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왕비는 정치인이었다”
“조선시대의 왕비는 정치인이었다”
  • 허정철 기자
  • 승인 2019.06.07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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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 궁궐 담장을 넘다

김진섭 지음 지성사

김진섭 지음 지성사

‘억불숭유’를 내세웠던 조선시대에도 왕비들은 자신의 부모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사찰을 짓거나, 사찰 안에 건물을 세웠다. 서울 흥천사도 1395년 신덕왕후 강 씨가 죽자 태조 이성계가 그녀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원찰이다. 유교의 나라에서 불교를 지탱했던 큰 축이 신심 깊은 왕비들이었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조선시대 왕비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역대 왕비에 관한 기록 자체가 드물다. 왕비의 이름 또한 알 수 없다. 어느 성씨 누구누구의 딸이라는 정도만 전해진다. 정사(正史)조차 왕비에 주목하지 않은 이유는 조선사회가 유교이념을 바탕으로 철저한 가부장제 사회였기 때문이다. 동국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에서 문화예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같은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는 김진섭 박사가 최근 선보인 <왕비, 궁궐 담장을 넘다>는 유교사회의 여필종부가 아닌 정치인으로서, 새로운 관점으로 조선 왕비에 주목해 눈길을 끈다.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꾸준히 발굴하면서 <이야기 우리 문화>, <신화는 두껍다> 등을 발표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순탄하게 왕비 자리에 오른 인물은 물론 왕비 자리에 올랐다가 쫓겨난 왕비들, 세자빈 자리까지 올랐지만 요절하거나 배우자인 세자가 요절해 끝내 왕비 자리에 오르지 못한 채 훗날 왕비로 추존된 소혜왕후, 신정왕후 등 모두 44명의 삶을 소개한다.

첫 장을 펼치면 17세기의 ‘한양도’와 함께, 각 표제지 뒷장에 왕과 왕비의 관계도를 곁들여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책 말미에는 등장하는 역대 왕비들의 간략한 정보를 표로 정리했다. 역사의 한 축을 이룬 주체로서 구중궁궐 담장을 넘어 우리에게 다가온 왕비들과의 만남은 조선 역사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저자는 “이제까지 조선의 왕비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여인들과 다름없이 유교적 잣대를 적용해 ‘한 많고 기구한 삶’이나 또는 후궁들과의 갈등으로 ‘질투와 욕심의 화신’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왕비들의 인간적인 면에 초점을 맞췄다”면서 “조선의 왕비들은 그들이 살았던 시기의 정치적 영향권에 벗어나지 못했고 또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존재감을 지닌, 왕조 사회에서 엄연한 정치인이었다”고 의미를 전했다.

동국대 사학과를 졸업한 저자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홍보·교육·도시빈민 담당 간사, 강원국제관광엑스포 홍보제작 전문위원, 강원인재육성재단 사무처장, 춘천교대 겸임교수, 동국대 만해마을 교육원 교수를 거쳐 현재 사단법인 한국미디어콘텐츠학회 이사이며, 동국대 영상대학원과 인천대에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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