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나들이삼아 일부러 완행열차를 타고 목포에 가곤 했었다. 주로 꽃필 때나 눈 오고 비 내릴 때였다. 유달산을 오르기도 하고, 역 근처 카페에서 커피만 마시고 돌아올 때도 있었다. 그런 내게 목포는, 유달산과 바다를 중심으로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과 우리 수군의 전적이 있는 곳, 일제강점기 때는 목포항을 통해 쌀, 소금, 면화 등 호남의 농산물이 수탈된 곳, 그리고 이난영의 ‘목포는 항구다’라는 유명한 대중가요의 이미지 정도로 굳어 있었다. 

그러다 최근에 손혜원 의원과 관련해 핫플레이스가 된 ‘목포구도심’을 방송언론매체를 통해 접하고 놀라움과 자괴감을 동시에 가졌다. 놀라움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거주지역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고, 자괴감이 생긴건 목포를 수없이 가봤으면서도 그걸 이제야 알았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번에는 순전히 그 구도심을 체험하기 위해 목포에 갔다. 목포인에게 이제 손혜원 거리(?)로 통하는 구도심은 목포역에서도 도보로 10여분 걸렸다. 그럼에도 나는 보는 것만 보고 가는 곳만 가서 몰랐던 것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2차선 도로폭의 양쪽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이국적인 2층 건물들이었다. 건물들이 높지 않고 오밀조밀해 전체적으로 다감하게 다가왔다. 나무판대기로 벽과 지붕을 마감한 건물, 구운 적벽돌을 한장 한장 쌓은 건물, 바둑판 창틀이 있는 건물들은 요즘에는 보기 힘든 건축물이었다. 

상가 아크릴간판들만 떼어내면 근대개항기로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 옛 풍경이 자본의 논리에 밀려 사라져가는 마당에 이나마 남아있다는 게 다행스러웠다. 하지만 건물들이 낡고 허름한 채 거의 방치돼 있었고 빈 곳들도 많았다. 신개발지역에 밀려 도심공동화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느 장소나 역사의 부침에 따라 번성과 퇴락을 겪는다. 이곳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더욱이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 우리 민족에게 만행을 저질렀던 일본이 자국민을 위해 조성한 적산건물구역이다. 그럼에도 목포구도심이 엣 분위기와 정취는 그대로 살리되 아름답게 정비하고 단장해서 근대문화구역으로 재탄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목포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도록. 그건 우리 근대의 수많은 역사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신문3474호/2019년3월27일자]

이선재 소설가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