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거사에 의해 설해진 <유마경>에서는 ‘중생계가 바로 보살의 불국토’라고 한다. 보살에게는 온갖 중생이 어울려 사는 이 곳이 바로 ‘불국토’라는 뜻이다. ‘불국토’라 하면 부처님이 계신 평화롭기 짝이 없는 장소인데, 아귀다툼이 끊이지 않는 바로 이곳이 불국토라니? 어째서 그럴까?

온갖 중생들이 더불어 살고 있는 이곳이야말로 보살도를 닦기에 최적화된 곳이다. 예컨대, ‘보시바라밀’을 닦고자 하면 보시를 받아줄 중생이 있어야 한다. 천상세계는 모두가 풍족하니 주거나 받을 이도, 줄 것도 받을 것도 별로 없다. 지옥 중생이나 아귀는 주어도 못 받아먹는다. 그러니 받을 이도 많고 줄 것도 많은 이곳이야말로 보시바라밀을 닦기에 최적화된 곳이 아닌가?

지혜바라밀도 마찬가지다. 천상세계는 스트레스가 거의 없어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가 적다. 오히려 쾌락에 젖어 헤어나기가 어렵다. 반면에 지옥이나 축생은 스스로를 돌아볼 겨를조차 없다. 그런 점에서 적당히 스트레스 받으며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이곳이 바로 지혜바라밀을 닦기에 최적화된 곳이다.

그러므로 <유마경>에서는 ‘번뇌를 끊지 않고 열반에 들어간다’고 말한다. 번뇌는 끊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활용해야 하는 것이다. 시시때때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번뇌가 실체 없음을 관찰하며 관찰자의 입장에 서는 것이 열반에 들어가는 것이다. 관찰자는 항상 하고, 즐겁고, 불성인 ‘내’가 있고, 청정하기(常樂我淨) 때문이다.

‘나의 번뇌’는 ‘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나’라고 하는 것도 실체가 없다. 몸은 생·노·병·사(生老病死)하고 마음은 생·주·이·멸(生住異滅)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이 몸과 마음 어디에 고정된 실체로서의 ‘내’가 있겠는가? 몸도 아바타, 마음도 아바타, 나도 아바타, 너도 아바타일 뿐! 

우리 모두 아바타임을 깨쳐 자신의 애착은 쉬되, 남에게는 따뜻한 애정을 머금고 살아가는 것이 최상이다. 

그러기 위해서 대면관찰과 보시복덕이 필수다. 이를 전하는 것이 바로 ‘아바타가 아바타에게 법을 설한다’고 하는 것이다.

[불교신문3470호/2019년3월13일자]

월호스님 논설위원·행불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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