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서유기

성태용 지음
정신세계사

성태용 지음 정신세계사

서유기(西遊記)는 기본적으로 모험담이다. 호기심 많고 뛰어놀기 좋아하는 아이들이 서유기를 좋아하는 이유다. 초능력을 지닌 원숭이가 장거리 여행을 하며 도중에 수많은 요괴를 물리친다는 내용은 ‘드래곤볼’과 ‘날아라 슈퍼보드’ 등으로 진화하며 애니메이션의 고전으로 자리했다. 그래서인지 원작의 제목인 ‘서유기’보다는 주인공의 이름인 ‘손오공’이 대중적으로 더 친숙한 편이다. ‘삼장법사’라는 또 다른 주연도 그 비중이 적어진 구석이 없지 않다. <어른의 서유기>는 어릴 적 그저 흥미진진한 활극으로만 즐겼던 원작이 사실은 곳곳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품고 있는 불서(佛書)라는 것을 새삼 환기시킨다.

<어른의 서유기>는 서유기가 전하고자 하는 진정한 메시지를 철학적으로 풀어냈다. 사진은 불교텔레비전에서 방영했던 장편드라마 <서유기>의 한 장면. 불교신문 자료사진

일단 손오공이 삼장법사를 도와 서역(인도)으로 불경을 구하러 가는 길을 ‘출가’라고 표현한다. 원숭이들의 왕으로서 온갖 환락과 권세를 누리던 손오공이지만 지나친 오만이 끝내 화를 부른다. 천상에서 소란을 피운 죄로 부처님에게서 500년간 산 속에 갇혀야 하는 형벌을 받는다. ‘뛰어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유명한 속담이 탄생한 순간에 그는 탐욕을 참회하고 모든 생명은 응당 죽어야 한다는 운명을 절감한다. 그런 맥락에서 서역으로의 출발은 불교에의 귀의로 해석할 수 있다.

서유기는 단순 모험담 아닌
부처님 말씀 숨 쉬는 불서
“고전을 다시 읽으며
세상살이 지혜 터득하자“

실제로 서유기는 중국 당나라 현장스님의 구법기(求法記)를 소재로 했다. 손오공과 친구들의 여행은 단순히 유람이나 원정이 아니라 마음 동네를 찾아가는 길이다. 예를 들어 손오공이 여행길에서 첫 번째로 만나는 장애가 있다. 바로 여섯 도둑. 이들 이름의 첫 글자를 모으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곧 인간의 감각기관을 가리키는 육근(六根)이 된다. 불교깨나 공부한 사람이라면 이 대목에서 뭔가 감이 온다. 서유기는 불교소설이구나! “마음 원숭이가 바른 길로 돌아오니, 여섯 도둑이 자취가 없네(心猿歸正 六賊無?)!” 손오공은 사람의 마음에 대한 비유다. 여섯 도독이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적(敵)이라는 이야기는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적이자 가장 먼저 처치해야 할 적이 곧 감각적 환락이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여섯 감각기관의 유혹을 이겨내며, 감정의 성난 파도를 다스리는 일이 수행의 출발점인 것이다.

서유기의 등장인물들은 알고 보면 우리들이다. 모두가 특출한 장점과 재주를 지녔으나 하나같이 단점이 있다. 모자라고 화내기 쉬운 사람들끼리 만들어가는 인간관계는 그만큼 위태롭다. 천하의 호걸이지만 천둥벌거숭이인 손오공이 성질 죽이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고, 은근히 민폐를 끼치는 스타일인 현장법사가 순조롭게 자기 앞가림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고, 탐욕에 찌든 저팔계가 주색을 멀리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차라리 외모는 무섭게 생겼지만 형들의 말을 잘 따르고 묵묵히 제 역할을 하는 사오정이 제일 양반이다. 여하튼 모자란 등장인물들 간의 타협과 양보가 서유기를 가로지는 거대한 줄기다. 마침내 갖은 위기와 시련을 극복하고 손오공은 꿈에 그리던 서역에 도착한다. 다만 능력이 아니라 인내로써 부처가 된다. 근두운을 타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드나들 거리를 연약한 스승을 보호하느라 무려 14년 동안 꿋꿋이 걸었던 것이다.  

<어른의 서유기> 저자는 불교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철학자다.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건국대 철학과 교수로 임용돼 건국대 문과대 학장과 한국철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는 ‘우리는 선우’의 대표로서 재가불자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저서로 《주역과 21세기》, 《오늘에 풀어보는 동양사상》(공저) 등이 있는 동양철학의 전문가다. 서유기를 다시 읽는 까닭은 결국 인생을 다시 돌아보자는 것이다. 그는 서문에서 “세상살이에는 삼장법사 일행이 만나는 무서운 요괴보다도 더 기막힌 장애물들이 많아 보인다”며 “서유기를 읽어가면서, 우리도 용기를 내어 험한 세상을 헤쳐 가는 지혜를 얻어가자”고 독려한다. 서유기의 진짜 관전 포인트를 철학적으로 보여주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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