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래의 세계 불교민속 순례] <8> 스리랑카의 신비를 찾아
[구미래의 세계 불교민속 순례] <8> 스리랑카의 신비를 찾아
  • 구미래 불교민속연구소 소장
  • 승인 2019.05.13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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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와 해탈과정 새긴 문스톤, 사원과 궁궐에 조성
아누라다푸라의 마하세너 궁전 입구에 조성된 문스톤.

사자의 후예들

동물의 왕인 사자가 칼까지 들었다면 얼마나 용맹스러울까. 스리랑카 국기에는 이렇듯 오른쪽 앞발에 칼을 들고 포효하는 사자의 모습이 담겨 있다. 스스로를 ‘용맹한 사자의 후예’라 부른 왕국의 사람들답게 주류민족인 싱할라(Sinhala)족의 이름도 사자를 뜻하는 싱하(Sinha)에서 유래된 말이다. 사자는 그들의 건국신화와 밀접하게 관련된 동물로, 스리랑카의 고대사를 기록한 6세기의 〈마하밤사(大史)〉에 그 전설이 상세히 담겨 있다. 

기원전 6세기, 인도 뱅갈지역 칼링가왕국의 공주가 어느 날 사자에게 잡혀가서 동굴에 함께 지내며 남매 싱하바우와 싱하시발리를 낳게 된다. 성장한 아들은 어머니ㆍ여동생과 함께 사자 굴을 탈출했고, 노한 사자가 마을로 내려와 주민들을 해치자 활을 쏘아 죽인 뒤 백성의 지지를 얻어 왕국을 세우기에 이른다. 싱하바우는 여동생과 결혼해 아들 위자야를 낳았으나 아들의 행실이 매우 난폭하여 7백인의 추종자와 함께 배를 태워 추방하고 말았다. 

오랜 표류 끝에 위자야 일행이 닿은 곳은 스리랑카요, 시기는 부처님이 열반에 든 날이었다. 그들은 원주민 공주이자 마녀 쿠베니의 마술에 걸려 감금되었으나, 속임수를 이겨낸 위자와가 마녀를 제압한 뒤 그녀와 결혼하여 왕이 되었다. 그는 섬을 정복한 다음 왕비와 마법사들을 제거하고 인도 마두라국의 공주와 혼인하였고 신하들 또한 마두라국 시녀들을 배우자로 맞으면서 싱할라왕조의 문을 열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자의 자식으로 태어나 아버지 사자를 극복할 수밖에 없었던 시조(始祖)의 신이한 출생과 비극, 사자의 피를 계승해 거칠지만 지혜로운 손자 위자야의 원시적 야성이 고루 담긴 고대신화의 면모를 읽게 된다. 신화에서 위자와 일행이 스리랑카에 정착해 마두라왕국 사람들과 혼인한 것은 기원전 500년 무렵부터 인도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주해온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그들이 도착한 날을 부처님의 열반일과 같은 날이라 봄으로써 불법이 스리랑카로 이어짐을 드러내는 설정이 흥미롭다. 자신들의 선조가 인도에서 넘어왔음을 건국신화에서부터 명쾌하게 인정하면서, 불교 또한 인도로부터 건너와 그 정통성을 이어간다는 싱할라족의 자부심과 일관되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스리랑카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사자 그림(ⓒ장용창) .

문스톤에 담긴 세계관

싱할라족의 조상인 사자는 불교적 세계관을 담은 스리랑카 특유의 문스톤(Moon Stone)에도 등장한다. 문스톤은 ‘반달 모양의 돌’이라는 뜻으로, 윤회와 해탈의 과정을 돌에 새겨 사원이나 궁궐 입구의 바닥에 설치해두고 드나드는 이들에게 가르침을 일깨우는 상징물이다. 겹겹의 문양으로 커다란 반원을 이루는 문스톤의 핵심은 네 발 달린 4마리의 동물, ‘코끼리-말-사자-소’가 반복하여 이어진 부분이다. 

이들 동물은 싯다르타가 출가를 결심하게 된 사문유관(四門遊觀)의 생로병사를 나타낸다. 성문 밖에서 싯다르타는 생로병사의 실존적 번뇌와 마주치게 되는데, 여기서 코끼리는 태어남(생), 말은 늙음(노), 사자는 병듦(병), 소는 죽음(사)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그 의미를 생각해보면 생사를 상징하는 두 동물의 유추는 비교적 쉽다. 코끼리는 불교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함께 싯다르타가 마야부인의 태에 들어설 때 의탁한 동물이며, 소는 평생을 일하고 결국 인간의 먹이로 죽게 되는 대표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말과 사자를 늙음과 병듦으로 연결시킨 것은 역설적이다. 말은 양(陽)의 속성이 가장 강하고 원기왕성한 동물이지만 결국 늙고 노쇠해가며, 동물의 왕인 사자 또한 생로병사의 법칙에 어김이 없듯이 병든 모습에서 더 깊은 무상함을 느끼게 된다. 

문스톤의 구조를 보면 바깥 테두리에 불꽃문양을 새겨 혼란스러운 사바세계를 표현하고, 그 아래에 이들 동물을 반복적으로 새겨 생로병사가 거듭되는 윤회의 삶을 나타낸다. 그 다음 층층으로 문양이 이어지는데 무성하게 얽힌 잎은 번뇌와 욕망을, 꽃가지를 문 오리들은 지혜를 상징한다. 다시 뒤엉킨 잎이 나타났다가, 가장 안쪽에 새긴 거대한 연꽃으로써 마침내 도달하게 되는 적정열반의 깨달음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성스러운 동물을 발로 밟을 수 없다는 이유로 코끼리와 사자가 사라지고, 문양의 순서가 바뀌거나 문양 없는 경우도 등장해 문스톤은 본래의 의미를 잃고 점차 변해갔다. 그러나 고대도시 아누라다푸라의 마하세너 궁전 터에는 스리랑카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문스톤, 윤회의 사바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는 문스톤이 남아있어 그 의미를 아는 이를 반겨준다. 

알루비하라 사원에서 만난 부처님. 그림=구미래

점성술 중시하는 풍습

스리랑카에서는 새해가 시작되는 시간이 해마다 바뀐다. 태양이 백양자리로 들어서는 4월 중순을 한 해의 시작으로 보기에 날짜는 바뀐다 하더라도, 자정을 기준으로 삼지 않고 점성술사(占星術師)들이 선언하는 시간에 따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스리랑카에는 묵은해와 새해가 함께하는 흥미로운 시간이 존재하는데 이를 ‘중립기간(nonagathe)’이라 부른다. 이를테면 2016년의 경우 묵은해가 1시에 끝나고 새해는 8시 1분에 시작되어 7시간1분 동안의 중립기간이 있었다. 이 기간은 불길한 시간이라 보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직 종교적 활동에만 전념한다. 따라서 불자들은 신비로운 우주의 전환기에 일상의 일들을 멈추고 사원을 찾아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며 새로운 시작을 맞는다. 

설날이 되어서도 새해 처음 시작하는 중요한 일은 명망 높은 점성술사들이 정해준 ‘성스러운 시간’에 따른다. 이들이 신년의 첫 밥 짓는 시간, 목욕시간, 사원 방문시간 등을 전국에 알리면 국민들은 새해시작과 함께 폭죽을 터뜨린 다음, 정해준 시간에 첫 불을 피워 밥을 해먹고 목욕을 한 뒤 사원을 방문한다. 성스러운 시간을 지키면 한 해의 운이 환하게 열린다고 여기며 흔쾌히 지키고자 노력하는 풍습들이다. 

점성술을 중시하기에 새해는 물론 혼례나 중요한 의식을 치르는 시간도 이에 따라 정한다. 결혼식을 치르면서 집전자가 수시로 시계를 보거나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이는 그 절차에 정해진 시간을 맞추기 위함이다. 우리가 손 없는 날에 이사를 가듯이, 중요한 단계마다 악귀를 쫓고 상서로운 기운을 받고자 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점성술과 관련해 실소를 금치 못할 에피소드도 전한다. 스리랑카 전 대통령이었던 마힌다 라자팍샤는 전담 점성술사의 승리예언에 따라 3선에 도전하며 그가 잡아준 날짜에 선거를 치렀으나 패하고 만 것이다. 점성술사는 후일 인터뷰에서, 패배할 줄 알고 있었으나 미리 알면 기가 죽어 더 참패할 것이기 때문이라 말했다. 

누와라엘리야에서 만난 찻잎 따는 타밀족 여인.

불교 힌두교가 나란히 

스리랑카에 가면 참으로 위험하게 꽃을 파는 타밀족 소년들을 만나게 된다. 중부 고원지대인 누와라엘리야에서 차를 타고 지그재그로 굴곡 심한 산길을 내려올 때면 어김없이 최선을 다해 달려와 차창으로 야생화를 내미는 소년들이다. 그들이 차를 따라잡는 방법은 급커브에서 차 속도가 느려질 때마다 아래쪽 길로 뛰어내려 앞지르곤 하는 식이었다. “어린소년이 이렇게 위험하게 꽃을 팔고 있으니 빨리 차를 세워 꽃을 사주세요”라는 몸짓이다. 

‘실론티’로 불리는 홍차의 주산지 누와라엘리야는 타밀족이 밀집해 살아가는 곳이다. 맑은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싱그러운 차밭에서 차를 따는 여인들의 모습은 그림처럼 아름답지만 그들의 삶은 힘겨운 노동의 연속이다. 등에 매단 커다란 자루에 끈을 달아 머리에 두른 채 빠른 속도로 차를 따서 자루에 넣는 여인들…. 하루 20kg를 따야하는 고된 삶이지만 외부인의 촬영에 익숙하다보니, 수줍은 젊은 여성들에 비해 외부접촉에 능한 중ㆍ노년층은 적극적으로 임한 뒤 ‘포토머니’를 요구해 웃음을 터뜨리게도 만든다. 

이곳의 타밀족은 영국의 식민지시절 스리랑카 사람들이 불복종운동을 전개하자, 차나무 재배를 위해 식민정부가 인도에서 강제 이주시켜온 노동자들의 후손이다. 영국은 또 싱할라족을 지배하고자 타밀족을 중용하는 민족분리정책을 씀으로써 오늘날까지 민족 간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들만이 아니라 기원전 500년경 싱할라족이 자리 잡기 전부터 스리랑카에 살고 있던 타밀족도 큰 줄기를 이루어, 타밀족은 소수민족이지만 토착민이기도 하다. 

인구의 70%를 넘는 싱할라족이 불교도라면, 12% 정도인 이들 타밀족은 힌두교를 믿는다. 민족과 종교가 일치하다보니 스리랑카 내전을 불교와 힌두교의 충돌로 여기는 이들이 많지만, 이는 ‘종교분쟁’이 아니라 다수민족인 싱할라족과 독립을 원하는 타밀족간의 ‘종족분쟁’이다. 남방불교국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실제 그들의 종교적 삶은 참으로 조화롭다. 마을에는 부처님과 힌두 신을 각기 모신 제단이 나란히 있고, 불교도와 힌두교도는 저마다의 제단에 기도를 올린다. 함께 살아가며 서로 다른 부분을 인정하는, 자연스럽기 그지없는 삶이다. 

[불교신문3488호/2019년5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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