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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핌의 경제학

달라이 라마, 타니아 싱어, 마티외 리카르 外 지음 구미화 옮김 나무의마음

보살핌의 경제학
-이타심은 어떻게 경제적 자본이 되는가?

   달라이 라마, 타니아 싱어, 마티외 리카르 外 지음 구미화 옮김
나무의마음

우리에게야 1997년 IMF 환란의 트라우마가 더 강렬하긴 하다. 하지만 파괴력의 규모로 보면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훨씬 치명적이었다. 세계 최강 미국이 휘청거렸기 때문이다. 굴지의 그룹들이 쓰러졌고 수많은 국민들이 거리에 나앉았다. 600만 명이 집을 잃고 800만 명이 직장을 잃었으며 5조 달러(5670조 원)이 증발했다. 

‘노숙자’ ‘파산’ ‘구조조정’ ‘공적자금 투여’ 1990년대 말 한국인들에게 친숙했던 키워드들이 이때의 미국에 횡행했다. 그러나 이 아비규환 속에서도 축배를 드는 사람들은 반드시 있는 게 신자유주의 체제다. 고객들과 직원들은 알거지가 됐는데 정작 CEO와 임원들은 성과급 파티를 벌였다. 인간의 이기심과 빈부의 양극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이 사건은 세계인의 분노를 샀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목격한 지성들의 대안
“경쟁 아닌 협력으로   
새로운 이윤 창출해야”

<보살핌의 경제학-이타심은 어떻게 경제적 자본이 되는가?>는 세계금융위기를 목격한 글로벌 리더들의 각성에서 출발하는 책이다. ‘경제 시스템 안에서의 이타주의와 자비’를 주제로 2010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마인드&라이프 컨퍼런스’의 주요 발표와 토론 내용이 담겼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비롯해 저명한 경제학자 심리학자 뇌과학자 인류학자 금융인 경영인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지금의 경제 시스템을 좀 더 공정하게 만들 방법은 없을까?’ ‘이타심과 자비심이 현대 경제발전에 기여할 순 없을까?’ ‘인간은 정말 이기적인 동물일까?’ ‘가르치고 훈련하면 정말 이타적으로 변할 수 있을까?’ ‘물질적 번영과 행복, 환경보호를 모두 이뤄낼 수 있는 경제시스템은 정녕 실현될 수 있는가?’ 치열한 논의 끝에 이들은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보살핌의 경제학(Caring Economics)'이란 이름으로.

<보살핌의 경제학>은 불교의 덕목인 이타심에 기반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책의 저자들은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다. 설명이 필요 없는 달라이 라마와 노벨경제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세계적인 미시경제학자 에른스트 페르, ‘행복경제학’의 대가 리처드 레이어드, 세계 최대 의료장비회사 메드트로닉의 CEO 출신인 월리엄 조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 <이타심>의 저자인 프랑스 출신 승려 마티외 리카르, 뇌과학자 타니아 싱어 등등. 이들이 의견일치를 이룬 ‘보살핌의 경제학’이 성공할 수 있는 근거는 인간이 본래 이타적인 존재인 덕분이다. 

여러 실험결과들이 이를 입증한다. 타인의 고통을 인지하거나 사진으로 접하기만 해도 사람들의 뇌에서는 자신이 직접 고통을 겪을 때와 유사한 반응이 일어났다. 자비명상을 해본 적 없던 일반인이 하루에 30분 딱 2주 동안 명상을 했더니 곧바로 이타적으로 행동했다. 원숭이와 침팬지 등 다른 영장류를 관찰한 결과 인간만큼 남의 행복에 관심을 기울이는 동물은 없었다. 자비를 베푸는 능력이 압도적으로 발달했기에 ‘인간’이었다.

이렇듯 인간이란 원래는 착하다. 그런데 막상 착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은 그렇지 못하다. 결국 끊임없는 교육과 연습을 통해 이타심을 배양하고 유지해야 한다. 리처드 레이어드는 과거에 비해 소득이나 삶의 질이 높아졌음에도 사람들의 행복 수준이 제자리걸음인 이유를 ‘비교하는’ 태도에서 꼽았다. 자기가 부유해지더라도 타인이 더 부유해진다는 질투심을 떨치지 못한다면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며 ‘경쟁과 협력의 조화’를 강조한다. 

특히 책에서는 보살핌의 경제학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도 제안한다. 스위스의 자산관리 전문가 앙투아네트 훈지커-에브네터는 사회적 환경적 복지를 도모하는 동시에 이윤도 창출할 수 있는 투자방법을 소개한다. 스위스의 또 다른 은행가 아서 베일로이언은 가난한 사람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소액금융 제도’를 이야기한다. 인도의 사회적 기업가 산지트 벙커 로이는 엘리트주의적 지식습득을 거부하고 농촌의 토착기술과 전통적 지혜에 바탕을 둔 대안학교인 ‘맨발의 대학’을 알린다.    

책에서는 평정심 같은 ‘내적 자원’도 손익계산에 넣어야 한다는 불교적 경제학 개념이 신선하다. 더 많은 이익을 차지하기 위해 남과 싸우다 보면 내 마음이 아파지게 마련이고 그러면 결국 손해라는 것이다. 물론 세상의 뿌리 깊은 증오와 빈부격차가 그리 간단히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다만 책에 나오는 인도의 고승 샨티데바의 경구(警句)는 언제 들어도 여운이 크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자기 행복만 바랐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고, 행복한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사람이 행복하길 바랐기 때문에 행복하다(118쪽).”

장영섭 기자  fuel@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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