들리지 않아서 있는 그대로의 법을 보게 된다. 호흡이 움직이면 마치 흙탕물이 있는 물통이 흔들리는 것과 같아서 밑을 바라볼 수가 없고 호흡이 정지되면 흙탕물의 흔들림이 정지하여 맑은 물이 보이는 것처럼 윤회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이때 태어남, 늙음, 병듦, 죽음의 괴로움, 슬픔·비애·고통·근심·고뇌 등의 괴로움을 있는 그대로 본다. 중생들이 사랑 때문에 미워하고 미움 때문에 괴로워함을 본다. 반드시 다시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어가고 번민하는 중생들이 늙고 병들지 않기를 소망하지만 원하는 대로 성취할 수 없는 괴로움을 있는 그대로 본다. 색수상행식 즉 ‘오취온은 괴로움’이라고 있는 그대로 보고, 이것이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임을 안다. 

윤회하게 하고, 다시 태어나게 하고, 기쁨과 욕망을 추구하며, 이 모든 고통들의 근본 원인이 되는 갈애(渴愛)는 여기저기에서 항상 쾌락을 찾고(欲愛), 삶에 대한 맹목적 의지를 일으키고(有愛), 지은 악업의 불쾌한 과보로부터 숨고 도망치려고 한다(非有愛). 이와 같은 고통의 원인을 있는 그대로 본다. 갈애를 다스리려면 이러한 갈애의 발생하는 곳과 머무는 곳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도적의 소굴을 알아야 도적을 잡을 수 있듯이 괴로움이 일어난 당처에서 괴로움을 소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은 사랑스러운 형상이나 친숙한 형상이 있는 곳에 기쁘거나 즐거운 마음이 있으면 여기에서 갈애가 일어나고 여기에서 머문다. 6근(눈, 귀, 코, 혀, 몸, 마음), 6촉(眼觸), 6가지 의식(viññāṇā), 6근의 접촉에 의한 6가지 느낌(samphassajā vedanā), 6근의 접촉에 의한 개념(saññā), 6근의 접촉에 의해 발생한 의도(cetanā), 6가지 경계(형상, 소리, 냄새, 맛, 감촉, 현상)에 대한 갈망(taṇhā), 6경에 대한 생각(vitakka), 6경에 대한 고찰(vicāra)등에 기쁘거나 즐거운 마음이 있으면 여기에서 갈애가 일어나고 여기에서 머문다. 이와 같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본다.

이 모든 고통의 원인인 ‘갈애’에 대한 집착을 버린 평정 속에서 고와 고의 원인을 보아서 욕망이 해체되면 마음이 해탈한 상태를 경험하게 되는데 이것을 성인의 앎(gotrabhū ñāṇa)이라 한다. 이때 발생한 존재는 ‘괴로움’, 몸의 감각과 마음의 생각에 대한 집착은 ‘괴로움의 일어남’, 오온의 무아를 보는 것은 ‘괴로움의 소멸’, 지정의를 정화시키는 8정도는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라고 또렷하게 경험하고 알게 된다. 이를 위파사나 지혜라 하고 앎과 봄의 청정(智見淸淨, ñāṇadassana visuddhi)이라 한다.

[불교신문3495호/2019년6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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