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에서 ‘스페인 하숙’이란 프로그램을 보고 나 자신을 한 번 더 돌이켜보게 되었다. 큰 배낭을 진 순례자들이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와 하룻밤을 쉰 뒤 다음날 몸을 추스르고 다시 순례를 떠나는 뒷모습은 두타행을 하는 수행자처럼 보였기에. 

구름을 사랑한 헤르만 헤세는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만이 자기를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방랑객이 되어 길을 떠나는 걸 좋아해 구름을 소재로 여러 편의 시를 썼다. ‘흰 구름’이란 시에 “기나긴 방랑 끝에 나그네의 슬픔과 기쁨을 스스로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저 구름을 이해하지 못하리라” 라고 읊었다. 아마 시인은 구름처럼 자유로이 살아가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멋으로 가는 길’에 “승려는 걸망보따리를 지고 멋을 찾아 떠나는 나그네이다. 멋의 어원은 무엇, 즉 물음표(?)를 말한다”라고 저자 유엽스님(柳葉, 화봉스님의 필명. 시집, 소설집 외 수필집 <화봉섬어>도 있다)이 멋에 대한 해석을 해놓았다. 그 말씀이 가슴에 닿아 출가의 길을 택했다. 멋을 찾는 나그네가 되고 싶어서다.

어영부영하다보니 어느덧 40여 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지만 멋을 찾기는커녕 멋 끄트머리도 잡지 못하고 아직도 안개 속을 헤맨다. 죽 떠먹는 자리도 먹다보면 빈 그릇이 되는 법이거늘, 끊임없이 정진하지 않은 탓에 여태껏 제자리걸음인 것 같아 나 자신이 한심스럽다. 산티아고로 향하는 순례자는 걷고 또 걸어 점점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있건만 나는 여태 뭐하고 살아왔나 싶어 부끄럽기 짝이 없다.

길에서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을 만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러기에 김소월의 ‘팔베개 노래’라는 시에 “첫날에 길동무 만나기 쉬운가. 가다가 만나서 길동무 되지요”라는 구절이 나온다.

나그네의 길은 힘들지만 뜻이 맞는 도반(道伴)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싶다. ‘여행을 떠나보라’고 권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무가보(無價寶), 바로 길동무를 만날 수 있기에. 

지금껏 수행자의 길을 계속 갈 수 있었던 것은 도반의 힘이 아닐까 싶다. 말 그대로 길동무이자 길벗이 아닌가.

다시 나그네 길을 나서야 겠다. 정진의 끈을 놓지 말고 걷고 또 걷자.

[불교신문3489호/2019년5월25일자]

법념스님 논설위원·경주 흥륜사 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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